삶 없는 삶 속에서 누리는 자유

지혜의 향기/일과 휴식

2007-09-29     관리자

현대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을 통하여 삶을 영위해 나간다.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므로, 현대인에게 일은 필수적이며 일을 하면서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계가 유지되고, 자신과 더불어 가족 심지어는 가문의 지위까지도 결정되기도 한다.
따라서 일은 우리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며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자 한편으로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경우 40대 성인 남자들의 사망률이 세계 1위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일상은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리며 쫓기고 부대끼면서 삶이 던져주는 무거운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을 면치 못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고 있는지 뜻도 이유도 생각할 겨를 없이 밀려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일하는 동안에도 쉬는 동안에도 이런저런 끝도 없이 일어나는 상념의 더미들 속에 묶여 헤어날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시원하게 쉴 곳을 안내 받지 못한다. 일 속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노력은 고작 산이나 들, 오락이나 스포츠를 즐기면서 잠시 일을 잊는 정도이지 실제로 쉬는 동안에도 계속 과거, 현재, 미래의 걱정과 불안 상념들이 끊임없이 오고 가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자유롭게 쉰다는 것은 어렵다.
필자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24시간 돌아가는 수련장에서 수련생과 상담하랴, 청소하랴, 하루 세 끼 그들이 먹을 식사 준비하랴, 더욱이 그 바쁜 와중에 웬 상담전화는 그리 많은지. 새벽 5~6시쯤 오는 부지런한 수련생을 맞이하는 일과로 시작해서 그 날 출석한 수련생 명부를 작성하는 일을 끝으로 어느덧 하루를 접고 누우려고 시계를 보면 새벽 1∼2시는 보통이다.
지금은 내가 맡고 있는 수련장이 많이 나아지고, 수련생 중 일정한 성과를 얻은 분이 많이 나오면서 이 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어, 이틀 일하고 이틀을 쉬니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초기에는 쉴 틈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24시간 일 속에 있으면서도 자유롭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나 속에, 일 속에, 삶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피곤하고 힘들면, 쉬거나 놀러 가면 되지 내가 삶 속에 없으면 된다니 필자가 산 속 생활 좀 했다고 우리를 놀린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본다. 사실 그렇다. 산 속 생활을 열심히 한다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 옛날 선사와 같은 깨달음을 얻기가 힘든데,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사는 일반인이야 그런 경지에 근처에나 가보겠는가.
원리는 간단하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만 없으면 된다 하셨고, 옛 선사께선 크게 한번 쉬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상만 없애면 되고 크게 쉬어 버리면, 진정한 대 자유를 얻게 되니 아무리 복잡한 일 속에서도 늘 편안한 휴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진정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크게 쉴 수 있는가를. 최근 들어 우리 수련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마음이란 ‘산 삶에 대한 기억’으로 정의하면서 삶을 살면서 삶 속에 있지 않게 하는 방법이 나오면서 ‘나 없는 내가 삶 없는 삶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기쁨’을 맞보고 있다.복미숙 님은 마음 수련 친목회인 ‘연신내 마음수련원’ 원장으로 있다. 어떤가 독자 여러분, 일도 중요하고 삶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일과 삶에 대자유를 불어넣기 위해 지금 즉시, 마음을 닦는 수련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