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지비의 손길
2007-09-29 관리자
온 국민의 가슴을 태우며 가뭄으로 시작된 여름이, 집중호우로 곳곳에 상처를 내고 삼복(三伏) 더위로 이어졌다. 유난히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그러나 여름이 좋은 이유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내 휴가를 떠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에게 함께 할 이들이 없고, 쉴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이 여름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서울 강동구 길동의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지하 단칸방에서 혹독한 여름을 견디고 있는 강순덕(81세) 할머니를 찾았다. 바깥은 강한 땡볕이 내리쬐고 있었으나, 방 안은 눅눅한 이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온갖 습기들의 피신처였다. 할머니의 첫인상은 고통 그 자체였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고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할머니가 7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6·25 전쟁이 발발한 이듬해 피난지인 부산에서였다. 할머니는 전 남편을 잃었고, 할아버지는 부인을 고향인 개성에 남겨두고 온 상태였다. 할머니의 나이가 31세였고, 할아버지는 13살 많은 44세였다. 서로 외로운 처지에 나이 차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두 분은 살림을 합치기로 했고, 당시 파주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의 형님 댁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형님 댁 마당을 들어서는데, 가슴이 뭉클하니 떨어져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여기서 ‘아버지’, 저기서 ‘아버지’ 하고 부르며 아이들이 달려드는 거예요. 모두 두 살 터울로 큰애가 21살이더군요. 아이들이 있는 줄 새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보니 눈 앞이 깜깜하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지요.”
할머니는 자신을 속인 할아버지가 못내 야속했지만, 그만큼 착하고 자상한 사람이 없었다. 비록 앞으로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더라도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행복한 가정을 꾸려보려 했다. 그러나 제 자식이 아닌 아이들 넷을 뒷바라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들에게 욕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좋은 것 먹이고, 좋은 옷 입히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다행히 아이들도 별 문제 없이 잘 따랐지만, 모두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라 마음 속에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더라구요.”
한 지붕 밑에서 이름뿐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마음 고생이 심했을 터였다. 모두 결혼을 시키고 할아버지와 오붓하게 살아보려고 했으나, 이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건설업을 하던 할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할아버지께서 실의에 빠져 도통 헤어나질 못했다.
자식들도 찾아오는 횟수가 점점 줄더니, 명절 때나 얼굴 한 번씩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나마 10년 전에 할아버지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병석에 누우면서 자식들과 더욱 소원해졌다. 할아버지는 결국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3년 만에 돌아가시고 이후에는 자식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할머니는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회한에 젖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한 심장과 기관지가 안 좋아 숨을 고르시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희망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이 남아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강순덕 할머니에겐 어떤 희망이 있을까?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을까? 할머니에게 자신의 힘으로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일을 통해, 거기서 우리는 희망을 찾고 보다 아름다운 삶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강순덕 할머니는 지금 양 무릎 관절뼈가 닳아 방 안을 기어다닐 정도로 심각한 관절염을 앓고 있습니다. 또한 피부가 짓물러져 온 몸이 상처투성이입니다. 다행히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웃의 도움으로 무료로 지내고 있으며 적십자에서 아침에 도식락을 갖다줘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뱃속에 뒤엉키는 것처럼 땡기고 밥을 넘길 수가 없어 하루 종일 도시락 하나를 비우지 못합니다. 불자 여러분의 관심과 정성이 간절히 필요한 때입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사회에서 소외된 채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아웃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저희 월간 [불광]에서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이웃을 소개하여 그들의 힘만으로는 버거운 고된 삶의 짐을 함께 하려 합니다. 주위에 무의탁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이웃 등 힘든 삶을 꾸려나가시는 분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고 그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후원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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