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등불

깨침의 두레박

2007-09-28     관리자
사위성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기원정사에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이었다. 기원정사는 왕사성의 대숲에 둘러쌓인 죽림정사만큼이나 아름답고 큰 절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사랑하는 것은 으리으리한 절이 아니었다.
 할미새와 아기 참새, 그리고 까마귀와 유채꽃을 사랑했다. 안개가 낀밤에는 달무리에 눈을 씻으셨다.
 부처님은 결코 집이나 옷이나 돈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점이 바로 사람들과 다른 차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행복했다.
걸인 노파는 그러한 부처님이 부러웠다. 자신도 부처님처럼 낮에는 할미새를, 밤에는 금팔찌 같은 달무리를 벗삼아 외로움을 달래보건만 한 순간도 행복한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 나는 언제 부처님이 돼보나,'
 그때 사위성 사람들이 축제의 날이 온듯 노래를 부르며 다가왔다. 걸인 노파는 길을 비켜주며 물었다.
 "젊은이들, 무슨 좋은 일이 있소?"
 "그럼요, 죽림정사로 떠났던 부처님께서 몇 년만에 돌아오시는 날인데요. 성문에서부터 기원정사까지 등을 걸어 불을 밝히려고 하답니다."
 기원정사까지 등을 건다면, 온 성안 사람들이 다 나서고 있음이었다.
 "수천 수만 개의 등불이 켜지겠구려."
 "할머니도 등 하나는 다셔야죠."
 "그렇고 말고. 비록 얻어먹고 사는 거지지만 나도 사위성 사람이니까."
 걸인 노파는 서둘러 구걸을 나섰다. 저녁 끼니로 가지고 있던 밥덩이는 옆에서 깍깍 우짖어대는 까마귀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어버렸다. 저잣거리로 나선 노파는 한 마장을 걸으면서 동전 세 닢을 구걸하였다. 세 닢은 두어 시간밖에 등을 켜지 못하는 기름값이었지만 그래도 노파는 서둘러 기름가게로 갔다.
 "이 늙은이도 등을 켜 부처님께 공양하고 싶소."
 "기름을 사러 왔구려."
 "이 동전만큼 주시구려. 얻어먹는 것만도 복인데 밤새 켤 등의 기름을 어찌 욕심내겠소."
 가게 주인은 서너 숟가락만큼 기름을 따라주면서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동전 세 닢이면 너댓 끼니는 해결할 수 있는 돈인데 하면서―.
 이윽고 노파는 기원정사 입구의 보리수 가지에 등을 걸고 불을 밝혔다.
 초라한 등이지만 노파에게는 마음속까지 환하게 밝혀주었다.
 부처님은 오다가 수레가 고장 나 예정시간보다 늦게 기원정사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노파의 등은 기름이 다 떨어졌을 터인데도 꺼지지 않았다. 노파는 숨을 죽이고 보리수 나무 뒤에 숨어 등을 지켜 보았다.
 노파의 등은 새벽이 돼도 꺼질 줄을 몰랐다. 꺼지기는커녕 다른 등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이 나와 등불을 하나씩 꺼갔다. 바람이 슬슬 불어오므로 기원정사에 불이 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파의 등은 끌 수 없었다. 처음에 입바람을 불었고, 나중엔 가사 자락을 휘둘러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마침, 태풍으로 돌변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지만 노파의 등만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목련은 놀란 채 부처님께 물었다.
 "저 등불만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목련아, 부질없이 끄려고 하지 마라. 태풍으로도 끌 수 없는 등불이니라."
 "무슨 까닭입니까?
 "정성으로 밝힌 등불은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느니라."
 합장하고 있는 목련에게 부처님이 다시 말했다.
 "저 보리수 나무 뒤에 서 있는 노파를 모시고 오너라. 오는 세상에는 부처가 될 분이니라."
 그제야 노파는 부처님 앞으로 갔다. 걸인 노파는 문득, 부처님이 할미새와 달무리만을 사랑하시는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사랑하시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