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명상(話頭冥想) 4

불교의 수행법29

2007-09-28     관리자

▶화두 공부하시면서 다른 공부법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이를테면, 염불 수행이나 주력 수행, 관법 수행, 절 수행 등은 버리고 오직 화두 참구만 하셨는지요.

혜봉 버리고 말고 할 게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저는 생각이 많아서 염불을 하면서도 생각이 끊어지질 않고 주력을 해도 그렇고 절을 해도 마찬가지고 일을 해도 생각이라는 마구니가 쉬지 않고 올라와서 괴롭게 했습니다. 호흡관을 해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올라오는 생각을 없애려 무진 애를 썼지요. 이를테면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을 쉬지 않고 바라보기도 하고, 마음으로 망치를 만들어서 생각 올라오는 것을 쳐부셔서 없애기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내기도 하고, 불보살의 명호로 쳐 없애 보기도 하고, ‘옴 마니 반메 훔’을 염송하면서 진언을 이용해 없애기도 하고, ‘범소유상 개시허망’ 하면서 금강경의 사구게를 이용해 없애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번뇌망상 일으키는 나 자신을 통째로 버려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이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고, 어떤 놈이 이 생각을 만드는가’ 하는 의심이 들면서 이 의심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염불을 하면서도, 호흡관을 하면서도, 주력을 하면서도, 절을 하면서도, 일을 하거나 걸을 때도, 염불을 하든 호흡관을 하든 주력을 하든 그 어떤 것을 하든지 또 아무 것도 하지 않든지 아무 상관없이 ‘이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고 참구를 했지요.

▶참구를 하기 전에 했던 공부는 수행에 도움이 안 됐는지요.

혜봉 쳐부수어 없애는 공부는 도움이 많이 됐지요. 실제로는 여러 가지 번뇌망상이 공부하기 전보다는 현저하게 줄어들었지요. 생각을 많이 하던 제 업을 놓고 본다면 거의 없어졌다 할 정도로 줄어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칭명 염불이나 주력수행을 할 때 그 명호나 만트라 자체의 소리에 몰두하는 것도 번뇌를 제거하고 업식을 소멸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지요.

▶그러면 화두 공부는 어떻게 계속 하셨는지요.

혜봉 염불을 하든, 주력을 하든 호흡관을 하든 느낌을 관찰하든 상관없이 상황 따라 수행을 해나가면서 ‘이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가’하는 의심을 놓지 않고 계속 정진했지요.
그러던 중에 어떤 여성이 좋아한다고 해서 마음이 흔들려 결혼 약속을 했지요. 그런데 한 달도 안 되어서 그 여성이 다른 남자를 좋아하면서 문제가 생겼는데, 말로는 상대 여성에게 ‘그래, 그 남자한테 가서 잘 살아라. 우리가 했던 약속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 해놓고도 제 가슴에서는 그 여자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매일매일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팽개치고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로 갔지요. 회암사에서 공부를 하는데 밥도 먹히지 않고 잠도 오지 않고 다른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그 여자에 대한 마음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묘한 것은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공부에 더 몰두하게 되었지요.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여자에 대한 마음 때문에 다른 생각은 다 사라지고 그 여성에 대한 마음만 간절해진 것입니다.
여자 하나로 이렇게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는 ‘이 마음이라는 것이 뭔가’ ‘나라는 것이 도대체 뭔가’ ‘도대체 이놈이 어떤 놈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이 뭐꼬’ 하는 화두가 사무쳐졌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날이 이어졌는데 나중에는 ‘이 뭐꼬’ 하는 화두만 남았지요. 그러다가 한 일주일쯤 됐을 때 낮에 소나무 밭을 거닐고 있는데 소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듣는 순간 일체 생각이 사라지면서 생각이 일어난 처소도 없고, 생각을 만드는 놈도 없고, 여자니 남자니 하는 것도 없고, 여자를 잡고 있는 마음도 없고, 나도 없고, 일체가 텅 비어서 너나가 없는 겁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시가 절로 나왔습니다.
삼라만상 일체가
본래부터 둘이 아니며
고통이니, 행복이니, 불행이니
이거니 저거니, 옳니 그르니
인생이니, 삶이니 하는 모든 것이
마음이 만든 생각의 그림자일 뿐.

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쏴’하고
소나무는 푸르고
흰 구름은 흘러가고
고양이는 ‘야옹’ 하니
삼라만상 일체 그대로가
법을 설하는구나.

▶그러면 애욕이 공부를 더 할 수 있게 만든 결과인 셈이군요.

혜봉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전부터 나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나 사회문제나 인간의 모든 문제를 안으로 돌려서 참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다면, 오히려 애욕의 노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애욕 때문에 미치거나 살인을 하거나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너무도 많지 않습니까? 애욕뿐만 아니라 돈이나 명예도 마찬가지이며, 인간의 모든 문제가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가 예외가 아니라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씀해 주십시오.

혜봉 달라이 라마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영화 ‘쿤둔’을 보면 달라이 라마께서는 티벳 민족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대단히 고민합니다. 중국에 항복을 하여 국권을 넘겨줄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만약 항복을 하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티벳 국민들은 중국 공산 정부에 복속되어 노예가 되어야 하고, 싸우게 된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죽을 것이고, 그렇다면 항복도 하지 않고 싸우지 않으면서도 티벳의 자존과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무엇인가 하고 거듭거듭 사유를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망명인데, 그 분이 망명을 한 이유는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하는 자비심과 전쟁을 통해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참된 평화는 이룰 수 없다는 확신과 티벳 민족의 자존을 잃지 않는 방법은 망명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이와 같은 결단은 정말이지 자신의 내면을 통한 심원한 사유와 이에 따르는 참다운 용기가 없이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달라이 라마께서 그 이후로 보여준 삶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달라이 라마 같은 분들은 본래 영향력이 컸던 분이지 않습니까?

혜봉 물론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의 영적인 성숙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만약 그 당시에 그 분이 만약 흥분을 했거나 오기가 발동했거나 무지했다면 티벳 민족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비심과 지혜가 얕은가 깊은가 하는 문제가 대단히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반면, 마더 테레사를 보세요. 그 분은 처음부터 영향력이 있던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죽어가는 캘커타의 빈민들을 보고 날마다 묵상하고 날마다 사랑으로 위로하는 일을 통해서 인류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도 마더 테레사의 사랑에 감동해서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종교간의 이념과 이해관계 때문에 끊임없이 싸우는 일들을 볼 때 말입니다.

▶회암사에서 일주일간 정진 후에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공부는 언제 다 마쳤는지 궁금합니다.

혜봉 공부를 다 마치다니요. 본래 시작이 없는데 끝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때부터 진짜 공부의 길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회암사에서 내려온 후에도 한 동안 그 상태가 지속되었는데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히 이런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본래부터 ‘나’라는 것이 없고 일체 만물이 본래부터 둘이 아닌데 어찌하여 가지가지 모양으로 나투었는가. 내가 본래 우주 허공 법계와 다르지 않는데 어찌하여 천지 만물과 달리 여기 이렇게 보고 듣고 움직거리고 또 생각하는가. 또 이와 같음을 아는 이 놈은 또 무엇인가. 생사와 상관없이 생사에 물들지 않는 놈은 또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이 뭐꼬’ 하는 화두가 다시 오롯해졌습니다.

▶공부의 끝과 시작이 없다 하셨는데 그러면 공부할 필요가 있는지요.

혜봉 하나 묻겠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고 나서 점심에 또 먹는다고 설거지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혜봉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저녁에 또 이부자리를 펴서 사용한다고 해서 아침에 이부자리를 그냥 둡니까?

▶아니요.

혜봉 밥 먹고 나면 그릇을 씻고, 잠자고 나면 이부자리를 개는 일은 누구든지 그날그날 행하는 행일 뿐입니다. 설거지는 그냥 설거지며 밥을 먹는 일은 그냥 밥을 먹는 것일 뿐 그 자체에 시작이니 끝이니 반복이니, 어제 하고 오늘 하고 또 내일도 한다는 말도 개념도 생각도 없습니다. 그냥 그와 같은 일일 뿐입니다. 공부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러면 쉬었다가 공부해도 되는지요.

혜봉 끝이라는 것도 본래 없는데 쉰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고 밥 먹었으면 설거지하듯이 그 때 그 때 해야 할 바를 그냥 해갈 일이지 이거다 저거다 하고 구분 짓거나 규정하거나 나누지 마세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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