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에 그려보는 바미얀 부처님

보현행자의 목소리

2007-09-28     관리자

지난 3월 말 신문이나 TV를 통하여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불상이 사라지는 모습을 마주한 사람들은 개인의 신앙을 떠나 거의 모두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원리주의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럴 수 있는가, 종교란 인간에게 어떤 것인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는 저렇게 이용·희생되는 것일까,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그저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하는 이른바 성악설은 맞는 게 아닌가?’
몇 해 전부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이 부처님에 대한 파괴를 공식으로 선언해 왔으니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과 UNESCO와 같은 국제기구, 심지어는 소련의 침공에 저항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는 이 나라를 가장 많이 지원해 준 이웃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서까지 나서서 자제를 촉구하였지만 결국 1,500년 세월 동안 중생을 묵묵히 지켜보셨던 그 부처님을 폭약과 탱크, 로켓포까지 동원하여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외국 기자들의 취재 접근을 막겠다고 하던 것과 달리 파괴 장면을 생생한 화면으로 방영하게 한 것을 보면, 그 정권 나름의 정치적 계산과 목적이 있었던 듯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저는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만행에 가까운 행동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만이 저지르는가?’ 그러면서 우리 인류 역사에서 ‘종교와 신념이라는 허울을 쓴 잘못된 믿음’으로 저지른 똑같은 죄악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시오노 나나미가 15년 계획으로 쓰고 있는 『로마인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고 있는데 이 작가에 따르면, 시 외곽의 작은 언덕에서 시작한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은 ‘타인과 그들의 생각을 자기들 속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에 있었습니다.
일정한 절차를 거쳐 피정복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심지어 식민지 출신이 제국의 황제가 되기도 하며 정복지 사람들이 신봉하던 신(神)까지도 포용하여 자기들이 믿어온 신들과 함께 로마의 신전(神殿)에 모시는 ‘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른바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마에 의한 평화 체제)로 표현되는 대제국 건설이 가능했던 것이지 흔히 이야기하듯이 ‘완벽한 법체계’와 ‘로마군의 뛰어난 전술·전략’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공인 이후, 이와 같은 로마제국의 큰 흐름에 중대한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과거 기독교 이전 시대의 신전과 신상(神像)들은 우상으로 몰아붙여 파괴하기 시작하였고, 요행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기독교 공인 이전 로마시대의 유적·유물’들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광신적인 흐름과 함께 제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 들어가게 됩니다.
로마시대뿐만 아니라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세계 곳곳에서 자행한 그들의 ‘우상 파괴라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고,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훼불 행위나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일과 같은 일들도 이 같은 기나긴 역사적 연원을 갖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광신적인 이슬람이나 기독교도들의 행위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성리학자는 ‘절에 가서 오줌을 누었다’고 한껏 큰 소리를 쳤고, 어떤 유생은 남원 실상사 철불상의 팔을 잘랐으며, 또 다른 유생은 이 행위를 찬양하는 시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절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소수서원과 같은 서원을 짓거나 양반들의 묘지를 쓰는 일은 숱하게 많았습니다.
조선왕조도 성리학이라고 하는 단일 이념만을 강요하고 심지어 유학 내의 양명학과 같은 또 다른 해석이나 흐름을 이른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붙여댄 경직성이, 자유로운 사유를 불가능하게 하여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고 하여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가져보는 마지막 남은 희망은 혹시라도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간다라 미술을 대표하는 6,000분이 넘는다고 하는 부처님만이라도 잘 계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포격으로 무너져 내리는 바미얀의 부처님을 대하며 불제자로서의 ‘참담함’과 함께 ‘제행무상’이라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불교계에서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세계와 동양 최대’를 앞세운 불사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나라 안팎으로 어두운 소식 속에 또 다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 더 많은 이들에 전하고 그들이 부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일이 오늘 우리 불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불사가 아닌가’ 하고 되돌아보았습니다.
1,500년 전에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나 인도네시아 등지의 불교지도자들이 대불상과 거대 사원을 세우는 일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에 더 큰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 뒤 이슬람 세력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갖고 진출하였다고 해도 그 지역에서 불교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나 오늘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참담한 훼불 사건은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깨뜨려야 할 우상은, 당산 나무·장승·단군 상(像), 예수 상이나 부처님 상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다른 사람과 집단의 생각과 신념을 이해·인정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며 제 자신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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