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석가모니부처님

특집/ 부처님 오신날

2007-09-28     관리자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 석가모니부처님은 당신은 오시지 않아도 될 험난한 사바세계에 원력불(願力佛)로 나투셨다. 온 우주 공간과 세월이 부처님 몸 아님이 없건만 무명(無明)에 쌓인 중생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므로, 이를 깨우치기 위해 구체적인 8막의 각본을 짜시고 우리 곁에 오신 것이다.

제1막-도솔천에서 오심(兜率來儀相)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 먼 과거시절, 연등불로부터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후 끊임없는 보살도를 실천하면서 선근(善根)을 심어왔다. 그러던 중 도솔천 내원궁(內院宮)에서 호명(護明)보살로 계시면서 하늘 중생(天人)을 교화하시다가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에 하강하셨다.

제2막-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심(毘藍降生相)
석가모니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 걸으시고(周行七步),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높노라(天上天下 唯我獨尊).” 하고 외치셨다. 여기서 일곱 걸음의 7이 상징하는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즉 부처님은 본래부터 육도윤회를 벗어나서 오신 분이며, 우주 그대로를 체(體)로 삼으시고 오셨다는 사실이다.
7은 모든 빛깔(일곱 색깔)과 모든 소리(7음계)의 총체적 숫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나 홀로 높노라’의 ‘나’의 의미는 중생의 ‘나’가 아니라 영원한 자기, 참된 인간성 등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바로 카스트제도의 잘못된 폐습을 곧바로 지적하는 통렬한 사회개혁의 첫 일성(一聲)이었던 것이다.

제3막-인생의 여러 모습을 보심(四門遊觀相)
석가모니부처님은 커가면서 세상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일은 뭐니뭐니 해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이다. 범부 중생들은 그 곳에 파묻혀 분명한 자기 현주소를 망각하고 살지만 위대한 철인이나 깨어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문제 인식’ 속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현실적 자각이야말로 자기 인생을 역동적으로 살게 함을, 방편으로 오신 석가모니부처님은 보여준 것이다.

제4막-성을 넘어 출가하심(踰城出家相)
석가모니부처님은 성을 넘었다. 나, 처자식의 성을 넘고 부귀영화의 성을 넘었다. 세상의 고정관념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 새로운 밝음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후일 세인들은 진정한 그의 용기를 찬탄하여 ‘위대한 포기’라고 하였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린 본래의 부처님, 석가모니부처님은 무집착의 아름다움을 몸소 실천해 보인 것이다.

제5막-6년 수행하심(雪山修道相)
석가모니부처님은 온갖 수행, 즉 만행을 하며 먹는 것도 잊고, 자는 것도 잊었다. 6년의 세월 동안 당시의 많은 정신적 지도자를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수행 목적이 불순하다는 것을 알았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도 부처님은 자기 식의 수행 패턴을 찾아내었다. 이것이 큰 결실이었다. 설산에서의 그 모든 고행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헛된 것은 없으며 무가치한 것은 더더욱 없음을 경험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제6막-깨달음을 이루심(樹下降魔相)
석가모니부처님은 기존의 수행자들의 태도가 육체 속에 정신이 갇혀 있다는 고정관념과 육체와 정신이 둘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육체와 정신을 다 함께 컨트롤해 가는 종합적 삼매 방법을 터득하였다.
세상사 모든 일은 결국 자기로부터 출발하였으므로 자기 자신이 진정 무엇인지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을 인식하였다. ‘나는 무엇인가(是甚 )’, ‘나!’에 대하여 일구월심(日久月深) 사유하고 밀어붙인 끝에 드디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자신이 본래로부터 부처(佛)임을 자각하였다. 이 순간 모든 마의 먹구름은 걷히고 밝음의 세상이 펼쳐졌다.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연기(緣起)의 연화장 세계가 시공간을 장식하고 있음을 보았다.

제7막-45년간 법을 설하심(鹿苑轉法相)
석가모니부처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외쳤다.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
비구가 60여 명이 되었을 때 전도의 사명을 맡겼다. “이제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나 또한 우루벨라로 가리라.” 이 전도 선언의 주된 테마는 불교가 중생들에게 행복을 주는 이치 있음이요, 둘째는 부처님 자신이 앞장서서 포교의 장도에 오르셨다는 사실이다.
포교와 수행, 이판과 사판을 종횡무진하셨던 석가모니부처님은 35세 성도 이후 80세 열반에 드시기까지 중생 속을 거닐며 법을 설하셨다. 부처님은 큰 포교사요, 법사이셨다. 대도시에 죽림정사(竹林精舍) 등 절을 세웠으며 이로 인해 불법(佛法)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부처님 가르침은 만인에게 평등하였다. 여성들에게도 출가를 허용하여 종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남녀평등 사상을 실현하였고, 사성제 계급을 초월하여 제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완전한 인간 존엄의 드라마를 현실 속에서 연출하였다.

제8막-영원함을 보이심(雙林涅槃相)
석가모니부처님은 오로지 중생을 위한 삶으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셨다. 그런데,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본래 생멸이 없건만 한 번 나심으로 중생에게 환희심을 일으키고 한번 드심으로 중생에게 발심의 계기가 되었다. 부처님은 대열반의 법문으로 ‘영원한 자아(自我)’에 의지하고 진리를 등불로 삼을 것을 간곡하게 이르셨다. 그리고 게으르지 말 것을 특별히 부탁하셨다. 인류의 영원한 희망, 석가모니부처님은 늦게 도착하여 통곡하는 제자 가섭에게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이시어 부처님의 진정한 몸(法身)은 영원하심을 보여 주었다.
부처님은 진리를 체(體)로 삼으시기 때문에 여여부동(如如不動)하시다. 단지, 석가모니부처님은 눈이 어두운 우리 중생들의 눈을 뜨게 하시려고 이 사바세계에 오시어 한바탕 연극을 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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