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지혜의 향기/ 봄봄

2007-09-28     관리자

입사 면접에서 면접관이 “30대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안정된 가정을 꾸밀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입사면접관들은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한 면접관이 “그렇다면 결혼하고 회사를 그만 두시겠네요.”라고 물었고, 나는 내친 김에 “가정이 일 때문에 위협을 받는다면 나는 가정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호기까지 부렸다.
면접고사장을 빠져 나오면서 경박한 태도를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그 회사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다. 인사담당자의 말로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의지를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했지만, 지금도 내가 그 회사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봄만 되면 계절을 앓았다. 수선화가 필 무렵부터 벚꽃이 질 때까지 허기진 사람처럼 늘 투정을 부렸다. 가벼운 불안감과 정체 모를 답답함으로 봄 한나절을 보내기 일쑤였다.
매달 반복되는 업무가 나를 지치게 했고, 그런 일상에서 뚜렷한 돌파구는 없었다. 변화를 바랐지만 조직에서 변화는 인정되지 않았다. 선배언니들은 “네 소원대로 안정된 가정을 가져야 치료될 병”이라고 진단했지만 삶이 불안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봄이 싫었다. 남들은 3월이 새출발하는 출발점이라고 했지만 무엇을 두고 출발이라고 표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던 80년대 후반에 20대를 보내면서 내 나이 30대에는 안정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안정된 가정을 바라고 20대에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생채기투성이였다. 사소한 말싸움 끝에 이혼을 다짐하다가 아이의 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마음을 풀기 일쑤였다. 육아와 살림에 지쳐 겨울이 가는지 봄이 오는지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여유도 없었다. 결혼 후 감당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겨우내 집안에서 맴돌던 아이가 꽃이 피었다고 밖으로 나가자고 조를 때 봄이 왔음을 느꼈고, 종달새의 노랫소리에 명랑한 웃음으로 화답하는 아이들로 인해 봄은 아름답고 희망이 넘쳤다. 가정이 나를 구원해 주리라던 선배언니의 처방이 어떤 의미로는 딱 들어맞았다.
봄이 아름답고 희망에 가득찬 계절이라는 것을 깨닫기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절망도 많았던 것 같다. 꽃이 피고 개울물이 흘러 봄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시련과 추위, 고통을 말없이 견뎌내고 생명의 씨앗을 틔우는 과정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봄은 희망의 계절임에는 틀림없지만 수없는 절망과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만이 봄의 의미와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봄의 그림자만 밟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0대가 되면 안정되리라던 단순한 희망은 사라졌지만, 해마다 다가오는 봄을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원동력은 마음의 평화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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