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관한 어느 불자님의 질문에 대한 답

2004-10-05     관리자

[인연에 관한 어느 불자님의 질문에 대한 답]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인연에 의해 발생한다(因緣生起=緣起)>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연기의 가장 근본적 원인으로는 12 가지(十二因緣) 있으며, 그것을 역(逆)으로 올라가 볼 때 그 정점엔 <어리석음(無明)>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기에 세상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지금 일어나는 현상에 속아 원망과 미움, 사랑과 편견을 일으켜 끝없는 윤회의 멀고도 고달픈 길을 걸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연은 내연(內緣)과 외연(外緣)의 두 가지가 화합해야 일어납니다. 그래서 인연생기라 하는 것인데, 가령 씨앗을 뿌려 싹이 틀 때 씨앗은 내연이요 흙과 태양, 그리고 영양분들은 외연이 됩니다. 씨앗 품종이 좋지 않을 때 외부의 노력은 한계가 있는 것처럼, 아무리 품종이 우수하더라도 외부 요인이 좋지 않으면 또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모든 현상은 이런 여러 인연의 종합적 결과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대단히 어렵게 들리시지요? 좀더 쉽게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연기란 요즘 언어로 이야기하면 <모든 현상은 multi-factor에 의해 일어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 중에 내연은 intrinsic fx 요 외연은 extrinsic fx 라 할수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존재 자체는 부모님의 결혼에 기인한 것이며, 부모님 역시 양 쪽 부모님들이 있었기에 존재하십니다. 그렇게 따져 나가볼 때 우리의 존재에는 어마어마한 우주적 시간과 공간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길가의 풀잎 하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수없이 얽히고 설킨 인연의 산물이 우리가 흔히 보는 존재의 정체요 또 우리가 만나는 여러 고통, 행복의 기전입니다. 그러니 풀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각설하고, 이제는 불자님 문제로 나아 가 봅시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불교에서는 우리가 만나는 인연을 다섯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1.은혜 갚는 인연
2.원수 갚는 인연
3.빚을 받는 인연
4.빚을 갚는 인연
5.none of the above


우리가 인간 사에서 흔히 만나는 이해 안 되는 일들은 대개 위의 1-4 번까지의 이유로 그러합니다. 이것은 부모 자식 간, 부부 간, 형제 간, 친구 간, 그리고 직장 동료 등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웃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내용을 모르고 그저 사랑하고 그저 미워하고 그러다 세월을 보냅니다.



겉보기에 부당한(?) 행복을 누리는 또 다른 이유는, 당사자의 복(福)에 기인합니다.


과거 생에 복을 많이 지어놓은 분들은 금생에는 무엇을 해도 복이 됩니다.
나는 엎어져도 코가 깨어지지만, 복을 지어 놓은 분들을 절벽에서 떨어져도 손끝 하나 안 다치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복은 한계가 있는 복(有爲法)이라, 복이 다하는 날엔 기름 떨어진 자동차처럼 그 자리서 모든 행복은 멈춥니다.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패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이 두 가지(intrinsic fx)만 있다면 현재는 몰라도 미래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든 원수든 빚이든 어떤 인연에서건 그렇게 지어진 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고, 또 당사자의 복은 복대로 복을 누리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 사이의 갈등은 인연이 다하는 날 저절로 소멸될 것이고 오늘의 고통도 그걸로 끝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의 악연은 오늘의 악연으로 이어지고, 오늘의 악연 역시 내일의 더 큰 악연으로 프로그래밍 됩니다. 그것은 intrinsic fx에 치명적인 extrinsic fx가 가미되기 때문입니다.



치명적인 extrinsic fx 란 무엇인가?
바로 처음에 말씀드린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기에 지금 빚어지는 현실이 어떤 기전으로 오는지 알지 못하고, 오해와 질투와 원망, 편견을 일으키고, 그 결과 금생에서 끝날 업이 미래에까지 새롭게 다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가 과거 생 언젠가에 심어놓은 일들입니다.



겉보기에는 동생이 이유없이 부모님의 환대를 받고 나는 이유없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지 못한 어느 때에 그런 인연을 심어 놓은 것이지요. 그러니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인과가 지어지지 않습니다.


며칠 전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까마득한 과거 생 일을 우리가 어찌 모두 기억하겠습니까? 그리고 대개 우리는, 남에게 상처받은 일은 좀처럼 잊지 못하지만 상처 준 일은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두 어리고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달마 대사는 해탈로 가는 네 가지 삶의 방식 중에
보원행(報怨行,원망을 하지 않는 행)을 그 으뜸으로 설하십니다.



<어떠한 일이 네게 일어나도 그것은 과거 네가 알지 못한 어느 때 심어놓은 인연이 지금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연은 네가 지금 원망 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지금 일어나는 그것으로 사라지고 만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라고 하는 영원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인연의 산물이니 일체가 공(空)한 것. 그러니 부디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라!>


달마 대사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또한 그런 이유로 유명한 보왕삼매론에도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굳이 그것을 풀려고 하지 말아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업장은 일어남으로써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 말씀이 어느 정도 불자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모두 제 언변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러니 부족한 언변에 이해는 덜 가시더라도, 제가 말씀 드리려한 뜻은 꼭 한 번 새겨 보시기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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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賢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