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금강경만으로는 안 되는가?

2004-10-02     관리자

[왜 금강경만으로는 안 되는가?]

금강경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종단인 조계종의 유일한 소의경전입니다.
또한 대승 불교권에서 예로부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경전을 하나 들라면 바로 금강경일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많은 선지식이 설법을 하고 수많은 해설서가 나와 있는 경전 또한 금강경입니다. 아마 금강경처럼 많은 해설서, 논문이 나와 있는 불경은 그리 흔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금강경은 수행자의 필수서로 되어 있습니다. 실지로 금강경으로 밝음을 이룩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보현행원 수행을 하는 저는 '금강경만으로는 안 된다'고 감히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원만하고 무애원융한 수행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금강경 외에 화엄,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보현행원을 공부해야 하리라 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사실 금강경의 사상은 넓게 보면 이미 화엄경에 설해져 있습니다. 어찌 보면 금강경은 화엄의 일부분일지도 모르지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워낙 탐험을 많이 해서 길을 보면 어느 길이 바른 길인지 훤히 아는 탐험의 대가가 있다 합시다. 이 탐험가는 그동안 실수도 많이 하고 해서 길을 찾는 지혜를 터득하여 어떤 미지의 길을 가더라도 웬만한 길은 다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달리, 그런 대가만큼 경험도 많지 않고 길눈도 밝지 않아 미지의 길을 갈 때 스스로 길을 찾기는 쉽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런데 이 분이 만약 미지의 길을 잘 알려주는 지도나 안내자를 동반하고 간다면 탐험가 못지 않게 쉽게 바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미 알려진 길을 간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길을 가다 보면 길눈도 자연히 밝아져 웬만한 미지의 길은 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프랙탈 구조라, 하나에 능한 분은 다른 일에도 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행원도 이와 같습니다.


길눈에 밝은 탐험가가 지도나 안내자 없이 미지의 길을 스스로의 지혜로 밝혀 찾아가는 것이 금강경 단독 독송으로 밝아진 이들의 모습이라면, 안내도를 따라 헤메지 않고 바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금강경과 보현 행원을 같이 독송하는 이들의 공덕입니다.



행원에는 우리가 어떻게 밝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아주 상세히 설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그러면 당장 밝은 삶, 일체 중생에게 이익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우리도 모르게 부처님 밝은 빛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항복기심!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어떻게 해야 그 마음을 닦는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설명하셨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이해와 실천이 쉽지 않다는 말일 것입니다.



물론 금강경으로 밝아진 분들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항복하는 마음, 머물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평범한 분들은 그 말이 옳은 것을 어렴풋이라도 이해는 하지만, 실지로 어떻게 해야 그 마음을 항복 받고 그 마음을 머물지 않는지 참으로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해설도 설명도 많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화엄, 구체적으로 보현행원은 그 뜻을 알든 모르든 항복하는 마음, 머물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또한 그렇게 살다보면 누가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을 자연히 알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전문 학자나 수행자들처럼 '완벽히(?)' 알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집착을 끊으려 몸부림치지 않아도 집착은 옅어지며, 아상(我相)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행원이 깊어 가면 아상 또한 점점 남의 일이 되어갑니다. 집착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는 사실을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렇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화엄 사상이요 보현행원입니다.


나의 생명이 보잘것없는 중생이 아니라 똑같은 부처님 생명!
그 무한한 부처님 무량 공덕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행원에는 밝은 마음을 얻은 후 중생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상세히 설해져 있습니다. 불지(佛地)에 이른 분이야 이런 내용을 알려주지 않더라도 삶 자체가 그렇게 되어가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아무래도 가르침을 들음만 못합니다.



그리고 대승에서야 성불을 쉽게(?) 말하지만, 실지로 불지에 드신 분은 역사 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밖에 안 계신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조사선(祖師禪)에서는 조사들이 부처님보다 훌륭한 것처럼 말씀들 하시기도 하지만, 조사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원만함, 그 밝음에 있어 부처님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믿음입니다. 그야말로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인 것입니다.



그러니 웬만한 밝음을 이룩했다 하더라도, 부처님처럼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해진 가르침을 배우고 닦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처님의 삶이 가장 밝게 그 핵심이 요약되어 있는 가르침이 보현행원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금강경 공부로 끝날 것이 아니라
반드시 화엄 수행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밝은 마음'으로 '밝은 길'이 구체적으로 설해진 그 길을
중생을 위하여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감히 '금강경만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시아본사아미타불




普賢 合掌


*덧글:실지로 단경에서 육조스님은 '모름지기 반야행을 닦고 금강경을 지송하라'고 하십니다.
당신은 금강경으로 돈오하셨지만 반야행을 그만큼 강조하신 것입니다.
당신같은 근기가 아닌 분을 배려하신 자비의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육조스님이 강조하신 그 반야행은 다름 아닌 바로 '자비행'입니다.
반야는 행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자비행의 정수가 바로 '보현행원'입니다.




평도: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금강경은 반야부의 경전인지라 역시 없음에 많이 치우쳐 있습니다. 있음에만 빠져 있는 중생들에게 그 것이 허망함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반야부가 설해졌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10/03-18:39]-

평도: 그래서 금강경만 수지할 때에는 실천은 없는 수행에 빠져들어가기 쉽다고 봅니다. 반야부인 금강경을 읽고, 모두가 부처라는 여래장계의 경전으로 본래면목에 대한 정리를 한 다음 최종적으로는 보현행원으로 회향한다면, 바람직한 수행이 되게 -[10/03-18:42]-


普賢 : 평도님, 반갑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핵심을 리플주셨군요!*^*^* 아울러 수정하여 덧글에 제 의견을 간단하지만 말씀드립니다._()_ -[10/03-2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