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다시 나툰 불국토의 화현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한국의 불화 20권 간행

2007-09-28     관리자


“불 화(탱화)는 장엄한 불국토의 화현이요, 신심의 결정체이며, 불보살님의 원만한 상호에서 우러나오는 복덕의 광명은 어둠을 없애주고 간절한 바람을 성취시켜줍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훼손으로 인해 친견하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평생 불화를 그리고 모셔왔는데 변질되고 소실, 망실, 훼손되어가는 불화를 보면서 남아있는 탱화를 보존 복원하고, 실태를 조사하고 집대성하여 자료화하여 전집을 만드는 것을 원으로 삼았어요. 전집을 만들게 되면 유실을 예방하고 유실 뒤에라도 재현할 수 있고, 전문 학자들에게 참고자료로 제공하여 전통의 맥을 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석정(石鼎 74세, 佛母, 중요무형문화재 제 48호 단청장, 사단법인 성보문화재연구원 총재) 스님은 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 뜻을 전해보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그 일을 해보겠노라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다가 막대한 재정이 확보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적임자인 통도사 성보박물관 범하 스님을 만나 의기투합하면서 이 일을 성취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11월 2일 5천여 점의 탱화를 집대성하는 한국의 불화 1차분 20권 완간을 축하하는 기념식장(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만난 석정 스님은 불모(佛母)이신 일섭(日燮) 스님의 맥을 이어 일평생 불화에 전념해왔지만 소실되어가는 불화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노라고 말씀하신다.
“지난 ’89년 송광사 대웅전 탱화 조성 불사를 위해 전국의 탱화를 돌아보던 석정 스님이 탱화 보존 관리의 한계를 실감하고 원력을 세우신 것이 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환갑이 넘으신 스님이 어느날 ‘평생 불화를 그리고 모셔왔는데 더 이상 변질 소실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어 남아있는 탱화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이 원이다. 이미 나는 늙어서 어려우니 이 일을 맡아 달라’며 뜻을 비추시고 미원그룹 임창옥 회장의 출연금 3억원과 스님께서 평생동안 소장하고 있던 선묵도 전시회를 통해 마련한 8억원이 재정원이 되어 이 일이 전개될 수 있었습니다.”
석정 스님의 원은 마침 범하(梵河 54세,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사단법인 성보문화재연구원 이사, 문화재 심의위원) 스님이 실질적인 수장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1995년 직지사 본말사 불화를 담은 불화집 2권과 통도사 본사 불화 2권을 우선 발간하여 출판기념회를 가진 것을 계기로 하여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연 6천만 원 지원)와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연 4천만 원 지원) 등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1996년부터는 예산을 편성하여 5년에 걸쳐 1차분 20권이 완간된 것이다.
불화집 1권에 소요되는 경비(권당 1억 원 정도)도 경비지만 불화를 사진으로 찍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장비만 해도 갤로퍼 세 대가 움직여야 한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사찰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사찰에는 그 많은 장비를 하루종일 메고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면 그 절 스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탱화 앞의 불상과 여러 조형물들을 일일이 들어내고 불단의 탱화를 모셔 나와야 했다. 사진을 찍고 나면 먼지를 제거하고 보존처리를 하거나 보수작업을 해드리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다.
“각 사찰의 주지 스님과 관계자 여러분의 도움 없이는 이 작업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사요원들이 한 달이면 보름씩은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신심과 원력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작업이지요. 1990년 ‘전국 사찰불화 조사단’을 구성하고 10년간의 조사와 수집 촬영 끝에 이렇게 결실을 맺게 되었지요.
1980년대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예산과 20년간의 조사 끝에 불화집을 발간한 적이 있었지만 개략적이고 단편적인 정리에 불과해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한국불화의 전체적인 모습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만큼 불교문화사적인 측면에서도 큰 의의가 있을 테고 앞으로 불교문화를 집대성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불화는 감상 위주의 일반회화와는 달리 장엄한 불국토가 그려진 종교화이다. 일반적으로 고려불화에 대해서만 널리 알려져 있으나 사실 가장 한국화된 불화는 조선시대 불화로 이 불화집을 통해 조선시대 불화가 재조명될 수 있는 기회와 역할을 담당해갈 것이라고 범하 스님은 확신하신다.
그러나 그동안 불화집을 만들고 조사하는 데에만 혼신의 힘을 다하다 보니 보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확보된 300명의 회원들과 공공도서관과 박물관에 200부씩을 공급한 것이 고작이다 보니 쌓여진 재고가 훨씬 많다. 그래서 앞으로는 불화집을 발간하는 한편 보다 많은 회원 확보와 각 사찰이나 불교단체와 가정에 부처님을 모시듯 ‘불화집 봉안하기’ 운동, 그리고 해외보급 등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원력 성취가 최상의 기쁨이 아닌가 합니다. 일을 시작하고 보니 예상외로 많은 경제력과 인력이 필요했고, 숱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속에 20권의 불화집이 탄생하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발전의 터전이 되리라 봅니다.
보현행원품에 보면 수희공덕이라는 말이 있지요. 기쁨을 나눠갖고 따라 기뻐하며 기쁜 일을 함께 도모해가다 보면 이 세상이 그대로 불국토가 아니겠습니까. 이 불사는 여기서 멈출 일도 만족할 일도 아닙니다. 그 동안의 작업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기뻐하며 이 일을 함께 도모해가는 여러분이 있기에 다음 작업들도 원만히 성취되어가리라 봅니다.”
2차 간행사업 5개년 계획을 세워두고 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처음 1차 작업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고 작업이 지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일 또한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부처님의 일이니만큼 이루이지지 않을 리 없다고 석정 스님은 믿으신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범하 스님은 오랜 작업이 책으로 엮여져 나왔을 때, 그리고 보수 후 다른 그림이 되었다고 좋아하시는 모습들을 볼 때, 불화집을 넘기며 마치 부처님을 직접 친견하듯 환희로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들을 볼 때, 일일이 찾아가지 않아도 책상 앞에 앉아서도 자료를 참고해 좋은 논문을 쓸 수 있게 되어 감사한다는 관련인들 속에서 더욱 큰 보람과 힘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부처님 그늘에 살면서 부처님을 공경하며 한 평생을 살아오신 스님들이 수행의 한 방편으로 만드신 유산들을 잘 지키고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도 출가 수행자의 소임이 아니겠느냐며, 2차 간행작업뿐만 아니라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불화와 북한 사찰의 불화까지 총망라해갈 염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원을 다지신다.

이번에 1차분 20권으로 완간된 ‘한국의 불화’는 방대한 한국 불화를 처음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전국의 사찰에 봉안된 불화를 비롯하여 국공립박물관, 대학박물관, 사립박물관 등 국내외에 산재한 불화를 직접 조사하여 수록하였다. 후불탱화, 괘불, 보살탱화, 신중탱화, 각단탱화, 영탱화, 도랑장엄탱화 순으로 원색도판을 풍부하게 실어 원화를 직접 대하는 느낌이 들도록 하였으며, 불화의 명칭과 봉안처, 조성 연대, 조성 불사 소임자, 시주자의 이름을 적은 화기(畵記)의 원문과 매권마다 중심되는 불화에 상응하는 관계학자의 논문을 수록하여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간행된 목록은 통도사 본말사 편(3권), 해인사 본말사 편(2권), 송광사 본말사 편(2권), 직지사 본말사 편(2권), 월정사 본말사 편, 화엄사 본말사 편, 선암사 편, 금산사 본말사 편, 선운사 본말사 편, 마곡사 본말사 편(2권), 법주사 본말사 편, 대학박물관 편(2권), 사립박물관 편으로 전국 11개 본말사 164개 사찰과 대학, 사립박물관 소장 불화 1,621점 3,674컷 수의 불화가 원색도판으로 실려 있다.
그 외 현재 기획중인 2차(2001년∼2005년) 간행목록은 고운사, 관음사, 대둔사, 동화사, 백양사, 범어사, 봉선사, 불국사, 쌍계사, 수덕사, 신흥사, 용주사, 은해사, 조계사 본말사 편과 국공립박물관 편과 고려불화 편이다.
257×348mm 타블로이드판·250쪽 내외·전면 컬러 양장제본·각 권 90,000원 (20권 전질 구입시 120만원)발행처·성보문화재연구원 문의전화:02 - 587 - 6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