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소고(2)-깨달음은 순간적 사건인가?

2004-09-25     관리자

[깨달음 소고(2)-깨달음은 순간적 사건인가?]


우리는 흔히 '깨달았다', 또는 '깨쳤다' 라는 말을 잘 씁니다.
그런데 그렇게 깨침을 말한다면 깨달음이란 순간적 사건이요 과거에 끝난 사건이 됩니다.
과거에 순간적으로 끝나는 사건이 깨달음이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깨달음을 완성한다' 는 말 역시 곧잘 씁니다.
깨달음을 '완성한다'는 것은 깨달음의 '끝'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끝이 있는 것은 유위법(有爲法)이요 따라서 완성이 가능합니다.
이 또한 깨달음을 순간적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 경전에서는 완전한 깨달음(無上正等覺)이란 없다고 합니다.
단지 그 이름이 완전이지 실지로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승의 가르침이 맞다면, 깨달음은 '순간적 사건'이 아니라 '영원한 사건'이 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사건은, 말 그대로 끝이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완성되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차원적인 진리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 역시 끝이 없습니다.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또 다른 산등성이가 나오듯, 세상 모든 일이 끝인 줄 알면 또 새로운 시작이 나옵니다.
산등성이야 끝날 때가 있지만 우리의 삶은 죽을 때까지 매 번 새로운 시작의 연속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영광도 잠시뿐, 새로운 도전, 새로운 세계가 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 차원으로 보면, 영광도 실패도 모두 찰나적 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생명의 본성, 우주의 본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명이 끝이 없고 우주의 시간과 공간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간의 일조차 끝이 없는데, 출세간의 일이 끝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생사를 건 수행 끝에 다행히 본래 성품을 보았다(見性) 합시다.
그러면 그 후엔 무엇을 할 것입니까?
현실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본래 성품에 머물 것입니까?
그러면 그것은 문자 그대로 열반입니다. 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땅을 딛고 사는 것이지, 구름 속을 노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비록 천신만고 끝에 내 성품을 봤다 한들 그것이 끝이 아니고 필히 본래 소식을 현실에서 증명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무한하니 깨달음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깨달음은 '순간적 사건'이 아니라 '영원한 사건'인 것입니다.


깨달음이 영원하다는 것은, 깨달음은 우리가 영원히 깨쳐나가야 할 사건일 뿐 아니라
동시에 '지금 이 자리의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즉, 깨달음은 먼 훗날의 소식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자리의 소식이며,
우리는 '과거'에도 깨달았고
'지금'도 깨닫고 있으며
'미래'에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달음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영원하다는 것은 또한
깨달음이란 '닦아서 그 공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닦든 닦지 않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깨달음은 언제나 지금 여기서!
우리 옆에서 늘상 일어나는!
그런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닦아서, 수행해서' 깨닫는다고 자주 말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관점에서 보면
깨달음은 수행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깨달음은 영원한
나의 사건!
나의 본래면목인 것입니다.
나의 모습 나의 삶이!
본래!
깨달음인 것입니다.




내 본래 모습이 깨달음이니 따라서 우리는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깨달음의 삶, 부처님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깨달은 자에게만 오는
순간적 사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온 중생
온 법계에 휘몰아치는
영원한 내 생명의 장엄한 선언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도(悟道)라는 말을 함부로 쓸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 소식 오면 너도 나도 오도송을 읊는데,
도를 깨친다 함은 진실로 '부처님'한테나 쓰는 말입니다.
부처님 이전에 진실로 참된 진리를 본 적이 없었던,
그래서 처음으로 우주 진리의 소식이 완벽하게 중생에게 전해지게 된
부처님의 대각(大覺)에나 쓰는 말인 것입니다.


부처님에 의해 처음 밝혀진 깨달음의 불은 지금까지 이어져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꺼지지 않는 불이요 다함없는 불(無盡燈)인 것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우리가 깨친다는 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타고 있는 불, 이미 환히 이 우주를 밝히고 있는 불을 보고 누가 무엇을 더 깨친다는 것입니까?
부처님이 샛별을 보고 깨치신 이후,
깨달음은 이미 '온 중생, 온 법계'의 '영원한 사건'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법화경의
'부처님은 실로 열반에 드신 것이 아니라 방편으로 단지 열반을 보였을 뿐이며,
부처님은 지금도 영취산에 머무시며 법화를 설하고 계신다' 는 말씀은
바로 이 소식, '영원한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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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賢 合掌



성준호: 南無 大方廣佛 華嚴經
南無 實相 妙法蓮華經 -[09/29-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