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는 의미

함께 사는 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2007-09-28     관리자

이 생에서야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니까 한국인으로 살아야겠지만 다시 태어날 나라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한국을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녀 교육을 위해서 조기 유학을 보내거나 이민을 가는 사람들,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6위, 길거리를 걸어다니기도 무섭게 만드는 난폭 운전자들, 공금을 마음껏 낭비하는 관료들, 탈세를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변호사들,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환자를 볼모로 시위하는 의사들, 청소년들을 타락시키든 말든 돈만 벌면 된다는 상술들과 교묘하게 그것을 부추기는 매스컴의 무책임함 등등, 이 사회에 살고 있음을 부끄럽게 만들고 절망시키는 요소들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이 땅에서 탈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문화와 국민의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인이라는 것 자체를 수치스러워 할 날이 머지 않아 닥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인 모두가 의식을 개혁하고 협력해야만 국제사회에서 부끄럽지 않은 민족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절박한 상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한국인들의 의식을 개선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며칠 동안 한국을 방문하고 가셨다고 해서 한국인들 전체가 단번에 개과천선할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 전체를 개선시킬 출발점이 될 것은 틀림없다.
도대체 달라이 라마가 어떤 인물이기에 저렇게 열성적으로 초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걸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또한, 달라이 라마를 정치가로 몰아세우고 무시하려는 중국 정부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있고, 달라이 라마를 뵙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맹목적인 광신자들 정도로 생각하며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달라이 라마를 높은 수행자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인정하든 말든, 달라이 라마가 지금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종교지도자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에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위대한 인물이다.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권을 존중하고, 모든 중생에 대해서 자비와 평등심을 갖고 도우라는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은 종교를 떠나서 누구나 실천해야 할 가르침이다. 달라이 라마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각 종교의 장점을 인정하며, 각자의 종교에 충실하라고 가르치지만, 그 분의 가르침은 불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으며, 불교도들은 굳이 티베트불교의 수행을 따르지 않더라도 불교도로서의 필수적인 마음가짐이나 수행 방법들을 배운다면 기존의 수행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불교 수행의 지도자로만 국한시키고 그 분이 오시는 것을 꺼려하는 불교계의 일부인사들은 생각의 폭을 넓히고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계기로 해서 타종교간의 화합도 이루어질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성인들을 직접 뵈려는 이유는 살아있는 종교를 가슴으로 느끼기 위함이다. 수행자의 자비심과 겸손에 감화된 민중은 기꺼이 수행자의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부여받은 권위 때문에 수행자는 민중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훌륭한 인물의 존재에 감사하고 닮고 싶어하는 적극적인 열망이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계기로 해서, 훌륭한 분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한국인들의 경직된 마음 속에서 한번 일어나고 나면, 계속해서 우리 주위에서 훌륭한 인물들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개발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달라이 라마라는 호칭이 생긴 것은 제3대 달라이 라마인 ‘소남갸초’ (1543~1588) 때였다.
소남갸초 스님이 몽고를 방문했을 때, 알탄칸이 그분을 존경해서 ‘지혜의 바다’라는 뜻으로 몽고어로 ‘달라이 라마’라는 호칭을 지어 바쳤다. 소남갸초는 ‘겐뒨둡’(1391~1475) 스님으로부터 세 번째의 환생자였기 때문에, 소급해서 겐뒨둡을 제1대 달라이 라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정치와 종교의 최고 지도자가 된 것은 17세기의 제5대 달라이 라마(1617~1682) 때부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는 최고 통치권자이자 종교지도자로서 티베트를 이끌어왔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제 14대 환생자다. 달라이라마와 같은 환생자들을 티베트어로는 ‘뚤꾸〔化身〕’라고 부른다. 부처님이 중생을 돕기 위해서 화신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티베트에서는 그런 환생자들이 사회를 이끌어 왔다. 뚤꾸들이 제자들을 가르칠 능력을 갖고, 수행이 깊어지면 ‘라마’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뚤꾸가 아니더라도 능력을 갖추면 ‘라마’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다. 라마들은 티베트인들의 정신을 인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라마의 가르침은 재가자들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라마들이 무위도식하면서 농민들을 착취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와서 농민과 농노들을 해방시킨다고 말했다. 티베트인들은 공덕을 쌓는다고 기뻐한 일을 두고, 공산당원들은 착취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50년에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를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티베트 동부를 침공하기 시작해서 수도인 라사까지 진군했다. 1954년에 달라이 라마가 북경을 방문했을 때, 모택동은 이렇게 충고했다. “종교는 마약이다. 티베트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다.” 종교를 마약 취급하는 국민이 남의 땅에 침략해 들어와서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는 주인을 내쫓고 핍박하고 있는 나라가 현재의 중국이다.
티베트가 본래 중국의 일부였다는 주장은 중국 측의 억지에 불과하다. 티베트는 7세기에 ‘통일 티베트 제국’을 이루면서부터 지금까지 티베트인들이 살아온 땅이다. 1959년에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한 이래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와 티베트 난민들의 지도자로 살아 왔다. 그 분은 세계 각국을 방문하여 비폭력주의와 인권존중의 가르침을 펴며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한 공로로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이제 한국인들도 세계의 인권문제와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 가을에 달라이 라마를 한국 땅에서 뵙고, 우리 국민이 평화롭고 즐거운 미소를 가득 담고, 살기 좋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올해 3월 31일에는 불교계 73개 단체가 모여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5월 14일에는 기독교와 천주교와 시민단체를 포괄하는 범종교적 범국민적 조직으로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