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한의학 Ⅰ

불교와 21세기

2007-09-27     관리자

이제 21세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천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과연 불교가 살아있는 종교로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히려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한의학과 비교하면서 짚어보려고 한다.
먼저 불교와 한의학의 공부방법에 있어서 대학시절을 뒤돌아보면 처음 불교공부를 하는 경우에 조사어록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조사어록은 학교교육에 비교하자면 대학원과정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수준과 비슷하다. 가장 먼저 보아야 할 서적은 부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경전이다. 그 중에서도 부처님의 생생한 원음이 들어있는 아함부 경전을 통하여 기본적인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율장·논장·소·초의 순서로 단계별로 공부하여야 지금보다는 쉽게 불교를 이해할 수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삼법인(三法印)이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인데, 삼법인에 대한 불교인들의 인식은 아주 부족하다. 일반 생활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감도장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도장은 인감이 아닌 것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의 재산권을 행사를 경우에는 인감만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인감을 통해서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족으로서 부처님의 재산을 사용할 권리는 삼법인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교리가 있어도 법인(法印)이라는 것은 삼법인뿐이다. 아무리 많은 불교교리를 안다고 해서 진정한 불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법인을 가지고 있는 불교인이 참 불교인이다.
또 한 가지는 특히 한국 불교계가 경전공부보다는 참선공부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많은 불교인들이 참선에 정진하나, 그보다 앞서서 해야 할 기본적인 경전공부에는 소홀히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경전공부를 통해서도 깨달음에 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행의 기본은 신해행중(信解行證)이다. 신(信)과 해(解)를 바탕으로 할 때 흔들림 없이 행증(行證)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처럼 기본을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할 때 지금보다는 더 많은 불교인들이 깨달음의 길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참선 수행을 하는 불교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참선을 할수록 몸이 건강해져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 나빠지니 이상한 일이다”.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은 우리의 몸과 마음은 “신형일체(神形一切)”로서 몸이 좋아야 정신도 좋아지고 정신이 나빠지면 따라서 몸도 나빠진다고 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참선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몸을 먼저 다스리는 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기본에 대한 바른 인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좌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포행이나 체조도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절에서 49재 지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49재라면 사랑했던 가족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비는 간절한 기도로 알고 있는데, 정작 스님께서는 열심히 독경을 하시는 도중에 가족들이 졸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이런 현상은 스님께서 독경하시는 경전의 내용이 한자로 되어있어 가족들은 전혀 그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독경의 내용이 한글로 되어 있어 가족들이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본다. 아마 졸던 모습은 사라지고 구구절절이 가신 님에 대한 추모의 내용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독경을 통한 가피력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선 기본적인 것은 독경의 내용을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의학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한의학 용어는 한자로 되어 있어서 그 뜻을 분명히 하는 개념정의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과과정을 보면 서양의학 용어 과목은 열심히 배우면서 한의학 용어에 대한 것은 교과과목에도 빠져 있다.
그러므로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서 한의사가 된 후배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한의학 공부 어떻게 하나요?”이다. 한의학을 4년도 아니고 6년씩이나 배우고 나서도 공부방법을 질문하는 현실을 보면서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한다.
지금의 불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중국의 문화와 융합되면서 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불교는 내세 중심적이고 현실을 떠나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점이다. 불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불교처럼 과거의 문제도 아니고 미래의 문제도 아닌 ‘지금 여기’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종교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과거·현재·미래’라고 칭하지만, 많은 경전 속에서는 ‘과거·미래·현재’로 시간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얼마나 불교가 현재 중심형인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한의과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선배들로부터 “한의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산 속에 들어가 몇 년씩 혼자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의학이란 그 시대마다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발전 변화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의학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각각의 시대에 가장 문제가 되는 급성질환위주로 발전해 온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에 그 시대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이미 의학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나 한의학 모두가 다시 한번 기본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며, 기본에 대한 철저한 관심이 있어야만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살아서 숨쉬는 생명력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많이 접할 수 있는 표어 중에서 ‘기본이 바로 선 나라’라는 것이 있다. 새 천년을 맞이하여 어느 때 보다도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