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의 진보

초대설법 /미얀마 사야도 우 빤디따

2007-09-27     관리자

자질을 갖춘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며 꾸준히 명상 수행을 해 나가면 보통의 의식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현실에 관한 상이한 진실들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명상적인 통찰들은 명상자의 성격이나 지식 수준과는 관계없이 다만 올바른 명상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집중력과 마음의 순수성의 정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일어난다.
이 단계에 대한 언급은 강력한 주의를 요구한다. 당신이 명상수행을 하고 있다면 진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도록 하라! 아주 숙달된 명상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수행을 평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치열한 훈련과 개인적인 경험을 쌓은 교사라야 비로소 다른 명상자가 자신의 수행에 대해서 구두로 보고할 때 특수하고 미묘한 진보의 신호를 인식할 수 있다.

마음과 물질에 대한 통찰
관찰하는 마음 또는 의식과 물질, 즉 의식의 대상 사이를 구분해서 알아차림.
인간 경험의 100%가 마음과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 통찰은 마음과 물질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자아가 존재한다는 잘못된 견해를 일시적으로 제거해 준다. 알아차림이 지속되는 한 담마에 대한 의심은 일시 중지된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통찰
마음과 물질 사이의 인과적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 예를 들어 어떤 정신적인 의도에 따라 육체적인 감각들이 잇달아 일어나거나, 몸의 어떤 부분에 고통스러운 감각이 발생함에 따라 자세를 바꾸고 싶은 의도가 일어나는 것을 관찰해 나감에 따라 인과 관계에 대한 직관이 불시에 생겨난다. 단지 마음과 물질만이 있고 나아가 이 요소들은 서로가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것을 통찰하게 되면 외적인 어떤 힘이 우리의 경험 세계를 있게 한다는 그릇된 견해가 제거된다. 단지 원인과 결과의 계속적인 고리만이 있다는 것을 통찰하게 되면, 사건들이 우연하게, 원인도 없이 발생한다는 그릇된 견해가 제거된다.

비영원성(無), 불만족스러움(苦) 그리고 자아의 부재(無我)에 대한 통찰
무상을 통찰하는 지혜(Anicca vipasananana) : 의식의 대상이 끊임없이 사라지고 또 그 일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봄. 영원하다는 잘못된 견해가 제거되고 자존심과 자만심이 약화된다. 고를 통찰하는 지혜(Dukkha vipasananana) : 대상의 붕괴, 와해를 지켜 보면서 영원하지 못함에 대한 불만족스러움과 비영원성의 억압을 이해한다.
어떠한 대상에도 영원한 피난처가 없고 무상은 위압적이고 탐탁치 못한 것임을 깨달음. 무상한 것들 속에서 지속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그릇된 견해가 제거된다.
무아를 통찰하는 지혜(Anatta vipasananana) : 대상들에 내재한 비영원성과 고통이 제어할 수 없는 것임을 봄. 사람 또는 어떤 다른 존재가 대상들의 사라짐을 방지하거나 조종할 수 있다는 환상이 제거된다. 그리고 마음, 물질, 사람들 속에 고유한 본질적인 요체가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사라진다. 이러한 세 가지 직관들은 위빠싸나 명상의 첫 번째 선정에 상응되는데 즉 첫 번째 선정 때는 무상·고·무아의 보편성을 반조하게 된다. 이 때 수행자는 대상들이 이 세 가지의 조건들로 특징화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또한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성찰한다. 바른 이해에 대한 지혜(Sammas-ananana, 思惟智), 실제적인 검증에 의한 이해 : 무상·고·무아의 세 가지 표식이 동시에 뚜렷하게 보여진다. 수행자는 이제까지 들어만 왔던 담마가 진실이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 통찰은 위의 통찰들과 함께 위빠싸나 첫 번째 선정이 충분히 개발되었음을 말해주며, 그리고 모든 대상과 경험을 무상·고·무아의 세 가지 측면에서 보는 위빠싸나 정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일어남과 사라짐에 대한 통찰
마음은 대상이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다시 말해서 각각의 정신적 육체적 현상의 대단히 재빠른 시작과 끝남을 본다. 이 통찰은 위빠싸나 두 번째 선정에 해당된다. 이 때의 특징은 개념상의 생각이 약화되고 강렬한 환희심과 평안함이 찾아온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알아차림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유쾌한 경험(통찰의 오염)들에 매달린다.
수행자는 담마에 대한 깊은 믿음과 담마를 전파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끼며, 그리고 자신이 깨달았다고 믿기도 한다.

‘길과 길 아님(道와 非道)’에 대한 통찰
수행시 느끼는 환희심, 신심 등을 계속 마음 챙김하여 알아차리면 이것들에 집착하는 경향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수행자는 올바른 수행의 길이 기쁨에 찬 상태를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알아차림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 시점부터 그들은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통찰 속에서, 위빠싸나 세 번째 선정이 주도하기 시작한다. 이 것의 눈에 띄는 요소들은 행복감 또는 평안함이며, 그리고 모든 위빠싸나 선정들의 기저를 흐르는 평등심이 뚜렷하게 명백해지기 시작한다. 수행자는 고통없이 오랜 시간 동안을 앉아 있을 수 있게 된다.

소멸에 대한 통찰
마음이 각 대상의 시작함과 중간과의 접촉은 끊어 버리고 대신 끝남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의식은 오직 모든 것의 소멸만 인식한다. 몸에 대한 개념적인 모습들이 불분명해진다. 소멸에 대한 통찰이 성숙해짐에 따라, 중립적인 감정이 몸과 마음에서 현저해지기 시작한다. 평안한 것도 평안하지 않은 것도 아닌 수행자의 마음은, 모든 현상들의 사라짐을 침착하게 바라보면서 쉴 수 있게 된다.
이 통찰은 위빠싸나 네 번째 선정의 시작이다. 행복감과 평안함의 요소들은 사라지고 평등심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통찰의 각 순간이나 직접적인 알아차림 속에서 이제 개념적인 생각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다.

공포에 대한 통찰
모든 현상들의 공포스러움을 봄〔역자 주 : 모든 주관, 객관의 형태가 사라져 가는 면만 관찰됨에 따라 즉 매순간 알아차리는 의식과 알아차려지는 대상이 쌍으로 계속 사라짐을 봄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조건지워진 현상도 이처럼 소멸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일체의 조건지워진 현상은 참으로 두렵다는 것에 대한 통찰(잭 콘필드 지음, 김열권 옮김 『위빠사나 열두선사』 426쪽 참조)〕

혐오감에 대한 통찰
모든 현상들의 붕괴되고 산산조각이 나는 혐오스러운 풍경을 봄.

해탈을 염원함에 대한 통찰
이 모든 불만족스러운 경험들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수행을 계속해 나가고 싶은 욕구가 충심으로 우러 나온다.

모든 대상들을 평등하게 간주하는 것에 대한 통찰
마음챙김이 극도로 발달함에 따라, 마음이 유쾌함 또는 불쾌함에 의해서 어지럽혀지기 전에 재빨리 대상을 포착한다. 반응이 부재한 가운데서 마음은 침착함과 한결같음으로 일관한다. 이런 통찰이 있는 동안, 수행자는 아라한이나 완전히 정화된 깨달으신 분의 정신적 상태와 유사한 평화스러운 정신적 상태를 경험한다.
마음이 열반의 평화 속으로 꿰뚫고 들어 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극도의 균형적인 상태에서부터이다.

평화의 행복, 열반에의 통찰
정신적, 육체적 현상들이 멈춘다. 도와 과의 의식 ; 열반 ; 반조해 보는 성찰의 의식.
이것은 보통 깨달음이라고 알려진 경험인데, 이것은 결정적인 변화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깨달음에는 4단계가 있다. 각 단계는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통찰 체험들을 완결한 후에 도달한다. 수다원(Sotatanna) 또는 입류라고 불리는 첫번째 단계에서는 도의의식(path consciousness)이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의 오염, 의심, 그리고 잘못된 수행에 집착하는 것을 뿌리뽑는다. 게다가 지옥이나 동물로 태어날 정도의 번뇌는 뿌리뽑힌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번뇌들도 약화된다. 수다원은 윤회의 세계에 이제 7번만 더 태어나면 된다고 말해진다.
그리고 첫 번째 도의 의식으로 인하여 낮은 영역에로의 출구가 막혔기 때문에 7번의 재탄생 모두가 다 인간의 영역 또는 그 이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과의 의식(fruition consciousness)은 모닥불이 다 타고 남은 재 위에 뿌려지는 물에 비유된다. 이것은 오염된 것들이 뿌리뽑힌 그 자리를 식혀준다, 성찰 의식(reviewing consciou-sness)은 도의 의식과 과의 의식을 반조하여 성찰하고, 의식의 대상으로서의 열반도 성찰한다.
그리고 역시 앞으로 더 나아갈 길을 조사한다. 수행자는 정화 작업이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막 시작되었음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아직도 고통을 주는 번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다음 단계들
사다함(sakadagami), 아나함(ana-gami), 아라한(arahant). 통찰의 진보는 세 가지의 도와 과의 의식으로 이끈다. 수다원은 단지 부분적으로 깨달았을 뿐이다. 세 단계의 정화 작업이 남아 있다.
열반의 평화에 연속적으로 점점 더 몰입하게 되어 그 결과 연속적으로 점점 더 깊은 행복과 만족의 단계에 이르른다. 정화된 마음의 행복은 모든 인간의 천부적 권리이다. 모든 수행자들은 모든 내적 고통을 박멸하고, 완전한 평화를 이룩하는 아라한이 되도록 원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