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농사

함께 사는 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2007-09-27     관리자

가을의 문턱에서 남과 북의 가족이 50여년 만에 처음 만났습니다. 그들은 지척에 살면서도 지구상에서 가장 먼 나라 사람들이었습니다. 서울과 평양, 그 짧은 거리를 가는 데 50여 년의 세월이 소요되었기 때문입니다. 온 겨레는 TV 앞에서 숨을 죽이고 이들의 만남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이 기쁨에 겨워 우는 순간 서울도, 평양도, 금수강산 모두가 함께 울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만든 우리 민족, 아니 세계 최대의 비극이었습니다.
분단 50년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큰 수확은 정말 온 겨레의 마음을 감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짧은 만남이라 아쉬움이 컸지만 죽기 전엔 얼굴 보기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오늘의 만남이 갖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실은 그 이상의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만남이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민족통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이 가을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농사 아닌 일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부터 민족 최대의 결실―통일을 거두기 위한 농사를 차분히 지어야 합니다. 그냥 왕래가 빈번해진다고 통일이라는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농사가 봄부터 가을까지 흘린 농부의 땀방울에 비례하여 결실을 거두듯이 민족의 소망인 통일도 온 겨레가 농부의 마음으로 얼마만큼의 땀과 정성을 쏟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바야흐로 새천년 통일시대를 맞이하여 지금 이 순간 통일 농사꾼인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참농부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농부로서 통일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 가을의 문턱에서 잠시 생각해봅니다.
통일시대는 먼저 하나됨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참농부는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라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농사란 혼자서 짓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이 협동하여 짓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연기법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내 몸 아닌 것이 없습니다. 농부와 벌레, 농부와 잡초까지도 한몸, 한생명입니다. 그러니 농약, 제초제는 무용지물입니다.
통일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분단의식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남북은 하나지 결코 둘이 아닙니다. 과거 생각이 달라 잠시 헤어졌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입니다.
하나라는 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기게 됩니다. 진정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닫힌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마음이 열리면 미워해야 할 대상도 없고 타도해야 할 대상도 없어집니다. 오직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 상대방을 겨누고 있는 분노의 총칼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통일시대 우리는 진정한 하나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통일시대는 바로 미래세상을 여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참농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곡식 한 알 한 알엔 농부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농부의 마음이 기쁘면 작물도 기쁜 마음이 됩니다. 농부가 햇빛과 바람과 우주의 만물에 대해 고마운 마음으로 작물을 키우면 그 곡식은 건강한 먹을 거리가 됩니다. 그러한 먹을 거리를 먹는 우리의 마음도 당연히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농사가 힘들다고 찡그리면서 짜증내는 마음으로 키운 곡식을 먹으면 우리의 마음도 함께 험악해집니다. 농부의 마음이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고, 험악하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참된 농부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통일된 미래세상은 이기적이지 않고 순수함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을 경제적 손익관계를 따져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를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단순히 통일만이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다시는 이런 비극을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진정 아름다운 미래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오늘 만남의 감동을 결코 잊지 않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면서 정말 좋은 통일된, 아름다운 미래세상 지킴이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통일시대는 나눔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농부의 진정한 보람은 수확을 거두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결실을 나누는 데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농부들의 나눔과 희생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돈인 현대사회에서 몇 달 혹은 1년 걸려 생산하는 농산물은 엄청 비싸야 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농부들은 희생하면서도 사회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겠다는 마음으로 참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농촌의 고령화된 농부들은 아무리 농사일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포기하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결실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산하는 것은 경제적 소득만을 목적으로 생산되는 다른 농산물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부모님의 땀과 사랑과 고통이 함께 어우러진 사랑의 선물입니다. 명절 때 자식들이 오면 부모님들은 기쁜 마음으로 한 가지라도 더 싸주기 위해 애를 씁니다.
통일 농사는 바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마음으로 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 동안 쌓아놓은 재물을 아낌없이 북한의 부모형제들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뜨거운 한핏줄의 동족애로 북한의 가족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우리가 북쪽보다는 현실적으로 풍족한 편이기 때문에 아낌없이 나누어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통일시대에는 불교의 무소유정신을 바탕으로 아낌없이 나누는 진정한 통일인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지금 들판에는 농부의 땀방울이 누런 곡식으로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봄부터 여름내 햇빛과 바람이 전해준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한 가을들판은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흐뭇합니다. 이번엔 진짜 농사가 대풍이 되어 온 국민이 그 결실의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가을은 정말 풍요로울 겁니다. 우리 모두 가을의 풍요를 기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