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진실이 모든 진실들에게로 인도한다

초대설법/미얀마 사야도 우 빤디따

2007-09-27     관리자

자연법
자연법에 의하면 우리가 무지할 때는 집착하고 바르게 알 때는 마음을 비웁니다. 집착은 우리를 재앙으로 이끌며 비움은 평화로 인도합니다.
고통을 불러오는 집착의 근원을 추적해 봅시다. 경전에 의하면 집착의 근원은 탐욕입니다. 그리고 탐욕의 뿌리는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고통의 성스러운 진실〔苦聖諦〕
무엇이 고통의 성스러운 진실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태어남, 늙어감, 죽음이 고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슬픔, 탄식, 병듦, 불만족스러움이 고통이며, 세상에 집착함이, 사랑하는 이를 이별함이,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이 고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약한다면 오온이 고통입니다.
자, 이제 눈이 고통의 진실입니다. 눈이 고통의 진실이 되게 하는 근원적인 요인인 탐욕이 기원의 진실〔集聖諦〕입니다. 위의 두 가지 모두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중지의 진실〔滅聖諦〕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길이 중지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를 밝힘이 길의 진실〔道聖諦〕입니다.
이것은 귀, 코, 혀 그리고 몸의 다른 모든 부위와 마음의 경우에도 동일합니다. 사실상, 온 몸이 고통의 진실이며 일어남과 사라짐, 앉음과 일어남, 걸음과 닿음 등이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이것들을 어찌해야 될까요?

고통의 진실을 알라
여섯 개의 감각의 문에서 발생하는 모든 명과 색의 현상들을 주목하고(마음 속으로 노트하고) 통찰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마음 속으로 노트하여 알아차릴 때 당신은 배가 일어날 때는 긴장감이, 그리고 배가 사라질 때는 이완감이 생김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고통의 진실을 통찰해 나가는 과정이지요. 당신이 성실하게 소리를 듣는 순간을 주목해 본다면 당신은 세 가지의 고통의 진실을 알아 차릴 것입니다.
즉 기본적 요소인 귀와 타자적 요소인 소리 그리고 점화 내지 발화적 요소인 이식(耳識; 듣는 의식)이 그것들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통찰함으로써, 그들 간의 인과적 관계를 통찰하고 그리고 그들의 특성들〔역자 주; 그 현상의 유일한 특성들과 모든 현상에 공통되고 보편적인 특성들〕을 통찰함으로써 당신은 집착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매 순간 사물의 진실한 성품을 알게 되면, 당신은 번뇌를 버립니다.
반면에 당신이 게으르고 주의 깊지 못하다면 당신은 고통에 대해 무지하게 되고 따라서 대상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무지할 때는 집착하게 되고 바르게 알 때는 마음을 비웁니다.
집착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집착할 때는 행위〔業〕-생각하기, 말하기, 행동하기-를 합니다. 실제적으로 이러한 업(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간에)은 탐욕, 또 다른 행위로 계속 가지치게 조건짓는 것을 동반하며 발생합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해집니다. “재앙은 탐욕으로부터 싹튼다.”

탐욕으로부터 재앙은 싹트고
탐욕으로부터 두려움이
솟아 오릅니다.
탐욕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운 이에게는
재앙도 없고, 두려움도
없습니다.

다른 진실들도 알라
우리가 안다고 할 때 이것은 알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그 무엇은 고통의 진실인 명과 색의 현상들입니다. 앎은 길의 진실입니다(道聖諦). 사라짐은 중지의 진실입니다(滅聖諦). 길의 진실에는 여덟 가지의 구성 요소가 있습니다.

1) 도덕성의 길〔戒〕을 위한 세 가지 절제
정어(正語)―올바른 언어
정업(正業)―올바른 행위
정명(正命)―올바른 생계

2) 집중력의 길〔定〕
정정진(正精進)―일어나는 대상을 포착하기 위한 올바른 노력의 길
정념(正念)―번뇌를 추방하는 올바른 알아차림의 길
정정(正定)―정신적인 요소들을 강화해 주는 올바른 주의 집중〔몰입〕의 길

3) 지혜의 길〔慧〕
정사(正思)―악한 생각이나 악한 말 그리고 악한 행동과 같은 것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올바른 목표의 길
정견(正見)―인식 과정에서 세 가지 요소들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올바른 견해의 길

이들은 수행을 시작할 때 완성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진실을 통찰함으로써, 즉 고통의 진실에 대해 우리는 다른 세 가지의 진실을 깨닫습니다. ―놓아버려야 하는 고통의 원인의 진실, 번뇌를 몰아내는 중지의 진실, 중지의 방법을 아는 길의 진실. 번뇌를 놓아 버리면, 업의 윤회〔역자 주; 선악의 업에 의해 윤회하는 것〕가 일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업 이숙(異熟; 업의 결과, 업의 성숙)도 마찬가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해집니다.

직접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알고
개발되어야 할 것은 개발하고
놓아 버려야만 하는 것은
놓아 버리고
깨달아야 할 것은 깨닫는다.

첫 번째 줄의 직접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완전하게 이해되고 통찰되어야 하는 것은, 고통의 진실(고성제)입니다. 계발되어야 할 것은 길의 진실(도성제)입니다. 놓아버려야만 하는 것은, 극복하고 몰아내야 하는 것은, 기원의 진실(집성제)입니다. 그리고 깨달아야 하는 것은 중지의 진실(멸성제)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해집니다.

고통을 보는 수행자는
고통의 원인을 보며
그리고 고통의 종식도 본다
또한 그는 고통의 종식에
이르는 길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