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집’의 엄마 아빠, 그리고 선생님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전국 아동·청소년 그룹홈 협의회 공동대표 정석 스님

2007-09-26     관리자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그린맨션 가동 1302호의 문패는 ‘행복한 집’이다. 이름에 그 바라는 바를 담는다면 ‘행복한 집’의 소망은 다름아닌 바로 그 ‘행복’이다.
지금 행복한 집에는 정희(고3), 동석(고1), 현지(중1), 정현(초4), 지현(초3), 지선(초2), 성환(초2) 그리고 정석 스님(37세) 이렇게 8명이 한가족을 이루며 오순도순, 티격태격 행복을 키워나가고 있다.
“어쩔 때는 엄마 같고 아저씨 같고 어떤 때는 선생님 같아요!”
지선이한테도 쩔쩔매는 성환이가 얘기하는 엄마이자 아빠인 정석 스님이다. 축구선수에다 수학박사가 되고 싶은 성환이는 요즘 보는 것마다 다 하고 싶단다.
15권이 넘는 일기장을 자랑하는 지선이는 화가가 되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학생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자타(?)가 알아주는 실력이다.
초등학교 4학년 정현이는 한문이 제일 좋단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특활시간을 제일 좋아 한다.
이런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는 행복한 집의 제일 바쁜 시간은 언제나 아침이다. 모두들 한꺼번에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밥 짓고 상 차리는 일이 여간 바쁜 게 아니다.
“얼마 전까지 샤워시켜주고 책가방을 싸주어야 했던 성환이도 2학년이 되면서 자기 혼자 샤워도 하고 책가방도 챙기니까 이제 다 키워놓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보통 점심만 먹으면 학원 가요. 요즘 아이들 학원 한두 군데는 가잖아요. 저희 아이들도 미술학원에 보내는데 거기서 그림 그리고, 공부도 하고 한 5시 반쯤 와요. 샤워하고 저녁 먹고 각자 공부하고, 일기 쓰고, 초등학교 수학이나 중학교 영어는 아직 가르칠 만해요….
현지가 애들한테 자상하게 잘 하지요. 수준이 안 맞을 것 같은데도 현지가 잘 놀아줘요. 저 다음으로는 동석이가 대장인 것 같구요….”
행복한 집의 가족들 소개며 하루하루를 이야기하며 함께 웃는 스님의 모습이 자상한 어머니처럼 친근하다.
행복한 집 꼬맹이들의 취침시간은 밤 10시. 그런데 저희들끼리 어울려 놀다 보면 보통 12시가 훌쩍 넘는다. 그러면 스님은 벌로 용돈을 200원이나 깎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물론 공부를 더 하거나 청소를 잘 하면 100원을 상으로 준다.
그래서일까, 저녁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면 모두들 제 맡은 바 구역을 청소하거나 손을 거들고 나선다. 어느새 가족으로서 생활하기에도 한결 수월해졌다. 이 또한 ‘자립심’을 키우기 위한 스님의 계획(?)이 아닐까 싶다.
마침 오늘은 정희랑 동석이를 직접 만날 수가 없었다. 고3 정희는 일찍 취직한 터라 일요일도 근무를 하는 날이 많고, 동석이는 친구를 만나기에 딱 좋은 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렇게 자신들의 이야기가 실리고 난 뒤에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게 또 사실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자신과 다른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관심을 표현하는 데에 익숙치 못한 탓이리라.
행복한 집의 가족들은 수원시의 소년소녀가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혼자 또는 할머니나 친척들과 함께 어렵게 생활하던 중 수원시의 주선으로 스님과의 면담을 통해 ‘행복한 집’에 살기를 희망함에 따라 한가족이 된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집의 시작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친척들이나 주위에서 보호시설에 데려가는 줄 알고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스님은 두세 번씩 찾아가 아이들이 살게 될 집을 친척들에게 보여주며 학원도 보내주고 공부도 가르쳐줄 수 있다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리고 38평, 네 개의 방을 가진 행복한 집의 깨끗한 환경은 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그동안 큰애들은 대들다가 집을 나가기도 했어요. 엄하게 할 때는 엄하게 하고 감싸줄 때는 감싸주고 엄마 아빠의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사람에게는 각자 다 벽이 있잖아요. 그게 없어지기까지 2년이 걸렸나봐요. 큰아이들보다 작은 아이들의 벽이 더 컸어요. 말도 조그많게 하고 잘 울고, 굉장히 소심하고 ….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줘요. 늘 편지로도 하고…. 그래도 자신 없어할 때가 있어요. 엄마 아빠 없는 것에 대해서 학교에서 위축될 때도 있구. 그래서 저는 사랑해 주는 할머니도 있고 친척들도 있구, 스님도 있다는 말을 해주지요. 서로의 믿음이 생기니까 마음을 탁 터놓더라구요.
오히려 어려도 다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오늘 같은 경우도 사진에 나오고 그러면 사람들이 물어보고 하는 것이 싫대요. 저는 또 스스로 자신감만 있으면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자신있게 살라고 얘기해주지요.” 행복한 집은 지난 ’97년 12월 시작한 ‘아동 그룹홈’이다. ‘공동생활가정’쯤으로 읽혀질 그룹홈은 사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편이다. 80년대 후반 스웨덴에서 치매노인들을 위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그룹홈은 이제 선진국에서 기존의 재가복지서비스나 대형요양(보호)시설을 좀더 발전시킨 형태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자기가 살던 지역사회 안에 10명 미만의 인원이 전문가의 보살핌 속에서 구성원 스스로 일반 가정처럼 생활한다는 점에서 그룹홈은 기존의 대형시설과 다르다. `‘시설’과 `‘가정’의 중간형태인 셈이다.
이런 그룹홈이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계나 뜻있는 독지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관련 법령이 아직 미비한 탓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고, 사회일반에도 알려져 있지 않아 후원금조차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수원시의 시범사업으로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을 통해 위탁 운영되고 있는 ‘행복한 집’ 역시 그 운영이 쉽지만 않은 게 사실이다. 학원을 보내야 하고 때맞춰 학용품이며 새옷 한 벌 사주기에도 매달 들어오는 보조금과 20만원 안팎의 후원금으로는 일반 가정의 지출을 따라가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꽃마을에서 지원해주는 관리비와 가스비, 아파트 앞 가게에서 덤으로 챙겨주는 각종 채소는 스님에게는 더욱 고맙고 소중하다.
“스님으로서 수행도 중요하지만 자아실현도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나로 인해서 그 사람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뭔가 하고 있구나 해서 참 뿌듯해요.
이 그룹홈은 가정을 갖지 못한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대안 가정, 가족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사회복지를 시대가 변해 환경이 조금 좋아졌다고 해서 도와줄 게 없다고 생각하시는데 이제는 사회적인 인식이 달라져야지요. 미래가 있는 이 아이들도 자기 자식처럼 그만큼의 혜택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거지요. 깊은 애정과 관심을 꾸준히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집(0331 - 258 - 5727)’의 집안 살림으로도 바쁜 정석 스님이지만 스님은 또 지난 4월 ‘전국 아동·청소년 그룹홈 협의회’의 공동대표를 맡아야만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파악조차 안 되고 있는 교계의 그룹홈 관계자들이 서로 연락이라도 하면서 어려운 점을 이겨 나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