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우 박사님의 '별 이야기'

2004-08-16     관리자

[이 시우 박사님의 '별 이야기']

이 시우 박사님은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로 계시다 퇴직하신 천문학자이십니다.
독실한 불자이기도 하신 박사님이 작년 9 월, 불교방송에 나오셔서 하셨던 별 이야기 중 일부를 정리하여 올립니다. 첨단의 천문 우주학을 전공하신 입장에서 불교의 우주관과 비교하시며 설명하는 대목은 특히 압권입니다.


다음은 박사님의 말씀을 제 입장(?)에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제가 천문학에는 워낙 문외한이라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많은 부분이 생략되거나 요약되었습니다. 방송을 직접 듣고 싶으신 분은 http://www.bbsfm.co.kr으로 가셔서 '방송 바로 가기'를 클릭하시면 메뉴에 BBS 초대석이 나옵니다. 다시 지난 방송 듣기를 클릭하셔서 2003년 9 월 16 일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특히 별에 관한 이야기는 17 일 방송에 많이 나오니 별에 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은 그 방송 분을 들으시면 되리라 봅니다.


답답한 것도 많고, 하나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듯한 요즘,
이 시우 박사님의 별 이야기를 들으시고
사바의 번뇌는 잠시 잊고
더 큰 세계로 한 번 나아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시아본사아미타불


普賢 合掌

[별 이야기]

-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가져 나온 것으로 평생을 먹고 사는 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일생을 먹을) 양식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뇌가 없습니다. 그와 달리 인간은 무(無)로 태어나 평생을 자기 몸 밖에서 끌어들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번뇌가 많습니다.


-별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가져 나온 것으로 운명이 결정됩니다. 가령 병이 나면 별은 스스로 치유합니다. 별도 아프면 불안정해 지는데, 별은 물질을 밖으로 방출하며 안정됩니다. 인간은 소유하려 하지만 별은 가급적 방출을 하려 합니다. 특히 아플 때 더 그러합니다. 별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 놓음으로써 일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별은 태어날 때의 질량에 따라 수명이 결정됩니다. 질량이 많을수록 수명은 짧고, 질량이 낮을수록 수명이 길어집니다. 질량이 많을수록 음식 소모량이 많아 빨리 죽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태양은 약 100 억 년의 수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현재 태양의 나이가 46 억 년이므로 앞으로 약 54 억 년 정도 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양의 질량이 10 배가 더 나간다면 태양은 100 배 더 일찍 죽습니다. 이와 반대로 1/10 라면 100 배를 더 오래 사는 것입니다.


-별은 죽을 때 주위에 별이 될 수 있는 물질을 뿌리며 죽습니다. 즉 자기의 몸이 우주에 흩어져 다시 별이 태어나는 데 일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찍 죽는 별일수록 죽으면서 주위에 뿌리는 양이 많습니다. 다음 세대에 태어날 별들에게 그만큼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 반면, 늦게 죽는 별은 질량이 작으므로 주위에 뿌리는 양이 적습니다. 따라서 다른 별의 탄생에 크게 기여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 큰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더 큰 탄생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별은 번뇌가 없습니다. 나라는 아상(我相)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대로 적정열반입니다. 그 자체로 열반의 세계를 사는 것입니다. 별은 무엇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것을 쓰면서 삽니다. 또 별은 자기 잘난 마음이 없습니다. 인간도 별처럼 욕망을 낮춰 가지려 하지 않고, 자기를 낮추는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세상의 중심에는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주위에 4 대주(大洲, 큰 섬)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중 남쪽에 있는 섬이 우리 인간이 사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런 수미산의 천 개가 모이면 소천(小天)세계가 되고, 소천세계가 다시 천 개가 모여 중천세계가 되며, 이 중천세계가 다시 천 개가 모이면 삼천대천세계가 됩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이런 삼천대천세계가 수없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천문학적으로 말하면, 수천억 개의 별이 모인 은하가 바로 수미 세계입니다. 그 은하의 중심이 수미산이며, 그 은하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4 만 광년 떨어진 곳에 우리 인간이 사는 태양계가 있습니다.


- 은하가 모인 곳을 '은하단'이라고 하며, 은하단이 다시 한 그룹을 이루는 것을 '초은하단'이라고 합니다. 그런 초은하단은 다시 모여 '초초은하단'을 이룹니다. 바로 이 은하단이 불교에서 말하는 소천세계이며 초은하단은 중천세계, 초초은하단은 삼천대천세계를 말합니다. 이런 초초은하단이 우주에는 수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밟습니다. 즉 대폭발 이후 우주가 탄생하여 머무르다 시간이 지나면 파괴되어 다시 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후 다시 대폭발이 시작되어 성주괴옹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인데, 이를 '진동우주'라 부릅니다. 현대 천문학으로는 진동 우주론이 맞는지 아닌지 아직 관측된 바는 없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우주관은 이런 '진동우주론'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우주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우주의 종류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전우주'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우주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신화 속의 우주입니다.

둘째는 '물리적 우주'로, 모든 물리 법칙을 써서 물리적, 수학적으로 설명되는 우주입니다.
3차원, 4차원 우주가 그 예입니다.

셋째는 '관측가능한 우주'입니다.
우리가 관측해서 아는 우주로, 지금까지는 140 억 광년까기 관측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140 억 광년까지 관측가였다 하여 이것이 우주의 끝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관측의 한계가 그 정도라는 말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우주라는 말을 쓸 때 이 세 가지 중 어떤 우주를 말하는 것인지 구분해서 써야 할 것입니다.


-불교의 특징을 저는 '보편성'과 '평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별이 바로 그렇습니다. 밤하늘 별을 보십시오, 별은 잘나고 못난 것이 없습니다. 우주에 폭발하는 별이 가끔 있지만, 그것은 우주의 진행 상 나타나는 특별한 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긴 시간, 긴 공간으로 보면 모두 똑 같습니다. 독특하다, 는 것은 자성(自性)을 가지는 것인데, 그런 자성은 바로 번뇌의 시작입니다. 불교에서는 무자성(無自性)을 강조합니다.


-요즘 천문학은 컴퓨터로 별을 자동적으로 추적하여 영상으로 편안히 관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지 야외에서 별을 관측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실지로 별을 관측하여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영상을 보는 것은 편안하지만 자료도 엄청나게 많은데 그 자료 처리도 무척 힘듭니다.


-천문학은 구름이 끼였다고 잠이란 자고 하는 것 아닙니다. 언제 구름이 걷힐지 모릅니다. 따라서 꾸준히 관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날씨 좋을 때는 좋은 대로 관측 대상이 있고, 나쁠 때는 나쁜 대로 대상이 있습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