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 없는 도깨비에 홀리지 말자

나의 믿음 나의 다짐

2007-09-26     관리자

43년 동안 내 가족, 내 형제만을 위한 삶을 살던 나에게 남들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길을 가르쳐주신 부처님과 선지식들에게 감사드리며, 내가 겪은 일들이 다른 법우님들의 신행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15년 동안 아내를 절에 데려다 주면서도 대웅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아내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사찰구경을 하고 서성이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불교 하면 무슨 미신을 믿는 것처럼 받아들였고 내가 왜 돌부처의 형상에 매달리며 절을 하나 하는 아만심이 가득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에게 의지했고 모든 일에 있어 남에게 뒤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집착하다 보니 강박관념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20년 공직 생활을 청산하고 투자기관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거기에도 낯선 환경과 이질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 정신적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아내인 정진행 보살이 먼저 졸업한 능인선원의 불교대학에 다음 학기의 후학자로 추천할테니 저녁반에 다녀보라는 권유에 나도 모르게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허락하였다.
’95년 3월 나는 능인불교대학에 제19기로 입학하게 되었고 일주일에 두 번 나갔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부처님전에 삼배를 올리지 못하고 합장 묵념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경기도 ‘광주’ 검단산에 있는 각화사를 들르게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3월 정기법회를 하는 날이어서 법당에 들어갔는데 부처님전 공양올리는 과정에 나 혼자 우두커니 서 있을 수가 없어 얼떨결에 대중에 휩싸여 절을 하게 되었다.
법회를 마친 후 점심공양을 하는데 어찌나 맛이 좋던지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혜담 스님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로는 절하는 것이 스스럼 없이 되었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도 지광 스님의 법문 아닌 강의를 들으니 불법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면서 화, 목요일에 있는 수업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강의를 받으러 가는 날은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 빵과 우유를 사서 차 안에서 먹으며 가는데도 즐겁기만 하였다.
날이 갈수록 왜 좀더 젊어서 불교에 접하지 못했나 하는 회한과 학창시절에 불교를 알았다면 내 인생이 지금과는 확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미처 모르고 살았던 자신이 한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남들은 평생 살아도 불법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이라도 불법을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자위를 하면서 열심히 불교대학에 다녔다.
어느덧 4개월이라는 교육과정이 끝나갈 무렵 나는 진오(眞悟)라는 법명과 5계를 수지하겠다는 계를 받게 되었다. 수계식날은 집사람과 아이들이 동참한 가운데 참회진언을 염하며 연비를 받는데 눈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이 두 볼을 적시며 한동안 흘러내렸다. 아마 전생의 업장을 참회하는 눈물이었나 보다.
’95년 6월 당당한 불자 진오로서 새롭게 태어나면서 졸업을 하게 되었고 나의 후학자로 중학교 3년생이었던 큰딸 선영이를 입학시켰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준 큰애가 정말 고마웠다. 졸업 후 아내의 권유로 집에서 가까운 불광사 일요법회에 동참했다.
불광사는 모든 경전과 의식이 현대화되었고 반야바라밀 신행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였는데 계속 법회에 동참하다 보니 조금씩 그 참뜻을 알게 되었다. 마하반야의 노래와 보현행원을 부를 때는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 노래를 중단하는 일이 한동안 계속되어 아직도 업장 소멸할 것이 많이 남았나 보다 생각하였다.
가끔 법회에서 광덕 스님의 온화하고 자비스러운 모습을 뵐 때는 중생구제에 헌신하신 모습이 애틋함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고 도심포교의 선구자적 사명의식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또한 내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하는 것 같아 환희심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96년 5월 지환 스님의 특별교육에 4주 동안 동참하여 반야신행과 불법 수행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에 대하여 이론으로나마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열심히 수행정진하라는 간곡한 법문을 들은 뒤부터 새벽예불과 구도정진 법회에 적극 동참하게 되었다.
그 후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봉행되는 불광사 새벽예불로 시작하고 출·퇴근하면서 예불문과 천수경, 바라밀 정근을 녹음한 테이프를 이용하여 자동차에서 30분씩 염불을 하면 어느덧 사무실과 집에 도착하게 되고 염불을 하니 잡념이 침입하지 않아 하루의 일과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니 정신적 강박관념은 어느덧 사라지고 삶에 활력이 넘치는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임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96년 9월 구도정진 법회의 활성화 방안에 따라 보현부가 구성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례부촉을 받게 되었다. 조계사 앞의 불구점에서 목탁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 계신 스님이 목탁을 손수 골라주셔서 너무나 감사하였다. 죽비와 목탁을 사들고 집에 오니 누구한테 배울 것인가로 고민하게 되었다.
각화사의 본공 스님께 달려가서 목탁 다루는 기본법을 익히고 돌아와 불광사 대웅전에 삼배를 올리고 천수경 독경을 하며 목탁을 치는데 불광사에서 소임을 맡고 있는 거사가 들어오더니 이 밤에 무슨 일이냐는 말에 시간을 보니 9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황망히 물러 나왔다.
그 후로는 직장에서 퇴근하면 금강경과 천수경을 독경하며 목탁을 치니 집사람과 아이들은 동네사람에게 폐가 된다고 만류하였다.
육조 혜능 대사도 금강경에 “무릇 있는 바 상은 다 이것이 허망하니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하는 구절을 듣고 홀연히 깨우쳤다고 하는데, 불자가 길을 가다 내가 읽는 금강경 구절을 듣고 깨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목탁소리와 독경소리를 듣고 문득 신심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힘차게 하였다. 나중에는 아이들의 성화에 목탁의 구멍을 솜으로 막고 연습하게 되었다.
또한 인례는 목청도 좋아야 동참한 대중들의 신심이 나지 않겠는가 생각되어 새벽기도 시에 보광당에 동참하여 절을 하면서 바라밀정근을 목이 터져라 큰소리로 외치니 기관지에 염증이 생겨 피가 나왔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하니 목청도 터지고 아랫배에 힘이 생기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첫 구도정진 법회를 무사히 해낼 수 있었다. 나는 구도정진법회에 300명 이상의 형제들이 동참하여 활성화될 때까지 열심히 목탁을 치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렇게 불법 공부에 점점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마음은 부처님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앞으로 포교활동을 하려면 내가 먼저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 동산불교대학에 96년 9월 입학하였다.
진정한 불교를 배워서 생사고해에서 허덕이는 중생구제라는 부처님의 대원에 동참해야겠다는 서원을 다지며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다니는 중에도 불광사에서는 좌선을 통한 반야, 삼매, 행원을 수행하는 수련 모임이 필요하다고 하여, 40여 명의 뜻있는 바라밀 형제들이 참여하여 좌선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다 보니 분별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지면서 매사에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방향으로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
한편 일상생활에서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육신을 살찌우고 치장하는 데만 열심히 살았지 진정 나를 위한 삶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웃을 위해 산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동안 내가 추구하고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가, 형상도 없는 도깨비에 홀린 삶을 살았던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 뒤로 진정한 나를 찾는 일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게 되었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내 삶을 재정립하게 되었다. 이 순간은 한번 지나가면 나의 생애에 다시 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상에 머무르는 마음 없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더욱 절실히 알게 되었다.
어느덧 2년이란 세월이 지나가 동산불교대학을 98년 8월 졸업하였다.
졸업 후 여건이 성숙되면 군포교에 일익을 담당해야겠다는 참에, 99년 6월 구도정진법회에서 정진부장인 박윤항(보견) 거사님으로부터 공수부대 군법당에 셋째주 법회를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아 담당하고 있으며, 넷째 주에는 한영대(정덕) 거사가 주관하는 포병부대의 군포교에 여러 법우들과 동참하고 있다.
앞으로 나의 소망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직장불교신행단체가 원만히 창립되어 반야바라밀의 광명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불광사의 구도정진 법회가 형제들의 능동적 참여로 활성화되어 잠실벌에 바라밀 함성이 드높여지기를 바란다. 한편 사중에 재가자들이 항시 수행을 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열린 수행장소와 지도법사를 모실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참으로 불법 포교를 위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마다 않고 달려가야 한다는 불자로서의 사명을 가슴속 깊이 다짐해 본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