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 산책]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불교문화 산책 / 불교벽화 편

2007-09-25     관리자


이번에는 팔상도 벽화 중 마지막인 쌍림열반상이다. 쌍림열반상은 열반적정상(涅槃寂靜相)이라고도 한다. 이는 열반이 니르바나(Nirvana)의 음역으로 그 뜻이 ‘불어서 끈다.’ 즉 번뇌의 불꽃을 끈다는 적멸(寂滅)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열반은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으로 나누어 이야기 한다.
유여열반은 일체를 극복하고 초월하였으나 육신이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육체의 고통은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육신은 죽음을 통해 무상의 진리를 자각케 하기 위한 가르침으로 사용하신다. 이 육신의 고통 또한 모두 여읜 부처님의 죽음을 무여열반이라 한다. 이는 육신의 허망함을 보이고 존재의 본원으로 돌아가는 구원의 실상이므로 곧 삶의 완성이다. 일대사인연으로 사바세계에 화신으로 나투시고 이렇게 육신의 한계를 버림으로써 진리의 법신으로 온 중생에게 크나큰 광명의 빛으로 가피를 주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마가다 국의 우루벨라 마을에 있는 네란자라 강 가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후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신 이래 45년 동안 조금도 쉬지 않으시고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여 주셨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부처님의 마지막 여행은 왕사성에서 시작된다. 80세가 되던 해, 왕사성의 영취산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길을 정했다. 나란다에서 잠시 머문 후 바이샬리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보내고 쿠시나가라로 향했다. 그 동안 곳곳에서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셨다. 부처님은 바이샬리를 떠나면서 아난에게 “이로써 내가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 되리라.”고 하였음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나온다.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사라(沙羅)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난에게 자리를 깔도록 한 후 머리를 북으로 두고 서쪽으로 향해 사자처럼 누워서 정념(正念), 정지(正智)에 머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가르친 법과 계율이 너희들의 스승이 되리라. 비구들아, 나의 가르침에 의문이 있으면 물으라.”
모두 묵묵히 있었다. 그 때 아난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조금도 의문이 없습니다.”
“비구들아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 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그리고는 조용히 무여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심은 하나의 완성으로, 시작이 없고, 변화가 없고, 소멸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영원한 상태이다. 이는 논리나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고 문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이다.
유해는 다비장으로 운구되어 화장용 장작에 불을 붙였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 그때 상수제자 가섭 존자가 마갈제국에 있다가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 부처님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관 속에서 두 발을 내어 보이신 후 장작에 스스로 불이 붙었다.
팔상전(八相殿 또는 靈山殿)에 모셔지는 팔상탱화의 쌍림열반상에는 쿠시나가라 성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서 열반 하시는 장면, 다비 후 사리를 나누는 장면, 가섭 존자에게 관 속에서 양발을 내어 보이는 모습, 마야 부인이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도솔천에서 하강하여 부처님의 열반 체험에 대한 설법을 듣는 장면, 스스로 화광삼매에 드시어 관을 태우시는 장면 등이 도설(圖說)되어 있다.
그러나 외벽에 그려지는 쌍림열반상 벽화는 그 가운데 가섭 존자에게 발을 내보임으로써 삼처전심(三處傳心)을 완성하는 모습을 소재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나라에 팔상도가 언제부터 그려졌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조선 후기에 그려진 팔상도가 웬만한 전통사찰이면 모두 모셔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래 전부터 예배 공양을 목적으로, 또는 교화의 목적으로 팔상도가 성히 그려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