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U턴할 때

함께사는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2007-09-25     관리자

우리는 어릴 때 가정이나 학교 교육에서부터 경쟁자가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서로의 실력을 기르면서 동시에 사는 상생(相生)의 게임을 배우고 익히며 자라나지 못한 듯하다.
경쟁자가 없어야 내가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오로지 개개인의 성적을 올리는 일에 힘을 기울여 상생의 게임을 배우지 못했고 상대방은 늘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다보니 피곤하기만 한 삶이다.
오늘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우리 마음에는 평등의 개념이 희박하다. 언중유골이라 했다. 친구 사이에 오가는 말을 살펴보면 “동생 잘 있었나?” 또는 “제수씨 잘 계신가?” 하기 일쑤다. 친구 사이에도 스스로 형님이 되어야 편안한 것이 우리인지 모른다.
시골 논밭을 팔아 아들 딸 교육에 헌신한 감동적인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그야말로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바쳤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발전은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일 때 부모의 헌신적인 희생과 농업의 기반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인재교육에 상당한 성과를 올리기도 하여 우수한 두뇌집단을 다량 배출하였고, 이는 우리 나라의 공업화에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이전 우리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생활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하루 밥 세끼를 먹을 수 없는 빈곤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가정이 매우 많았으니 지금의 풍요로운 삶 속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먼 옛날의 일이 아니라 바로 부모님 세대에 있던 일이다. 미군으로 6·25전쟁을 겪은 참전용사의 얘기를 통하여 우리의 변화한 모습을 실감할 수 있었다.
19세의 젊은 나이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의 미국인 전우가 백발이 되어 48년 만에 우리 나라를 찾은 적이 연전에 있었다.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오찬을 마련하여 정성스레 대접하였는데 굳이 아버지가 사는 시골을 둘러보기를 원하여 승용차로 모시고 시골을 다녀왔다.
시골로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푸른 산을 보고 그 당시 벌거숭이 민둥산을 연상하기도 하였고, 우리 나라의 변화한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시골에 도착해서는 집과 동네 골목을 자세히 살피면서 옛 모습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시골에서 우리의 옛 모습을 찾기는 힘들었다. 초가지붕도, 흙담도, 흙으로 된 마을의 길도 옛것이 아니었다. 다만 기와 지붕 밑이나마 소 외양간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해 보였나 보다. 외양간의 소를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옛 향수를 달래는 듯했다. 그리고는 한마디로 한국은 200년 변한 듯하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백발이 되어 찾아온 외국인 노참전 용사의 눈에 비친 것처럼 눈에 보이는 도시와 농촌의 모습이나 의식주로 대변되는 우리가 입고 생활하는 옷, 매일 먹는 음식, 머무르고 편히 쉬는 집들, 우리의 얼굴 모양까지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뿐이겠는가? 하루하루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생각해보면 한 편에서 옛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노인들과 이분들로부터 한 세기 후의 변화한 모습으로 태어난 자손들이 함께 섞여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아닌가? 훈훈한 기운이 감돌던 마을이 변하여 전국이 도시화하고 있는 오늘날 한 세대 전까지도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마을 공동체정신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듯하다. 우리는 경제발전에 몰두한 나머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아직도 물질적인 풍요를 향해 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이미 서구인들이 이루어 경험한 것이 아닌가? 지금 깨어있는 서구인들은 커다란 방향전환을 하고 있다. 21세기를 시작하는 지금 서구사회에는 동양정신을 배우려는 흐름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들린다. 그들은 놀라운 기능의 컴퓨터를 발명하여 사이버세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누리는 물질문명의 풍요에서 행복한 삶의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서구의 지성인들이 보여주는 동양으로의 러쉬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이제서 물질적인 풍요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분명 거꾸로 가는 것이리라.
지금 우리가 구하려는 것은 어쩌면 서구인들이 쓰다버린 구버전이 아닌가? 이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서구인들은 그들의 삶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신버전을 동양정신에서 찾고 있건만 우리는 아직도 서구로 향하고 있다. 원효 스님의 원융무애한 삶의 자세와 하늘과 인간이 하나라는 인내천(人乃天)의 가르침은 분명히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문명의 진수이며, 우리가 이어받아 꽃피워야 할 보배이다. 이 정신을 잘 살리면 높고 낮음의 속에서 평등의 삶을 살 수 있고, 평등함 속에서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관을 새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아직도 좋다·나쁘다, 있다·없다, 나·너 등 단순한 이가(二價)의 가치관에 매달리어 살고있다. 이가논리는 어린 시절에 익히는 초기 버전인 것이다. 이는 흑백논리와 같이 단순한 것으로 어린아이는 어떤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좋은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 하고 묻는다. 그러나 사람을 두 가지로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사람에 대한 감정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경우나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감정을 갖는 경우도 있다. 결국 우리 감정은 두 가지 이상인 것이다. 세상 일에는 이가논리로 단순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 많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2,500년 전에 이가논리로 인해 생긴 우리의 병이 심각함을 깨달으시고 이를 치유해 주고 니르바나의 길로 안내하기 위해 49년간 삼가(三價), 사가(四價)논리를 가르치셨다고 생각된다.
보통 부유한 나라 사람들의 행복감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에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 하나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들 행복지수를 조사하여 비교한 것을 보면 개인주의와 물질문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낮고, 저개발국일 망정 현재의 빈곤에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우리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구하려는 것이 물질적인 풍요와 명예와 권력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경쟁자를 적으로 대하며 살아간다면 거기서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보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제 거꾸로 가는 길을 U턴 할 때이다. 이 거룩한 일에는 늘 상생의 도리를 배우는 불자가 앞장서야 하겠다.
학창시절의 동급생이나 회사의 동료는 단순한 경쟁 대상에서 나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스파링 파트너로 바꾸고, 나만의 승리를 위한 노력에서 상생(相生)의 게임으로 바꾸는 삶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