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항마상, 녹원전법상

불교문화산책

2007-09-25     관리자

팔상성도 벽화의 여섯 번째는 수하항마상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불퇴전의 다짐을 하면서 목숨을 건 수행에 들어갔을 때, 『과거현재인과경』과 『방광대장엄경』의 내용과 같이 갑자기 마왕의 세계가 크게 흔들렸다. 마왕 파피야스(papiyas)는 욕계에 속하는 천상 중에서 최고의 것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왕으로 파순(波旬)이라고 음역한다. 이 마왕 파순이 사바세계를 훑어보니까 보리수 밑에서 사문이 정진을 하고 있는데 그 정진의 힘이 대단히 강해서 마왕의 세계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파순은 벌벌 떨면서 그의 대신들과 일천 명의 아들과 모든 권속을 불러 모아놓고서 말하였다.
“세간에 있는 사문 고오타마가 지금 보리좌에 앉아 있다. 그는 오래지 않아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여 나의 세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그의 도가 이루어지기 전에 달려가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쳐부수어 반드시 그를 항복시켜라.”
이에 마왕 파순은 요염하고 교태로운 아름다움이 모든 천녀들 가운데 으뜸인 세 딸을 보내 유혹하기도 하고, 온갖 마군의 무리를 동원하여 모든 방법으로 사문 고오타마를 향해 공격하였다. 마왕은 아홉 가지 이변(異變)을 일으켜 성도(成道)를 방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벽화의 내용으로 주로 등장하는 장면은, 마왕이 세 딸을 보내 유혹하는 장면과 지신(地神)이 땅으로부터 솟아 증명하는 장면, 그리고 도판과 같이 태자가 마군의 무리에게 “앞에 있는 병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내가 너에게 항복할 것이고 만약 움직이지 못하면 너희가 반역을 깨달아 나에게 항복할지니라.” 하니 파순의 대중이 달려들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장면 등을 그려서 항마를 상징한다. 싯다르타 태자는 일체의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업장이 소멸되자 오직 청정한 한마음으로 경계의 벽을 허물고 덮이었던 세계를 꿰뚫어 모든 것이 조화롭게 드러나는 생명의 참모습(諸法實相)을 여실히 보게 되었다. 그때에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밝은 새벽별을 보는 순간 무상정등정각을 완성하고 큰 소리로 사자후하였다.
“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들지 않으리.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며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 그래서 수하항마상을 항마성도상(降魔成道相)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녹원전법상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7·7일 동안 삼매의 힘으로 계속 계시면서 해탈락에 머무시다 제석천과 대범천왕의 지극하고도 간절한 권청을 받고 권청하였던 여러 범천과 세상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방광대장엄경』에 보면, “내 이제 그대들의 원을 받아 마땅히 법비를 내려 감로의 문을 열리라. 청정한 믿음으로 귀를 기울이라. 기꺼이 법을 설하리라.”
부처님께서 대범천왕의 간청을 받고 교화할 중생을 낱낱이 관찰하셨다. 옛날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다가 생각났다. 그러나 천안으로 살펴보니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전에 동료였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진리를 설하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이때의 정황을 『불본행집경』 제33권 「범천권청품」을 통해서 보면,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다.
다섯 수행자가 있으니 그 다섯 수행자들은 전날 나에게 큰 이익을 주었으며 내가 고행할 때 나를 받들어 섬겼도다. 그들 다섯 수행자는 모두 청정하고 지혜가 날카로워 나의 최초의 법바퀴를 굴리며 설하는 바, 묘법을 받들만 하여 나를 어기지 않으리니 나는 이제 그 다섯 수행자들에게 가서 처음으로 설법하리라.
이때 부처님은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그 다섯 수행자들이 현재 저 바라나시 성(城) 녹야원에서 수행하는 것을 보셨다.
그때 부처님은 보리수에 얼마쯤 머무시다가 바라나시 성으로 향하셨다.”녹원전법상은 이렇게 녹야원(鹿野苑:사슴동산)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법을 처음으로 설하시는 장면을 그리는 것으로 거의 모든 벽화가 구도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으나 내용은 동일하다.
설법하시는 부처님과 법을 듣는 다섯 수행자, 그리고 설법 장소가 녹야원임을 상징하는 사슴이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그려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