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로부터의 해방

빛의 샘 - 용서와 화해

2007-09-25     관리자

사람은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원망을 하게 되고, 또 그 사람을 증오하게 된다.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가 크면 좌절을 하게 되고, 그 좌절에서 빠져 나오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도 사람에게 상처를 입은 적이 있고, 또 그 상처로 인하여 좌절을 하며 방황을 한 적이 있었다.
IMF가 터지고 내가 하던 사업은 눈길에 미끄러지는 스키처럼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탔다. 하루가 멀다하고 빚쟁이에게 시달렸고, 생활은 생활대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부랴부랴 이것저것 정리하면서 용케도 출판업을 하는 어떤 사람과 오천만원짜리 편집 대행 계약을 하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구나.’ 난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 돈은 규모를 축소하고 내가 다시 일어서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난 이 돈을 믿고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정리했다. 무모하게 늘렸던 규모를 축소하고 분리할 것은 분리하면서 전의를 다졌다. 그 사람과 약속한 일을 시간에 맞추려 일주일 이상 밤샘 작업을 했다. 밤새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정확한 날짜에 작업을 하여 일을 넘겨주었다. 돈을 받기로 약속한 날에 빚쟁이들을 전부 불러 정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약속을 펑크내고 나를 궁지에 몰더니, 결국에는 거짓말과 핑계로 일삼았다.
나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졌고 그만큼 신용을 잃었다. 급기야는 소송도 걸어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이 없을 때의 그 난감함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순 알거지였다. 집이라도 있어야 무슨 수를 쓰지, 하다 못해 월급이라도 받는 곳이 있어야 차압이라도 하지, 이것은 속수무책이었다. 하루하루 욕과 증오로 살았다. 그리고 끝없는 방황으로 살았다.
사람을 원망하고, 나를 학대하면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끝까지 가게 되자 찾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종교였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해 다시 일어서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왔다. 간절하게 빌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용서받고 싶었고, 또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었다. 그래서 경건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깨끗해지고 싶었다.
종교라는 것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다. 불행히도 나에겐 절망하고 아파할 때 찾는 종교가 없었다. 연약하고 아픈 나를 어루만져 줄 그 무엇이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전국의 산을 오르며, 또 그 산에 있는 절을 찾으며, 난 차츰 평온을 되찾았다. 나를 위한 설법은 듣지 못했지만, 내가 지금 산이라는 곳에서, 절이라는 곳에서 경건하게 서 있다는 자체로 난 평화로웠다.
그래서 긴 방황을 끝내고 다시 온 서울 생활에서 난 안정을 찾고, 다시 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있었다.
난 지금 긴 터널을 지나 새로운 시작을 이미 시작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