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톨릭 형제님의 질문

2004-06-29     관리자

>저는 카톨릭 신자입니다.제 절친한 친구가 스님이 되었습니다.
>
>이상하게 알뜰한 부자였던 곳(자기 가문)이 기울었습니다.
>
>솔직히 아무 가진 것이
>
>없으면 스님 되기도 힘들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이외로요.
>
>전 종교가 디름에도 불구하고 ,그냥 오면 칭찬을 받거나 할 생각 없이 그냥
>
>있는 데로 주었습니다. 근데요 고맙다고 정말 하지 않는 이유는 친구 성격 때문
>
>인가요 가르침의 차인가요? 정말 궁금해서요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 드리겠습니다.


1.사람의 문제


출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제일 좋은 이유가 중생을 위해 출가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요즘은 이런 이유로 출가하는 분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인지, 출가하신 분이 100 명이라면 스님이 되는 분은 10 명 안팎. 그 중에서도 끝까지 스님으로 사시는 분은 2-3 명밖에 안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속가로 다시 환속한다 합니다. 그만큼 스님 생활이 쉽지않고 또한 출가하는 분들의 자질이 문제겠지요.


신부님들이 서품을 받을 때는 주로 천주님의 소명, 또는 평생 천주님 뜻에 따라 살겠다는 이런 마음이 주라고 하는데, 현재의 스님들은 과거와 달리 불교 본연의 중생 구제보다는 본인 해탈 위주의 동기가 많은 것도 지금과 같은 의문을 불러 일으키리리라 봅니다.


그리고 가진 것이 없으면 스님 되기도 힘들겠다는 말씀은, 어떤 면에서는 크게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요즘은 물질 만능의 시대라, 스님 생활도 물질적 뒷받침이 없으면 힘든 경우가 종종 있지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절집안도 그렇게 은연 중 되어 버렸음을 저도 인정 아니 할 수가 없네요...


이런 저런 이유로 이렇게 남탓도 있겠지만 개인 성격 탓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2.시스템의 문제


불교를 걱정하시는 많은 분들의 지적 중 하나가, 스님들의 교육 과정에 '감사하는 마음'을 공부하는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도를 이루는 과정 중 필수 요소가 타인과 접촉을 끊고 자기 문제에 집중하는 것인데, 이런 수도의 과정이 서로 맞물려 사회적으로는 예의없는 사람을 만드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스님이 되어 사회 생활을 할 때 일반 사회인들보다 못한 결례를 보이는 수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저 역시 무엇을 보내 드렸을 때, 답신을 보내시는 스님들은 많지 않은 경험이 이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자체가 그런 데 별 신경을 안 쓰는 국민성 탓인 것도 있겠죠.


그리고 스님들 사이엔 인연의 어려움을 알기에 인연을 새로 짓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도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래 불교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불교의 스님 교육 과정은, 이런 점이 다소 부족함을 안팎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앞서도 지적했듯 친구 분 개인의 성격 탓에도 기인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가르침의 문제


스님들이 그러한 것은, 본래 불교의 가르침이 그래서 그럴 수도 잇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 올바른 불법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불교의 최정수 사상인 화엄 사상이며, 그 화엄 수행의 진수인 보현행원 수행에서는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지요.


화엄 수행의 정수인 보현행원 수행은,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납니다.
또한 밝은 말, 칭찬하는 말은 화엄의 중요한 수행 도구로서, 보현행원에서도 두 번째로 강조하는 가르침이며, 거의 부처의 수준인 십지 보살의 두 번째인 선혜지 보살의 주요 수행 도구이기도 하지요.


그런데도 오늘 날 우리나라 불교는, 제 생각에 <깨달음>만 있지 <깨달음의 행>이 부족한 겉 같습니다. 불자 대부분의 관심사는 <내가 깨달아 부처되는 데> 있지, <깨달음의 행을 일체 중생에게 공양하리라>는 마음이 무척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답답한 그런 행동을 아무 거리낌없이들 하시는 경향이 있지요. 이것은 제가 무척 안타까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4.우리는 수많은 인연의 산물


끝으로 우리는 수많은 인연의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는가?
왜 어떤 이는 천수를 누리고 어떤 이는 일찍 요절하는가?
세상의 차별 상, 불평등은 왜 있는가?


이런 등등은 모두 알지못한 아득한 옛부터 이어지고 얽혀진 인연의 산물이지요.
형제님 친구 분과의 우정도 그런 인연의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많은 별 들 중에 우리는 지구에 태어났고
그 많은 나라 중에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만났으며
그 많은 시간 중에 우리는 삼국 시대고 조선 시대도 아닌
금 세기 오늘 만나 친구가 된 것이지요.
확률로 보면 로또보다 더 어려운 확률일 것이고
그만큼 소중한 오늘의 인연입니다.


그 외에도 드릴 말씀은 많지만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불교에 궁금하신 것 잇으시면 언제든 질문 주시기 바랍니다.



普賢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