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길을 묻는다

주제별로 가려 뽐은 경전말씀

2007-09-25     관리자

불교는 메마른 도구적 지식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불교수행의 본질,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몸가짐(修身)과 마음닦음(修心)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비와 지혜의 통찰이 담긴 몸가짐과 마음닦음의 실천은 모든 불교도들이 선택해야 하는 삶의 지표이다. 따라서 불교수행이 깊고 정교해지면 정교해질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성실하게 닦아가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항상 묻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핵심에는 몸가짐과 마음닦음의 문제가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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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행자들이여
그대가 재산이 많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마땅히 자비희사(慈悲喜捨)를 닦아야 하느니
이 마음이 사방에 차 넘치고 상하좌우 두루 모든 곳까지
온 세상에 크고 넓고 끝이 없이 퍼져
원한 없고 해치고자 하는 무지가 없는 자비가 넘치게 하라.

수행자들이여
영원한 자애심(慈)으로 이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라.
영원한 슬픔(悲)으로 이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라.
영원한 헌신(喜)으로 이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라.
영원한 무집착(捨)으로 이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라.
이것이야말로 수행자의 진정한 재산이다.
남전 『법구경』

언제인가 현장 스님은 송광사 삼일암 대숲의 바람이 유난히 크게 들리던 밤,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인도여행 중 달라이라마를 만난 스님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산다는 것은 완전한 평화(parinirvana:槃涅槃)를 위해서입니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나 삶의 갈등과 고(苦)를 충분히 극복하고 정화할 수 있는 과정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 인생의 진정한 목표, 완전한 평화를 성취하신 분은 부처님 한 분뿐입니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종교의 핵심은 친절입니다. 지금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푸십시오. 그것이 종교입니다. 깨달음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깨달음이 너무 강조되어서는 안 됩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자비입니다.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깨달음은 약속되어 있습니다.”
남녘의 산과 들, 강을 건너서 불던 바람이 삼일암의 대숲을 세차게 흔들던 그 밤. 삶에 대해서 말하는 현장 스님의 목소리는 유난히 나직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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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남자여, 대승의 경전은 마치 감로와도 같고 독약과도 같다.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했다.
“여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대승경전이 감로와도 같고 또한 독약과도 같다고 비유하십니까?”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설하여 말씀하셨다.

혹 감로를 마시고도 목숨을 상하여 일찍 죽게 되고
혹 감로를 마시고 수명이 길게 늘어나며
혹 독을 마시고 살기도 하며 죽기도 하나니
무애지(無碍智) 감로는 대승경전이네
또한 이름하여 잡독약이라 하고
소, 제호라고도 하네
모든 석밀을 복용하여 소화하면 약이 되고
소화하지 못하면 독이 되나니
대승경도 또한 이와 같아서
지자에게는 감로가 되고
불성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가 마시면
독약으로 변하네
『대반열반경』 권8, 「여래성품」

수신(修身)의 실천, 수심(修心)의 화두는 범상한 일상성의 축적이 바로 역사생성의 동력이라는 전제하에서 그 중요성이 입증된다. 이 경우의 실천에는 어떤 주의나 전통, 문화 이전의 살아있는 의식의 역할이 강조된다. 선(禪)의 자각성지(自覺聖智), 내심자증(內心自證)이란 존재 사유의 포섭적 화해관계를 지향하는 수심의 실천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수신(修身)이 전제되지 않은 문화란 거품이다. 이 전제는 다만 대중들의 문화적 환상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문화의 자기복원력, 사회적 공공성의 토대가 없는 문화는 유흥적인 놀이와 환상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는 가히 소비와 유흥으로 흥청거리는 축제의 나라가 되었다. 즉 흥청망청하는 이벤트, 내용도 없이 공허한 놀이가 사람들의 의식을 문화라는 환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 문화는 가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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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죽음의 순간 인간이 그 육체를 떠날 때,
여러 가지 환각과 미혹이 나타난다.
살아있는 동안 사악한 사념과 무지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은
그 미혹에 휩쓸려 바른 지혜와 믿음을 잃고
아귀, 축생, 지옥의 세계에서 또 다른 생을 시작하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명상과 보시를 실천한 현자는
죽음의 순간 바른 지혜와 믿음을 잃지 않고
최상의 광명과 지복의 세계에서
또 다른 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영혼들이 아주 다른 장소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시 기쁨과 슬픔으로 가득찬,
길거나 짧은 육체의 생존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르도 퇴될(BARDO TH DOL)『티벳 사자의 서』

삶은 짧다. 그리고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불교는 인간은 숙업의 존재이며 죽음에의 길을 가고 있는 존재라고 설한다. 인간의 마음은 삶과 죽음을 통해서 저 아득한 겁의 저편에서부터 여행을 계속해왔다.
윤회라고 불리는 그 여행의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보다 노련한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악한 사념과 무지에서 벗어나 마음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결국 인간은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배워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불교이며 티벳 사자의 서, 바르도 퇴될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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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함께 도를 닦는 여러 벗들이여!
권하노니 옷과 밥의 안일을 위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구차하게 살아가지 말라.
보라! 이 세상을.
모든 것은 무상하고 부질없어서
쉽게 지나가 버리고
참되고 진정한 깨달음은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

임제(臨濟) 선사, 『임제록』

당대(唐代) 선종의 임제는 이렇게 외쳤다. “모든 고통과 갈등은 소유의 관성을 불러일으키는 탐욕에서 비롯된다〔一切苦生 以欲爲本〕.”이제는 제발 그만 사자. 백화점에서 팔고 있는 상품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현재 우리의 산업체제는 항상 새롭게 생산되는 상품, 예를 들어 전자제품, 옷, 가구, 차, 화장품을 사도록 만들기 위해 광고 전문가들을 동원하고 우리의 내면에는 그 새로운 상품을 꼭 사지 않으면 안 될 구매욕구가 본질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상품주의문명의 최면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그만 사자. 그 비싸고 새로운 상품을 사서 소유할 때만이 남보다 품위있고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의 조작을 거부하자. 인간의 삶은 좋은 차나 좋은 전자제품을 소유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상품주의 문명에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길지 않은 삶은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상품들을 사서 모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상품주의 문명의 애교와 호들갑 또는 협박을 떨쳐버리고 단정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더욱 큰 삶의 중심을 스스로 발견하는 일에서 더욱 알찬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참된 자신을 이루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도의 삶인 것이다. 그것이 몸으로 부딪쳐 스스로를 연마하는 선(禪)의 체구연마(體究鍊磨)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