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으로 일구는 이 시대의 기업인 상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주)일광종합기계 윤석봉 사장

2007-09-25     관리자

살다보면 느낌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오래도록 그 미소를 떠올리게 되는. 인천의 남동공단에 위치한 (주)일광종합기계 윤석봉(50세) 사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처음 만난 외국 바이어가 35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선뜻 보내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미소, 그 느낌 때문이었을 거다.
지난 ’98년 10월 IMF라는 국제구제금융의 초입이었다. 마침 윤석봉 사장은 뉴질랜드의 한 바이어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바이어쪽에서는 두 번째 상담 회사였고 윤석봉 사장은 최선을 다해 상담에 응했다. 그리고 상담 끝무렵 그는 바이어에게 자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35만불을 현금으로 보내줄 경우에 한해서 기계를 보내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 바이어가 뉴질랜드로 돌아가자마자 그에게 현금을 보내왔다. 물론 바이어 쪽에서 보면 환율 변동에 따른 투자로 볼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어떤 계약이나 약정도 없었으므로 순수하게 그와 그의 회사를 믿고 보내준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저희는 바이어들에게 우리가 신뢰감을 심어주고 있구나 하는 확신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11월, 12월 IMF로 접어 들었지만 저희는 이미 뉴질랜드 일이 확보되어 있는데다 수출계약이 계속 이루어져 IMF에 전혀 연관하지 않고 지금까지 밤낮이 없을 만큼 일을 해오고 있는 거지요.”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서일까 이야기에 빠진 윤석봉 사장의 얼굴에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88년 설립된 (주)일광종합기계는 당시 해외 수입에만 의존해오던 샌드위치 패널 제조 기계 및 모든 산업자재로 활용될 수 있는 성형기인 롤포밍기 등을 집중 개발해 국산화함으로써 국내 시장 70% 이상을 점유하며 수출에 주력하고 있는 유망중소기업이다.
시작 당시 ‘일광종합기계’는 둘째 동생을 포함, 직원 여섯 명의 조촐한 규모였다. 시작과 함께 고생도 참 많았다. ’92년 4월 강원도에 기계를 상담하러 갔을 때 당한 교통사고로 그는 늑골과 쓸개골 등 몸 왼쪽 부분이 거의 파열돼 몇 달 동안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때의 상처가 지금도 이마 한쪽에 훈장처럼 남아있다.
’93년 4월에는 부평에 있는 공장에 화재가 일어났다. 밤 12시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잿더미밖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때 아내와 그 자신이 갖고 있던 불심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 그를 믿어 주었는지 직원들이 떠나지 않고 함께 했다. 거래선들도 외면하지 않고 물품을 대어주며 크고 작은 협조로 도움을 보태주었다. 덕분에 그 해 10월 이곳 남동공단으로 공장을 지어올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요. 저희 같은 작은 기업에서, 국내 5대그룹상사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시장을 개척하고 홍보하고 판매하기란 정말 쉽지 않아요. 좋은 인적 자원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네들이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고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다 해주려고 합니다.”
처음 일광종합기계를 방문하는 사람은 시내 어느 사무실보다도 더 깨끗한 환경과 차분한 분위기에 ‘이곳이 정말 공장이 맞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건물 지하에 마련한 고급락커룸을 겸비한 샤워실과 사우나실, 탁구장 등 현장 직원들을 위한 휴식공간은 남동공단의 2,800여 업체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겨울 작업이 한창인 요즘, 작업 현장의 난로는 직원들의 편리함과 깨끗한 환경을 생각해 1억여 원을 들여 가스로 불이 들어오는 벽난로 형식으로 해놓았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위해 아파트 두 동과 집 두 채를 직원 사택과 기숙사로 마련했다. 직원 모두가 회사에서 받고 있는 무상대출은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해소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점심시간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같은 자리에 앉아 점심을 함께 하는 그다. 그래서일까 바쁜 작업 중에도 인사를 건네는 현장과 사무실 직원들의 모습은 참 밝고 활기차다.
지난 ’99년 (주)일광종합기계는 특허기술 개발로 벤처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스티로폼 패널의 대체품에 대한 신기술 인증으로 KT마크를 받을 수 있었고, 품질향상에 관련한 전반적인 개선으로 ISO 9001 인증과 유럽 제품규격인 CE마크까지 인증 받았다. 또한 ’98년 무역의 날 100만불탑 수상에 이어 ’99년 12월 1일에는 500만불탑까지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27일 그 동안 성형기기 국산화와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윤석봉 사장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주는 이 달의 중소기업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7,8년 전부터 수출을 위해 지속적으로 인원을 충원해왔고 홍보도 꾸준히 해왔어요. 유럽을 비롯해 북경,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등 해외전시도 많이 해왔지요. 좋은 인력이 무역쪽에 많이 포진하고 있는 덕분이지요.”
그가 또 그 동안의 성과를 직원들 자랑으로 돌린다. 그런 그가 이런 생활모습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저는 불교를 타종교처럼 먼 세계의 약속이 아닌, 현재 살아가면서 생활 가까이에서 느낍니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원인에 대한 결과처럼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올 수 있고 또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항상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불교적 시각으로 운영하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80년대 후반 불광사의 바라밀 교육을 받았다. 결혼 직후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의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종교생활을 시작할 즈음 우연한 기회에 불광사를 소개를 받았던 것이다. 부인 김태선 씨는 이후 건강도 되찾은 데다 포교사 교육까지 마친 신심 돈독한 불자로 다시 태어났다. 알뜰한 생활 속에서도 매월 열 군데 넘게 보시를 하고 있는 김태선 씨는요즘도 금강경을 손에서 놓지 않을 만큼 신행생활에 열심이다.
그 또한 매월 불광지를 군부대, 교도소 등지에 보내는 법보시에 열심이다. “불광지를 읽고서 한 사람이라도 더 불교에 귀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래서 그는 또 매년 회사의 직원 5명 정도에게 불광지를 구독시켜주는 일을 잊지 않는다.
올 한해 천만불 수출과 회사의 코스닥 등록을 목표로 하고 있는 (주)일광종합기계 윤석봉 사장.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요즘 대만과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그는 기술력으로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밖에 없기에 다시금 직원들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회사를 운영하며 회사의 성장과 직원의 성장을 함께 생각하는 윤석봉 사장의 모습은 이 시대, 기업과 기업인이 추구해나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