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불교 문화산책 14/ 불교벽화(佛敎壁畵)

2007-09-25     관리자

화계사 대웅전 벽화. 비람강생상 지난 호의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 이어 부처님 일생을 그린 벽화 팔상성도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림을 보자. 대웅전이나 극락전 등의 본당 외부 벽화에서 왼쪽의(오른쪽으로 그려 지기도 한다.) 두 번째가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세 번째가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이다. 먼저 비람강생상에 그려지는 내용을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7세기 경, 히말라야의 남쪽 기슭에 석가족(釋迦族)이 살고 있는 카필라 국이 있었다. 지금의 북부 네팔에 위치한 카필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다. 카필라국의 정반왕(淨飯王)은 왕비가 40세가 넘도록 태자를 낳지 못한 것을 늘 걱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 후 태기가 있었다. 해산할 때가 가까워지자 왕비는 그 당시의 풍습에 따라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으려고 콜리야족(Koliya 族)이 살고 있는 데바다하(Devadaha)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룸비니(Lumbimi) 동산에 이르러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무우수(無憂樹)나무 아래에서 팔 가까이로 늘어진 무우수 나무의 가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바른편 옆구리로 태자가 탄생하였다.
룸비니 동산에는 서기광명(瑞氣光明)이 비추어 덮이고 사천왕(四天王)들은 공경히 태자를 모시려 할 때 태자께서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니 사색(四色) 연화(蓮花)가 솟아올라 태자의 발을 받드는지라 태자는 즉시 오른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쪽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에서나 하늘 아래에서
나 홀로 존귀하네.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헤매이니
내가 마땅히 모두를
편안케 하리라.”

하셨다. 이때에 허공 중에서는 오색채운(五色彩雲)이 일어나고 그 가운데로 아홉 용이 각각 머리를 들어 깨끗한 물을 토하여 태자를 목욕시키고 하늘 사람들은 공중으로 비단옷을 내려 태자를 입혔다.
왕은 태자의 이름을 싯다르타(Siddhartha;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뜻)라고 지었으며 성(姓)은 가우타마(Gautama)였다.

화계사 대웅전 벽화. 사문유관상 본 벽화 도판 역시 위와 같은 내용을 그리는 일반적인 경우로서, 마야 왕비가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 가지를 붙잡고 오른쪽 옆구리로 태자를 잉태하는 모습과 탄생게를 하는 연화 위의 태자를 아홉 용이 물을 토하여 씻기는 모습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다음은 태자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사문유관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싯다르타는 궁중의 안락과 사치 속에서 성장했다.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슬픔으로부터 격리되어 왔던 태자는 어느 날 성문 밖에서 늙어서 쇠약한 사람, 병들어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죽은 사람을 싣고 가는 상여의 행렬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태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궁중 생활의 허무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 후 태자가 곧잘 사색에 빠지자 정반왕은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 등은 일체 태자의 눈에 띄지 않게 하였고, 궁중에 갖가지 향락을 베풀어 아름다운 시녀들과 함께 재미있는 놀이로 즐거운 생활만을 하게 하였다.
어느 날 싯다르타는 성의 북문으로 나갔다가 세속을 떠난 수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평온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고 그는 수행 생활만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되어 자신과 야쇼다라(Yasodhara) 사이에 라훌라(Rahula;걸림, 장애)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출가를 결심한다.
이러한 사문유관의 내용을 벽화로 그릴 때는 한 화면에 다 그리기도 하고 또는 도판과 같이, 싯다르타 태자는 시종 찬타카와 흰 말이 끄는 화려한 마차를 타고 막 성문을 나서고 있고 그 주위에 죽은 자의 모습과 좀 더 멀리 나무 아래의 수행자 모습만으로 줄여서 그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