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진아(眞我)에 대한 확실한 속죄의 길

나의 믿음 나의 다짐

2007-09-25     관리자

벌써 25주년이라니!
숫자의 개념없이 단지 계절의 바뀜만 보고 살아가는 요즈음 생각지도 않게 걸려온 전화는 나를 저 먼 기억 저편으로 데려다 놓았다.

창 앞에 드리워져 넓디넓은 푸르른 잎사귀를 펼쳐 계곡의 물흐르는 소리와 함께 한여름의 시원함을 더해주던 오동잎도 한 잎 두 잎 떨어져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앞산의 전나무 숲에도 서서히 노오란색이 번져 나가는 걸 보면서 이 한해도 이제 마무리 할 때가 되었나보다 했을 뿐인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을 것 같은 우주의 무한한 순환주기 속에서야 한순간이겠으나 이 산중에 들어온 지도 벌써 세 해가 지나는구나 싶으니 세월의 빠름이 새삼스럽다.
22년 전 어느 날 제대 후 한동안을 마음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내게 부모님께서 권유하시는 바람에 몇 번을 미루다 따라 나섰던 대각사 법회.
지금도 그날의 환희심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을 무던히도 좋아하던 내게 있어서 산사는 그 고요함과 그윽함으로 아주 익숙해져 있었으나 번잡한 종로통의 절은 웬지 낯설어서 둘러볼 것도 없는 마당에서 괜스레 서성거렸었다.
이윽고 법문이 시작되고 미처 법당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사람들 틈에 끼어 안쪽을 들여다 본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어쩌면 이 육신을 벗어버리고 대자유의 세계로 우주와 하나되어 갈 그 순간까지도 잊지 못할 게다.
법문을 하고 계시는 그 스님을 뵙는 순간 아! 이 땅에도 저토록 맑은 사람이 있구나. 이 공부를 하면 나도 저토록 밝고 맑은 얼굴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환희심으로 가슴 떨려오던 그날의 그 기억이 어찌 지워질 것인가.
그때부터 오늘까지 이 길을 걸어오게 만든 소중했던 순간으로 내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니.
대각사 시절부터 인연이 되었던 불광의 도반들은 나의 게으름과 잡다한 일상의 바쁨을 핑계로, 한편으로는 자꾸만 범해가는 오계에 대한 부담스러움으로 인해 법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가는 나를 어느날 불현듯 끈을 당기곤해서 나의 자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해주곤 했다. 특히나 그 유명한 수선화 보살의 수선스런 전화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깨어나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그때도 나는 끈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그의 전화를 고마워했다.
이 소중한 부처님과의 인연의 끈은 태백산 끝자락 어디메쯤 될 이 산중에 묻혀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으니 고맙고 고마운 도반들이여.
새삼스레 세월을 헤아려보고 지난날을 돌이켜 보자니 온통 잡스럽고 부끄러운 일들만 가득하다. 머리로서는 이해했지만 행동을 수반한다는 것은 완전 별개의 일로 치부하고 살아왔던 날들을 벌거벗고 대중 앞에 나서는 심정으로 참회한다.
자비의 종자를 끊기지 않게 하고 자비심을 키우기 위해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죽이지 말고 사랑하라 했으나 아무런 생각없이 온갖 고기를 먹음으로써 간접 살생을 부추기고 인간의 그 알량한 이기심으로 인한 기준에 의해 해충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의 살고자 하는 몸부림을 외면한 채 죽이기를 서슴치 않았다. 또한 지혜의 종자가 끊어짐을 저어해서 마시지 말라했던 술도 이 힘든 사회가 술을 권한다면서 무던히도 마셔댔다.
기뻐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며, 안타까워서 마시고 화가 나서도 마셔댔던 안쓰러웠던 날들.
남에게 빚을 지면 우리는 훗날 대자유를 얻지 못하고 그 빚을 갚으려 또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 빚을 남기지 않기 위해 도둑질하지 말라 했으나 그것마저도 지키지 못했으니 어쩌나.
남을 속이고 때려서 빼앗지 않았다고 해서 도둑이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적지 않은 월급을 받으면서 남의집살이를 하던 시절 때로는 술을 너무 마시고는 힘들어서, 때로는 그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린 것 또한 엄밀히 말하자면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은 아니었을 것인가.
아내 이외의 여자를 탐하지 말라 하셨으나 이 또한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꼭 몸으로 행해야만 계를 범하는 것이 아닐진대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서 마음으로 품었던 적이 그 몇 번이었을 것이며 실제로 지혜가 흐려져 취했던 적도 있었으니 참으로 가련한 날들이었다.
신(身)·구(口)·의(意)를 청정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마음으로 짓게되면 말로써 표현하게 되고, 그 표현된 바는 또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니 조심하라는 경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것도 청정치 못했던 탕아였으니 그러한 제자를 보시는 부처님은 어떠하셨을까.
거짓말하지 말라는 가르침 또한 제대로 지켰을까. 스스로는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으나 되돌아 보니 크고 작은 거짓들이 많았던 듯하다.
위선으로 잘 포장된 말들은 남도 남이지만 스스로를 속여왔던 것 같다.
"그만하면 괜찮아, 잘 살고 있는 거야. 남에게 큰 해만 끼치지 않고 살면 되는 거야." 라면서.
그러나 이제는 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했던 죄는 철저한 채식을 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자비의 싹을 틔우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은 심산(深山)에서 솟는 청정수와 솔차로 대신한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은 집 앞 언덕배기에 자그마한 텃밭을 일구고 갖가지 작물을 가꾸어 자급자족하니 별탈이 없을 듯하고, 불사음에 대한 가르침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그 아름다움을 갖추고 태어날 수 있었던 지난 날의 공덕을 찬탄하며, 거짓말한 어리석음은 이웃에게 이로움이 될 참말만을 하거나 참말보다 못한 말이라면 차라리 침묵함으로써 더 이상 계를 범하지 않도록 나를 지키려 한다.
그 동안 온몸 구석구석 세포세포마다에 박히고 젖어있었던 에고와 냄새나는 속진들을 떨쳐버리는 대참회를 하고난 후의 세상은 그 전의 세상이 아니었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도, 살랑거리는 바람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도 흐르는 계곡 물소리도 저만치 피어나 있는 색색의 가을꽃들도 전과 다름없건마는 내게는 분명 새로운 모습 달라진 소리들로 다가왔다. 온 우주에 가득찬 자비의 기운을 보았고 온갖 생명의 살아 있는 기쁨의 떨림을 볼 수도 있게 했다.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만족할 줄 아느냐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 지금 나는 매우 많이 행복하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살아가는 방법 또한 알게 되었으니 나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너무 힘든 제약이라 생각하여 부담스러웠던 5계 또한 제약이 아니라 지킴으로써 이 물질세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최상의 안전장치이며 이 땅을 떠날 때는 대해탈의 길로 들게 하는 수순임을 알게 되었으니 잘 지켜 나가면서 진리를 따르는 공부에 남은 생을 보내려 한다.
자기 안일에 빠지지 않을 철저한 점검과 정진만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불구부정(不垢不淨)이고 부증불감(不增不減)인 실체를 분명하게 드러내 줄 것임을 믿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려 한다. 이 길만이 지난 날 과오로 힘들게 했던 내 진아(眞我)에 대한 확실한 속죄의 길이 될 것이므로.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다행스럽게도 스스로 원하는 바대로 많이 성취되었듯이 부처님과 큰스님께서 평생의 길로 삼으셨던 전법의 길 또한 이루어져 훗날엔 무명을 훨훨 털어낸 훨씬 넉넉해진 모습으로 살가운 이웃들과 살 부비며 저잣거리에서 함께 살아갈 날이 꼭 오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토록 충만한 환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부모님과 도반들에게 가이없는 사랑과 고마운 마음 올린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