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환경의 위기와 산주정신(山主精神)의 회복

불교와 환경18

2007-09-25     관리자

지난 몇 개월간 사찰환경문제가 발생되고 있는 여러 곳의 사찰을 살펴 보았습니다. 일부는 사찰환경보존위원회와 관련사찰의 요청에 의해서 다녀오기도 하였지만, 일부는 저희들이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선불교의 중추도량인 경북 문경의 봉암사, 경남 합천의 법보사찰 해인사, 울산 울주군의 석남사, 경남 양산의 통도사입니다. 그리고, 아쉬움 속에서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던 곳이 전북 남원의 실상사와 전남 화순의 운주사였습니다.
대부분의 전통사찰이 그러하듯이 수려한 산세와 맑은 계곡, 그리고 수백년 이상 이어온 건축물 등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량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찰이 도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시대의 정토(淨土)이자,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량이 최근 개발우선 정책으로 인하여 심각하게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도도히 밀려드는 외부의 압력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수백년간 지켜온 사찰 주위의 맑고 수려한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들이고자 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 그리고 외지의 투자자들에 의해서 저질러지고 있는 개발사업으로 인하여 전국의 사찰들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발의 외압에 대하여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렵지만, 요즈음과 같은 단풍철과 휴가철의 사찰 지역은 여느 관광지와 같이 단풍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온전한 수행환경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찰 주위의 맑고 푸른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에는 온통 탐방객들이 버리고 간 흔적물들이 곳곳에 널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버리고 간 쓰레기와 오수로 인하여 주위의 계곡과 산이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공원 지역이든 아니면 일반 지역이든 사람들이 버리고 간 오염물질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많은 관계기관과 사람들이 동원되지만, 청정하게 유지하기가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십여 년 전부터 공원 내 야영 및 취사가 금지되고, ‘쓰레기 되가져 가기 운동’ 등으로 인하여 부분적으로나마 개선된 점도 없지는 않으나,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찰 지역의 관광행태는 먹고 노는 유원지 또는 한번 둘러보고 가는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일부 사찰의 경우에는 심지어 사찰을 관리하는 관계인들과도 다툼을 벌이는 등 사찰환경이 훼손되어 가고 있습니다.
조계종 사회부의 조사에 의하면 최근 수년간에 걸쳐서 50여 곳의 사찰에서 사찰환경문제가 발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사찰환경의 보존을 위한 종단 차원의 대처방안으로서 사회부내 사찰환경보존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노력이 진행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산지에 위치한 사찰은 창건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청정한 도량으로 잘 유지되어 왔습니다. 대부분의 이름난 산에는 이름난 절이 있듯이 수백년 동안 사찰과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지키고, 보호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산주(山主)로서의 역할은 오늘날에도 ‘가야산 해인사’, ‘황악산 직지사’, ‘오대산 월정사’, ‘계룡산 갑사’ 등 많은 사찰이 산이름과 함께 절이름이 불리워져 오고 있음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신앙 중의 하나인 산신사상에 의하면, 모든 산(山)에는 산신령이 있어 그 산을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사찰 내에 산신각을 조성하여 산신령을 모시어 두고 있습니다. 전통신앙이 불교적 전통으로 흡수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래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은 불교가 전래되어 사찰이 조성된 이후 각 사찰이 해당 지역의 종교적 성소로서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구심체로서의 역할을 대체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산지에 입지한 사찰의 경우에는 산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 지난 수백년간 성실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습니다.
그러한 구체적인 사실 중의 하나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사찰 주변의 양호한 숲입니다. 사찰 지역은 그 사찰의 역사만큼 수백년 이상 된 고목들이 숲을 이루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금 사찰이 산주(山主)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 산을 지키고, 보존시켜 왔다는 사실을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찰지역의 양호한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개발이 촉진되고, 그로 인한 사찰환경의 파괴가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찰환경의 위기는 어찌 보면 그 사찰이 포함하고 있는 산과 들의 위기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한 사찰환경의 파괴만이 아니라 사찰 주위의 산과 강이 파괴된다는 사실이기에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보다 사명감을 가지고 보호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더욱 사찰과 그 사찰을 사랑하는 진정한 불자들이라면 해당 사찰이 포함하고 있는 주위의 산과 강에 대하여 주인의식을 갖고 보호하여야 할 때라고 봅니다.
수년 전부터 여러 사회단체와 회사를 중심으로 일사일산(一社一山), 또는 일사일강(一社一江)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는 전시용의 홍보효과를 노리고 추진되고 있는 것도 많으나, 그래도 해당 사회와 지역에 사는 책임감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장려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불교적으로 산(山)과 강(江)은 부처님의 진신을 그대로 드러낸 자연의 모습으로서 진리를 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산과 강을 끼고 사찰이 세워졌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불자들에게는 현세의 정토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산중에 세워진 사찰은 사찰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나, 그와 함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계곡의 풍광과 어울려서 그 멋과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찰은 단순히 그 사찰만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주위의 자연과 잘 조화되었을 때 더 큰 의미와 가치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부터라도 옛날의 선조들이 그래왔듯이 주위의 산을 지키는 산주(山主)로서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특히 산중에 위치한 사찰은 주위의 산(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이 시대의 산주정신(山主精神)을 회복하는 길이 또한 사찰환경을 지키고,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