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추억(1)

2004-05-06     관리자

[어머니의 추억(1)]

-다음은 일 년 전 초여름에 떠나신 어머니를 추모하며 발간할 예정인 책의 머리글입니다.
어머니 날이 다가 오니 이미 제 곁을 떠나신 어머니 생각이 문득 문득 떠 오릅니다. 일 년 전 오늘엔 그래도 병상에 계신 어머니를 뵈오러 갈 수 있었는데, 어머니 가신 오늘은 이제는 모두 옛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날을 맞아 머리글을 올려 봅니다...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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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오로지 저희들을 위해 사셨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일 년이 되어 갑니다. 저희들을 위해서는 언제나 강인한 모습을 잃지 않으시고 흩으려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던 어머니. 삶의 고비마다 힘들어할 때면 언제나 위로를 잊지 않으시고 늘 저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저희들은 잘 몰랐습니다. 겨우 뒤늦게 철이 들어 어머니의 사랑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무렵, 어머니는 이미 늙고 병드시어 힘들게 지내시다 그렇게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한가하실 때면 늘 고향을 그리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자라시던 외갓집 뒷산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백로가 날아 왔다고 합니다. 김천 가는 국도를 지나노라면 지금도 볼 수 있는 작은 뒷동산을 하얗게 물들이는 백로 떼는 어머니가 계시던 외갓집의 자랑이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어머니가 사시던 마을 개울에는 사금(砂金)이 많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사금막골'로 불리웠습니다. 어머니 손을 따라 외갓집 가던 어린 시절, 복사꽃 하늘거리던 돌길을 따라 외갓집에 이르러 개울에 손을 담글 때면, 정말로 손 한 움큼에 보석처럼 반짝이던 금모래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것이 진짜 금이었는지, 그냥 금모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또한 외갓집에는 커다란 과수원이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얼마나 과일이 귀했습니까. 저는 그 귀한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는 과수원이 참 신기했고, 어느 해 여름에는 원두막에서 아직 채 익지도 않은 수박을 선물 받고 반갑게 한 움큼 신나게 베어먹기도 했습니다. 그런 외갓집이 어린 제 눈에는 얼마나 신비롭고 풍요로운지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강인하신 분이었습니다. 젊은 날, 손님 대접용 닭 한 마리의 목도 비틀지 못하시던 어머니. 그렇듯 모질지도 못하신 분이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머니에게는 어떠한 불가능도 없었습니다. 과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하셨듯, 그 어렵던 시절들을 오로지 자식들 굶기지 않으시겠다는 일념으로 당신들의 모든 즐거움은 뒷날로 유보하신 덕분에 저희 6 남매는 모두 남부럽지 않게 공부하고 시집 장가를 갔습니다.


교통도 좋지 않던 60 년대 초, 친정 나들이 길에 얻으신 과수원 수박 두 통을 오직 자식들 생각에 거창에서 부산까지, 그 먼 거리를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시면서도 많은 짐과 함께 머리에 이고, 또 두 손에 들고 기어이 온전한 채로 가져 오셨던 분이 어머니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