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 긍정’ 선생님

애독자를 찾아서 - 동대부중 한성규 선생님

2007-09-25     관리자

가을 바람에 밀려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동대부중으로 가는 길은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쉴새 없이 들려오는 학생들의 재잘거림을 스치고 지나 만나뵌 한성규(동대부중 교감, 55세) 선생님은 바쁜 업무 중에서도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저는 불광법회가 태동하기 전인 1973년에 대각사 대학생 법회에서 고(故) 광덕 큰스님께 현주(玄宙)라는 법명을 받고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광」 초창기 때부터 영구 구독회원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뜻밖에도 한성규 선생님으로부터 큰스님과의 소중한 인연을 듣게 되었고 「불광」에 대한 깊은 애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불광」과의 인연관계를 이렇게 밝히신 한성규 선생님은 25년이라는 세월을 되짚으며 초창기의 「불광」지에 대해 “지금은 「불광」이 디자인도 매우 세련되어 지고 내용도 다양해 졌는데 그 때는 그 자체로 풋풋한 불교 냄새가 물씬 풍겼어요.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로 언제 어디서나 지니고 다니며 가볍게 읽을 수 있었지요.”라고 회고한다.
「불광」지에서 ‘이 달의 언어’와 ‘선지식 탐방’을 가장 관심있게 보고 있다는 한성규 선생님은 현대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만큼 「불광」지에서도 불교의 장례문화에 대해서 다루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성규 선생님은 1973년부터 1985년까지 담임직을 맡았을 때 한 번도 바뀜없이 언제나 급훈이 ‘적극, 긍정’이었으며 또한 조례나 종례시간에 학생과의 인사에서도 평범한 ‘안녕하세요’가 아닌 ‘적극, 긍정’이었다고 한다.
“광덕 스님의 가르침에는 ‘마하반야바라밀’이 가장 핵심이고 거기에는 ‘적극, 긍정’의 정신이 스며 있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구름에 가렸다고 해서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니다. 태양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마음의 구름에 가려서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 본래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데 구름의 장벽에 가려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마음의 구름을 헤치면 거기에는 항상 태양이 떠 있는 것이다.
저는 이러한 스님의 가르침을 제 교육철학으로 삼아 아이들에게 심어준 것이지요. 지금도 아이들에게 편지가 오거나 거리에서 만나면 ‘적극, 긍정’ 선생님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몰라도 ‘적극, 긍정’ 정신은 아이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지요.”
부인 역시 「불광」을 따로 정기구독할 정도로 대단한 애독자라는 한성규 선생님은 항상 자녀들(1남 1녀)과 함께 「불광」을 읽어보고 방학이 되면 삼보 사찰이나 5대 적멸보궁을 비롯해 전국의 사찰로 ‘가족 수련회’를 떠난다. 사찰에 도착하면 부인과 자신은 승복으로 갈아 입고 온 가족이 3,000배나 1,080배를 올리며 정성스럽게 수행에 임한다.
“아침에 학교에 일찍 와서 교실 한 번 둘러보고 법당에 들릅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저절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게 됩니다. 뭇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불교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혜와 자비의 정신을 구현하며 사는 이 생활 자체가 바로 불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밝은 미소를 띄우며 한성규 선생님은 큰스님과의 재미난 일화를 들려주었다.
“제가 1977년에 결혼을 했는데 그 때 광덕 스님이 주례를 서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하루 전날 스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제주도에 계시는데 비가 너무 와서 비행기가 안 뜨니 주례를 바꾸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래서 허겁지겁 대학 은사님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려 간신히 허락을 받아 냈습니다.
다음날 결혼식을 행하기 위해 은사님께서 흰장갑을 끼고 주례석에 오르려는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스님께서 오시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은사님께는 죄송스럽지만 스님을 주례로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게 됐습니다. 저는 스님이 주례 서주시는 걸 간절히 바랬거든요.”
마지막으로 한성규 선생님은 「불광」의 관계자들에게 큰스님의 ‘마하반야바라밀’ 사상을 올곧게 이어가기를 부탁하며 「불광」이 언제나 변함없는 자리에서 이 시대의 무명을 밝히는 진정한 등불이 되기를 기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