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큰스님(5)-큰스님은 왜 우리 곁에 머무르셨는가?

2004-04-28     관리자

[그리운 큰스님(5)-큰스님은 왜 우리 곁에 머무르셨는가?]


큰스님은 범어사 시절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생애를 저희들 곁에 머무르셨습니다. 스님 정도의 법랍(法臘, 승려가 된 햇수)과 법력이라면 유명 사찰에서 어른 스님으로 대접 받으며 아무런 불편없이 지내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번뇌 중생을 만날 일도 별로 없으며 따라서 어리석은 중생으로 인하여 같이 가슴 아플 일도 없고, 그저 열심히 공부하시다가 오가는 납자(衲子, 수행하는 승려)들을 가르치시고 때때로 법회 날 대중을 상대로 꿈같은 법문을 설하시면, 스님의 수행은 깊어만 가고 명성은 온 세상을 뒤덮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셨더라도 하등의 허물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풀 냄새 가득한 깊은 산사를 등지고, 스님은 저잣거리로 내려 오셔서 저희들과 똑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시멘트 가득한 거리에서 그저 법주실(法主室)이라는 작은 공간에 의지하신 채, 저희들과 똑같이 아파하며 그렇게 지내시다 가셨습니다. 혹자는 스님이 산보다는 저잣거리를 더 좋아하셨기 때문에, 또는 포교 활동을 하시려면 어쩔 수 없어서 그러했던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기 쉬우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큰스님의 원력(願力)이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무시게 하셨을 것입니다.


불교 수행을 하는 분들은,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길 것 없이 산을 그리워합니다. 일반적인 스님들 모습도 사실 깊은 산사에서 뵈올 때 그럴 듯하지, 도시에서는 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두고 보더라도, 한시 바삐 이 속세를 떠나 깊은 산에서 공부를 실컷 하고 싶지 매일 이렇게 중생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큰스님이야 오죽 하셨겠습니까. 저는 큰스님께서 불편하신 몸에도 자주 불광사 주위의 석촌 호수를 거니셨다는 말씀이 참 아프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스님인들 어찌 삭막한 시멘트 거리가 좋았겠습니까? 스님인들 어찌 물소리 바람소리가 그립지 않으셨겠습니까? 스님인들 어찌 모든 것 버리고 깊은 산사에서 다른 큰스님들처럼 그렇게 공부하며 살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하지만 스님은 저희 곁을 떠나실 수가 없었습니다. 어리고 어린 저희들을 두고, 우리 스님같이 자비로우신 분이 어찌 산으로 가실 수 있었겠습니까!


스님은 그래서 산으로 갈래야 가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않은 이가 있고 고통 속에 가슴 아파하는 중생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스님은 오직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나 몰라라, 하고 산으로 가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비원(悲願)이 아마 스님으로 하여금 석촌 호숫가를 그렇게 거닐도록 하였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