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큰스님(4)-깨달음을 중생 속으로

2004-04-27     관리자

그리운 큰스님(4)-깨달음을 중생 속으로


큰스님의 불광 운동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포교당이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큰스님들께서 시중에 거주하시며 포교 활동을 펴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실 외에도 큰스님께서는 불광 운종을 통해 현대 불교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셨는데, 첫째는 재가(在家)불교를 '수행하는 불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마는 우리 불자들은 수행을 참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지식적인 접근 아니면 기복적인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스님은 그런 불교, 그런 저희들을 '수행하는 불교, 수행하는 불자'로 만드신 것입니다.


목탁 치는 법을 가르치시고 기도하는 법을 일러 주시며 직접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큰스님을 직접 모시기 못했던 불행한 불자 중의 한 사람이지만, '반야바라밀 염송'이라든가 '전법오서' 등을 보면 어떡하든 어린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을 통해 하나라도 더 전해 주시려 하셨던 큰스님의 따뜻하고 애탓한 마음이 가슴 아리도록 느껴집니다. 큰스님은 어린 저희들을 일깨우기 위해 참으로 부단한 노력을 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회향(廻向)과 자비행을 통해 '깨달음을 중생 속으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개인적으로 보면 수행도 열심히 하시고 도(道)는 참으로 높은데 중생의 일에 무심한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중생이 무슨 일을 하든, 중생의 마음 상태가 어떻든 그 분들은 알 수 없는 옛 선사들의 게송을 읊으시고 자신의 깨달음만 추구하며 열반을 노래하시는데, 저는 나날이 불교 신도 수가 줄어드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법은 선택 받은 자, 근기가 출중한 몇몇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부처님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들은 고통 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평범한 중생들입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개인적으로 아무리 높은 도를 이룬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안타까운 현실을 혜안(慧眼)으로 꿰뚫어 보시고 깨달음을 중생 곁으로 가져 오신 분이 바로 큰스님이십니다.


불광 운동을 통해 깨달음은 먼 삼천 년 전의 일이 아니요 중생 속에서 생생히 현실로 살아 숨쉬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큰스님의 삶 자체가 반야행(般若行)입니다. 제법이 공한 것을 보신 분, 일체가 환(幻)이요 꿈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을 온 몸으로 똑똑히 보신 분만이 할 수 있는 지극한 반야행을 스님은 우리에게 그렇듯 밝게 보여 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직접 나눠 주시고 가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