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순례기] 23.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 Ⅲ

수미산 순례기 23

2007-09-24     김규현

사대강의 흐름도 여기에서부터

해동의 외로운 순례자의 발걸음은 호수 가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 호수는 아름다웠고 신비스러웠다. 마치 무언가 불가사의한 힘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였다.

지구별의 중앙 안테나에 비유되는 카이라스 산과 역시 지구의 자궁에 해당되는 마나스 호수 일원이 우주의 중심임을 암시하고 있는 상징적인 숫자는 많다. 2, 3, 4, 7, 10, 33 등이 그것들인데, 그 중 특히 4는 관계가 많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산 자체가 4각형의 피라미드형으로 생겼다든지, 이곳에서 4대종교가 시작되었다든지, 4대주의 중심이 되고 4대강이 발원하고 있다는 등등이다.

전월호(7,8월호)에서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인도나 티벳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사대강--동쪽으로는 공작하(孔雀河), 서로는 상천하(象泉河), 남으로는 마천하(馬泉河), 북으로는 사천하(獅泉河)--은 실제로 수천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 지리학적 사실로 판명되어졌다. 그 강들이 바로 지도상에 표시된 갠지스, 인더스, 가르나리, 스투레지 등인 것이다.

어찌 놀라운 사실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그 중 갠지스나 인더스는 보통 강들이 아니다. 돌도끼나 휘두르면서 산짐승이나 쫓아다니던 원시인류를 깨어나게 하여 문명이라는 것을 이룩하게 한 어머니의 강이며 신과 인간 사이의 의사 소통을 가능케 한 종교나 철학을 탄생시킨 강들인 것이니 어찌 예사스럽다 하겠는가? 

해동의 나그네 또한 야뇩다지와 그곳에서 발원하는 4대강이 표시된 낡은 목판본 지도 한 장을 들고 이곳까지 왔지만, 그런 신화적 사실 앞에서는 그저 놀라움과 경이로움뿐이었으니 어찌 이 호수 가에서 발걸음을 뗄 수 있으리. 불교경전에 수없이 나타나는 야뇩다지, 아나바탑다지, 청량호(淸凉湖), 용지(龍池) 등도 모두 이곳 한 곳을 지칭함도 아울러 밝혀 두어야 할 중요한 사항들이다. 물론 엄밀한 지리학적 고찰에 의하면 4대강이 모두 경전의 묘사처럼 이 호수의 4방에서, 성스러운 4대동물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정확히 발원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4대강들이 카이라스와 마나스 일원에서 시작되는 것은 이미 현대 지리학에서 확인한 바 있고 필자 또한 발원지를 답사한 바도 있다. 혹 궁금한 독자가 있으시다면 중앙아시아 전도를 앞에 펴놓고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동쪽의 공작하는 마나스의 동쪽 언덕너머에서 야룽장포 강으로 시작하여 대설산 히말라야를 끼고 동으로 흐르다가 티벳의 수도 라사에서 흘러내린 라사 강(기츄하)과 기타 지류와 합류하여 히말라야가 끝나가는 티벳 고원의 동남부에서 남쪽으로 우회하여 마치 폭포수처럼 인도평야로 떨어져 내려와 부라마푸트라(신의 아들이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인도 동부와 방글라데시를 거쳐 캘커타 부근에서 갠지스 본류와 합쳐 벵갈만으로 들어가게 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북쪽으로 흐른 사천하는 카이라스 북쪽 기슭에서 시작하여 창탕 고원을 거쳐 서부티벳의 요충도시인 아리(일명 사천하=쓰첸허)를 거쳐 카슈미르 지방으로, 다시 파키스탄을 거쳐 인더스평야에 이르러 인더스 강의 본류가 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남쪽의 마천하는 카르나리 강으로 불리며 네팔을 통과하여 인도 북부에서 갠지스와 합류하게 되고, 서쪽으로 흐른 상천하는 스투레지 강이 되어 히말라야의 낮은 지역을 통과하여 인도 카슈미르 지역으로 들어가 역시 바다에 이르게 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태고적 신화나 전설이 이렇게, 하늘의 은하수였던 갠지스(Ganga)가 땅으로 흘러내려‘정화의 강’이 된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을 쉬고 있으니 밀라레빠의 시구절처럼 경이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보다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으랴!’

황금 물고기의 고향

다음날 한낮의 태양 볕이 수그러들 무렵 소년 목동 니마라--대낮에 태어났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와 함께 당나귀 한 마리를 동무삼아 데리고 또 하나의 신비한 호수를 향해 마을의 온천수가 흘러내려 이룬 하천을 따라 길을 떠났다. 달 뜨면 돌아오려고 의도적으로 늦게 길을 떠난 것이다.

물론 간밤에 난로 가에서 차를 마시며 동네사람에게서 들은 전설에 이끌려서이지만 이미 그 전에 조사된 자료, 아니 무엇보다도 이 하천의 이름이‘강가추’였기 때문이었다. ‘추(Chn)’는 티벳어로 하천이란 뜻이기에 이 하천의 이름은 그냥 한마디로‘강가’, 즉 갠지스였다. 불자들에게 강가란 이름이 얼마나 친근한지는 부연할 필요도 없기에 생락하기로 하고 우선 당나귀를 따라 길을 재촉하였다.

카이라스 즉 수미산 밑의 펼쳐진 스와스티카〔일명 卍자평원〕에는 마나스 이외에도 이웃한 또 하나의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티벳어로는 라옹초(범어로는 라카스 탈) 인데 ‘달의 호수’ 또는 어둠과 무지를 대변하며 죽음을 의미하는 대조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반되는 두 호수는 전설에 의하면 태고적에는 하나의 호수였다고 한다. 히말라야가 바닷속이었지만 지금은 지구별의 지붕이 되었듯이 두 호수는 갈라져 두 개가 되었다. 그때 그곳에는 두 마리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만 헤어지고 말았다. 한 마리는 황금색이었고 또 한 마리는 남색이었다.

황금물고기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여 두 호수 사이에 굴을 파기 시작하였다. 오랜 작업 끝에 터널이 완성되어 두 호수가 연결되어 두 마리는 만날 수 있었지만 황금 물고기는 끝내 죽게 되었다는 물고기의 조상들의 전설치고는 꽤나 애달픈 스토리였다.

전설을 되새기며 그들이 파놓았다는 강가추를 따라 돌아오는 길에는 등 뒤로 오늘도 어김없이 빨간 노을은 지고 있었고 또 보름달도 서서히 둥그러져가고 있었다. 문득 하나의 의문이 머리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과 ♀는 왜 꼭 만나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