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큰스님(2)-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2004-04-21     관리자

(2)두 번째 만남---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스님을 두 번째 뵙게 된 것은 행원을 통해서입니다. 큰스님이야 제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 계셨던 분이고 '보현행원품'을 번역하신 것도 알고 있었지만, 저는 스님이 평생 행원을 당신 수행의 근간으로 하셨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행원을 통해 다시 부처님을 만나게 됩니다. 행원은 제가 이 때까지 만났던 어떤 수행보다 뛰어난 수행법이었습니다. 행원은 일체 중생을 부처님으로 만들며 부처님 같은 삶을 우리가 직접 살게 합니다. 섬기고 공양하는 보현행원을 통해, 우리는 부처님 무량 공덕의 바다에 들어가게 되며 깨달음은 소리 없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됩니다. 제게 있어서 행원은 이토록 뛰어난 수행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행원을 수행하면서 한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것은 행원이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뛰어난 수행이라면 선지식들이 행원을 말씀하시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제가 과문한 탓이긴 하겠지만 주위에 보현행원을 설하시는 선지식들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름 난 선지식들께서 행원을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당연할 것입니다. 즉 행원이 별로 뛰어난 수행법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보현행원은 예로부터 뛰어난 수행법의 하나로 알려져 왔고 저 역시 행원을 함으로써 그 공덕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던 터라, 행원을 말씀하지 않는 우리 불교계의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수행법을 선지식들이 설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정말 내가 잘못 알았나? 정말 나는 잘못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느끼는 환희는 단지 경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저는 이런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문을 확실히 풀어 주신 분이 바로 큰스님이십니다.

저는 어느 날, 우연히 큰스님의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라는 법문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저에게 마치 우레와 같은 큰 법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행원을 말씀하시는 분이 다름 아닌 우리 '광덕 큰스님'이라는 사실은 제게 늘 떠나지 않던 행원에 대한 의문을 한꺼번에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큰스님 같으신 분이 행원을 말씀하신다는 사실은 더 이상 행원을 의심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이후로 화두를 타파하지 못하더라도, 출가 고행을 하지 않더라도, 내 비록 번뇌 많고 어두운 범부 중생에 지나지 않지만 '보현행원으로 세간 속에서도 해탈을 이룰 수 있으며, 일체의 보현행을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으로써 반드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치 않습니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저는 보현행원으로 꼭 보리를 이룰 것입니다.


*註1. 보현행원

-불교에는 성불을 뒤로 미룬 체 일체 중생의 해탈을 위해 사시는 성자들(菩薩이라 부릅니다)이 많이 나옵니다. 지혜를 상징하시는 분이 문수보살이시라면, 자비를 상징하는 분은 관세음 보살이십니다.

보현 보살은 부처님을 모시는 대표적인 두 분 보살님 중 한 분으로, 지혜와 자비의 실천을 상징합니다. 그러한 보현보살이 일상 생활에서 스스로 성불하며 또한 이웃과 더불어 함께 성불하는 법을 일러주신 것이 보현행원인데, 행마다 원을 가지고 하라는 뜻입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그러한 행원의 구체적인 열 가지 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註2.[보현행자의 서원---서분]

부처님은 끝없는 하늘이시고, 깊이 모를 바다이십니다.
생각할 수 없는 청정공덕을 햇살처럼 끊임없이 부어 주십니다.
나의 마음, 나의 집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또한 온 겨레, 온 중생 가슴 속에 한없이 한없이 고루 부어 주십니다.

온 중생 온 세계 온 우주는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 속에 감싸여 있습니다.
부처님의 거룩하신 은혜는 나의 생명과 우리 국토 온 세계에 넘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은혜로운 공덕을 받고서 태어 났으며, 은혜로운 공덕을 받아 쓰면서 생활합니다.
온 중생은 모두가 일찍이 축복받은 자이며, 일찍이 거룩한 사명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서 거룩한 삶의 역사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거룩한 광명과 은혜로 살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잇는 자를 중생이라 하였습니다.

저들은 지혜의 눈이 없다 하기보다 착각을 일으켜 육체를 자기로 삼고, 듣고 보는 물질로써 세계로 삼으며, 거기서 얻은 생각으로 가치를 삼고, 그를 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 세계는 겹겹으로 장벽에 싸여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막혀 있으며, 중생들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감겨 지냅니다.

이 모두가 미혹의 탓이며, 착각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그릇 인정한 데서 기인합니다.
그렇지만 이 국토는 원래로 부처님 공덕이 넘쳐 있습니다.
설사 중생들이 미혹해서 잘못 보고, 잘못 생각하고, 고통을 느끼더라도 실로 우리와 우리의 국토가 부처님의 광명 국토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광명과 거룩한 공덕이 영원히 변함없이 이 세계를 감싸았고, 그 속에 온 중생이 끝없는 지혜를 지닌 채 약여(躍如)합니다.

이 세상이 우리 눈에 어떻게 나타나 보이더라도, 이 마음에 어떻게 느껴지더라도, 저희들은 부처님 무량 공덕장 세계를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온 세계 가득히 넘쳐져 있는 거룩한 공덕을 결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거룩하신 대보살들과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거룩하신 마음 속에 하나인 것을 굳게 믿사옵니다.

일체 중생의 본성이 불성이오므로 온갖 중생의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임을 믿사오며, 중생들이 이 참생명을 믿고 구김없이 씀으로써 한량없는 새로운 창조가 열리는 것을 굳게 믿사옵니다.

보현 보살께서 말씀하신 10 종 행원은 부처님 무량공덕을 우리의 현실 위에 발휘하는 최상의 지혜행입니다.
행원을 실천하는 데서 우리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사회 위에 생명의 참가치가 구현되며, 우리 국토 위에 불국토의 공덕 장엄이 구현됩니다.

보현 행원은 부처님의 무량공덕 세계를 여는 열쇠입니다. 열 가지 문은 하나로 통해 있습니다. 한 가지를 행하여도 부처님의 온전한 공덕은 넘쳐 나옵니다.

행원의 실천은 우리가 자기 생명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나의 생명 가득히 부어져 있는 부처님 공덕을 발휘하는 거룩한 기술입니다.
나의 생명을 부처님 태양 속에 바로 세우는 일이며, 내 생명에 깃든 커다란 위력을 퍼내는 생명의 숨결이며, 박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원에는 목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공덕을 바라거나, 부처님의 은혜를 바라거나, 이웃이 알아 주기를 바라거나, 내지 성불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행원 자체가 목적입니다.

행원은 나의 생명의 체온이며 숨결인 까닭에 나는 나의 생명껏 행원으로 살고 기뻐하는 것뿐입니다.

행원으로 나의 생명은 끝없는 힘을 발휘합니다.
출렁대는 바다의 영원과 무한성을 생명에 받으며, 무가보가 흐르는 복덕의 대하가 생명에 부어 집니다.
나의 참생명의 파동이 행원인 까닭에 나의 생명이 끝이 없고 영원하듯이 나의 행원도 끝이 없고 영원합니다.
허공계가 다 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더라도, 나의 생명 행원은 다함이 없습니다.

보현 행원은 나의 영원한 생명의 노래이며, 나의 영원한 생명의 율동이며, 나의 영원한 생명의 환희이며, 나의 영원한 생명의 위덕이며, 체온이며, 광휘이며, 그 세계입니다.

나는 이제 불보살님 전에 나의 생명 다 바쳐서 서원합니다.

보현 행원을 실천하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를 이루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불국토를 성취하겠습니다.
대자대비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이 서원을 증명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