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여름 밤이 아름다운 것은

빛의 샘·한여름 밤의 추억

2007-09-24     관리자

결혼할 당시, 나는 한 마디로 빈털털이였다. 내가 가진 돈이라곤 자취방 보증금으로 걸어둔 백만 원이 전부였고, 그나마 그것도 신용카드로 낸 빚이었기에 실상 한 푼도 없는 셈이었다. 그런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아내는 혼수비를 줄여 육백만 원을 마련했고, 선배와 친구로부터 구백만 원을 꿔 보증금 일천오백에 월 이십만을 주기로 하고 석관동 어느 허름한 이층 집에 방 두 칸을 세냈다.
대문 옆에 난 낮은 쪽문을 열면 오십 도는 족히 될 법한 가파른 경사의 계단이 나오는데, 그나마 육십센티 폭의 좁은 계단의 절반은 불쑥 튀어나온 옆집 지붕이 무단 점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늘 허리를 깊숙이 숙인 채 오른쪽으로 삼십 도 가량 고개를 꺾어야만 계단을 무사히 오르내릴 수 있었다.
용감무쌍하게도 아내와 나는 결혼한 이듬해 유월에 그 집의 세 평 남짓한 작은 방을 사무실 삼아 ‘책과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독립했다. 우리가 직장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오월 초부터 사람들의 옷을 훌렁 벗겨버린 이상 고온 현상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방이 좁았던 탓에 의자를 약간만 뒤로 물리면 어김없이 두 사람의 뒤통수가 부딪치는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그 여름 내내 거의 속옷 바람으로 지냈다.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질질 흘러내리는 땀은 마치 살갗을 기어다니는 몹쓸 벌레처럼 여겨졌다. 더위를 식힐 공간도 기구도 여유도 없었던 우리에겐 창 밖을 내다볼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서쪽으로 난 창문으로는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따가운 햇살이 비쳐들었던 탓에 늘 커튼으로 창을 가리고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그 집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옥상 덕일 것이다. 가파른 철 계단을 타고 옥상을 오르면 그곳에선 멀리 도봉산이 보였고, 밤이면 곧잘 옥상에 돗자리를 펴고 음료수나 맥주를 마시곤 했다. 우리는 그곳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미래를 꿈꾸었고, 달을 쳐다보며 소원을 빌었다. 운이 좋으면 비록 공해에 찌들었지만 희미한 대로 별을 가리키며 별자리를 그릴 수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 내가 사는 일산엔 별빛이 밝은 편이다. 나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자주 마당에 서서 하늘을 보곤 하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내가 문을 밀고 나와 내 뒤에 선다. 아내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보름달을 보면 소원을 빌고, 별을 보면 별자리를 그린다. 그리고 곧잘 등 뒤에서 나를 안으며 나직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우리 신혼집 옥상 생각나요? 그때… 참 좋았어요, 그쵸?”
내게 여름 밤이 아름다운 것은 그 집 옥상에서 내 팔을 베고 누운 것만으로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이 흡족해하던 아내에 대한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