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엽편소설

2007-09-24     관리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그의 휴대폰이 울린 것은 저녁 아홉 시가 조금 지난 뒤였다. 직장 동료들과 모처럼 갖게 된 술자리여서 그는 자리를 잡자마자 필요 이상으로 객담을 늘어놓던 중이었다.
왁자지껄한 술집의 소음 속에서도 그 무선의 전화기는 상대편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전해주었다.
“여보시오, 선배님?”
상대편이 대뜸 이렇게 묻고 나왔을 때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많이 듣던 억양과 음색이었지만 워낙 뜻밖에 듣는 목소리여서 긴가 민가 싶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만….”
그는 일단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를 좀 더 들어볼 작정이었다.
“접니다. 어째, 잘 계시오? 지금 어딨소?”
그제서야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무연(無緣) 스님?”
틀림없이 자신이 아끼던 후배, 박종태의 목소리였다.
“아직두 목소리는 잘 기억하는 갑소?”
상대편에게 그런 답변을 듣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조금 전 무심코 던졌던 질문에 아차 싶었다. 이제 박은 자신과 가까웠던 후배이기 전에 세간의 온갖 집념과 욕망을 버리고 구도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었다. 그것은 곧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아 마땅한 귀의(歸依)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런데 지금 어디서 전화를 하시는 겁니까?”
그는 금방 말투를 바꾸어 상대의 위치를 물었다.
“아따, 선배가 존대를 하니까 징허게 쑥스럽소. 강원(講院)에서 며칠 휴가를 받아 시방 서울에 올라왔는디….”
“안 그래두 행자교육 마치고 강원에 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어디 가까운데 계시면 지금 볼까요?”
“오늘은 늦었구 내일 시간이 쪼매 있는데 으째요?”
“아무 때라두 괜찮습니다. 꼭 전화주세요. 스님, 정말 반갑습니다.”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술잔을 비우던 동료들이 무슨 전화냐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따지고 보면 박의 출가가 느닷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서른이 훨씬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고 평소에 육식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거나 술, 담배도 마음만 먹으면 몇 달씩 끊을 수 있는 근성이 남달라 보였던 것이다. 더욱이 박종태 자신은 물론 그를 의아하게 만들었던 일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몇 차례 박과 함께 밤낚시를 갔을 때의 일이다. 똑같은 자리에서 낚시를 해도 박은 밤새도록 단 한 마리의 고기도 건지지 못하는 것이었다. 박의 운동신경이 둔하거나 낚시 경험이 전혀 없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똑같은 포인트에, 동시에 줄을 던져도 박의 낚시에는 입질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박에게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보다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박의 정체를 알아차린 물고기들이 그로 하여금 더 이상의 악업을 쌓지 않도록 협력을 했단 말인가. 결국 박이 출가 수행을 결심하고 나서야 그는 그 때의 물고기들이 그럴 수도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농담처럼 고기들도 사람을 알아본 것이 틀림없을 터였다.
“선배, 잘 지내시오. 전 이제 속세를 떠날 납니다.”
오랜 만에 저녁이나 함께 하자며 만났던 박은 그렇게 작별을 고했다. 그날이 박으로서는 속세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했다.
“정말 출가를 할 셈이야? 꼭 그럴 필요가 있느냔 말야?”
그는 박이 언젠가 출가를 할 것이라는 암시를 받긴 했지만 막상 떠난다는 말을 듣고 나자 아쉽고 서운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치열한 구도를 통해 부처를 이루고 그로써 번뇌의 늪에 허우적거리는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면 그 장도를 격려하고 축하해야 마땅할 터이지만 사람의 정이라는 게 그렇지만은 않았다. 설사 나중에 만날 기약이 있더라도 당장의 이별은 아쉽고 서운한 법이었다.
“어디 출세간에 있다구 인생이 달라지것소? 허나 장부로 태어나 생사윤회를 뛰어넘는 이 길이 아무래두 내 업이구 인연인가 싶소.”
“업? 인연?”
사실 그런 개념은 생각하기에 따라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그런 게 정말 있기는 할까. 있다면 아둥바둥 사는 일이 덧없을 터였고, 없다면 삶의 길목마다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게 탈이었다. 어떤 장관의 부인은 기백만원 짜리 옷으로 나라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기껏 기백만원이 없어 길거리에 나앉는 게 세상이 아닌가.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열어나가려는 개개인의 의지와 사회의 정의로는 구현할 수 없는 세상 사는 법칙의 하나일 뿐이다. 업이라면 그런 걸 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 업을 의지해 내생에는 손도 까딱하지 않고 재미있고 풍요롭게 살기를 발원하는 게 세속인의 몫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희한한 일이다. 네가 스님이 된다니 이것도 너와 나의 인연인 모양이야.”
그날, 싫다는 박을 끌고 다니며 그는 밤새도록 술집을 전전했다. 박의 잔을 하염없이 채워 주면서 그 술로 하여 세속의 모든 것들을 깨끗이 잊으라며 강요한 것도 여러 차례였다. 그러면서 입영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자꾸 십수 년 전 자신이 경험했던 입영 전야의 기억이 머리 속에 맴도는 걸 느껴야 했다. 하긴 구도에의 열정이나 자발적인 의지가 있고 없음이 다를 뿐 군대 생활과 행자 생활을 전혀 다르다고 할 수는 없었다. 밥하고 군불 때는 그 하심(下心)하는 마음에서부터 구도생활이 비롯된다고 했다. 도반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초발심의 마음을 더욱 굳게 지켜나가는 것이 행자생활의 기초라고 했다. 그것은 외형적으로는, 몸을 단련시켜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군인의 집단생활과 닮은꼴이라 할 수 있었다.

이튿날 정오가 가까워졌을 때였다. 무연 스님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그의 휴대폰을 칼칼하게 진동시켰다. 머물고 있는 절에서 점심 공양을 마친 뒤 시내에 볼일이 있어 외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사무실 근처의 까페에서 출가한 후배를 기다리던 그는 대체 그 스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해했다.
반 년 동안의 행자 생활을 마치고 은사스님께 법명을 받았다는 것과 지금은 강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있었다. 그런 소식이 있을 때마다 출가한 후배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은 혈연의 인연까지 끊은 구도자에게 마땅치 않은 일이어서 번번이 포기하고 말았다. 다만 인연이 무르익어 그 스님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대했을 뿐이다. 그런 생각으로 따지면 전날 저녁 무연 스님의 전화는 참으로 뜻밖이었다.
창 밖을 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있을 때 마침 까페의 문을 슬며시 밀고 들어선 승복 차림의 사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말할 것 없이 무연 스님이었다.
“아이구, 스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는 인삿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합장 반배를 한 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것으로 나머지 인사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보게 되는 햇스님의 모습이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빳빳하게 풀질한 승복, 세상의 번뇌를 모두 담아놓은 것 같은 커다란 바랑을 멘 그의 모습은 날이 선 칼날처럼 파랬다. 열 달 전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먹여보냈던 후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순간 그는 바로 저런 자세가 초발심자의 모습이려니 싶었다.
“아따, 서울은 징허게 덥소. 헌데 선배는 똑같디여.”
‘너두 그 말투는 여전하구나.’
하마터면 그런 실언을 할 뻔했던 그는 슬그머니 솟아나오는 웃음을 참아냈다. 그리고 푸릇푸릇한 햇스님의 여전한 말투처럼 그 초발심의 마음이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여여(如如)하기를 마음속으로 발원하며 녹차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