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의 배움터 광림사 연화복지학원 해성 스님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수화로 펼치는 부처님 사랑

2007-09-24     관리자


"청각장애인들은 책을 잘 못 봐요. 그게 제일 안타깝죠. 불교책들이 참 좋은 게 많이 나오는데, 그걸 잘 못 봐요.
수화 단어가 있는 것은 아는데 수화 단어가 없는 것은 도저히 알지를 못해요. 국회에서 ‘부인(否認)했다’ 그러면 국회에 무슨 ‘부인(婦人)’이 있느냐고 물어오죠. 글자는 읽어도 뜻을 모르는 거죠. 그 단어에 대한 설명을 수화로 들어보지 못했으니까요.
특히 불교책이나 불교에는 처음 접하는 단어,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 이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거지요. 많은 사람들이 지적을 하고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장애인이라 당연하다고 여기고 가르쳐줄 생각을 안 하니까 더 몰라요. 안타까운 실정이지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해성 스님(42세)의 모습에는 이들을 생각하는 진지함과 애처로운 마음이 함께 배어 있었다.
스님은 오늘(6월 6일) 법회에서 절에서 사용하는 목탁에 대해 설명을 했다. 스님의 이야기에 20여 명의 청각장애인 불자들은 스님께 손짓(수화)으로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알았다며 머리를 끄덕인다. 또 그렇게 알고 난 후엔 서로들 수화로 이야기를 하고 뿌듯한 웃음을 건넨다. 이들에게는 이 조용한(?) 법회가 너무도 재미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청각장애인인 이들에게 이 시간은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하나하나 ‘낱말 풀이’를 듣는 바로 그런 시간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렇게 광림사(서울 송파구 석촌동 273-2호, Tel 2202 - 5831) 일요법회에 참가하는 인원이 40,50여 명에 이르지만 지난 ’93년 2월 처음으로 청각장애인 법회를 시작할 때는 참석 인원이 불과 세 명뿐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절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법회를 여는 곳이 없었고, 그 동안 절과 불교가 청각장애인들에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1년이 지나도록 일요법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스님은 그래도 법회를 지속했다. 그리고 이들이 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부처님의 자비로 그들 가정에서 진정한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발이 닳도록 그들의 집을 방문했다. 또한 국어교육, 한자교육 같은 새로운 교육프로그램과 상담 교실을 열어 청각장애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봄가을로 수련법회를 갈 때는 원하는 가족 누구라도 환영했다.
덕분에 3년째에 접어들면서 차츰 법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더불어 가족간의 갈등도 조금씩 해소되어 갔다. 가족들이 함께 법회에 참석하는 모습이 점점 늘어났던 것이다.
’83년 동국대학교 선학과와 ’86년 강원(삼선승가대학)을 졸업한 해성 스님이 이렇게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88년 전화상담기관 ‘사랑의 전화’에서 상담일을 맡으면서부터였다. 그곳 상담자의 대다수가 타종교인인 데다 불교의 스님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 자못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랑의 전화에서 4,5년 상담활동을 하던 스님이 우연한 기회에 사랑의 전화 가족 장기자랑에서 수화공연을 하게 되었다. 도반스님들 몇 분과 함께 노래 한 곡에 맞는 수화를 배워 율동처럼 했을 뿐인데 스님들이 해서 그런지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몇 차례 같은 공연을 하다 보니 수화공연처럼 불교를 알리는 데 좋은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처음에는 수화를 체계적으로 배워 수화합창단을 구성할 생각으로 조계사 원심회에서 ’91년도에 수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때 비로소 청각장애인들을 만난 거지요. 그때까지 저는 부끄럽게도 이분들이 말을 하거나 듣는 것 중 하나는 하는 줄 알았어요.
수화를 배우기 시작하자 청각장애인들은 저에게 밤 열두시까지 수화를 가르쳐 주셨어요. 만나면 헤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물어보려고 하고…. 사회에서, 가정에서 대화가 충분했다면 그러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청각 장애인들에게 스님들이 관심을 갖고 더 많이 불교에 대해서 알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거지요.
그런 도움을 받으면서 정말 감사했고 한편으로 미안했고 그때부터 노래를 할 게 아니라 내가 이분들과 대화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스님의 이런 뜻은 결국 지난 ’89년 도심포교당으로 문을 연 광림사를 ’93년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한 전용 법회장소로, 배움터로 거듭나게 했다.
매주 일요일 수화(手話)로 진행되는 청각장애인 법회에는 서울을 비롯해 대전, 인천, 동두천 등 전국 각지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참석한다. 연령층도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법회는 북소리로 시작하는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들이 진동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삼귀의나 반야심경 등을 크게 써붙여 함께 소리내어 독송하거나 찬불가를 부를 때에도 목탁 대신 북을 이용한다. 사실 법회시간 이들의 반야심경 독송과 찬불가 소리는 정상인(건청인)의 귀에는 그야말로 ‘괴성(?)’에 가깝다.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그 어느 절의 법회보다 진지하고 활기차다.
법회가 끝난 뒤 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보통은 각자 한문, 국어, 컴퓨터 등의 교육을 동국대 손짓사랑회(회장 홍성준) 회원과 수화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받는다. 신앙문제나, 자녀상담은 물론 해성 스님의 몫이다.

하지만 오늘은 지난 주 일요일의 수화찬불가 발표회 및 『자비의 수화교실』 출판기념회가 성황리에 끝난 터라 그 동안 후원과 도움을 주신 분들께 선물할 책을 일일이 포장하느라 청각장애인 법우들과 자원봉자사자들이 모두 매달렸다. 일도 일인 터라 조용할 법도 한데 또 웃음소리며 웅성거림이 활기차기만 하다.
해성 스님이 엮어낸 『자비의 수화교실』은 기존의 불교수화책과는 달리 일반 수화책에 불교과를 삽입시켜 불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인 누구나가 볼 수 있도록 한 책이다.
수화법회를 직접 해오고 있던 스님에게 지난 ’95년 원심회와 함께 정리한 ‘불교수화용어집’이나 기존의 불교수화책은 불교수화만을 강조하다 보니 일반인들에게는 읽히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불교수화를 알리는데 장애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어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수화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작년에 불교방송을 통해 스님의 원력이 알려지면서 재단법인 보덕학회의 후원으로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자비의 수화교실』 출판기념회와 수화 찬불가 발표회 자리가 지난 5월 30일 불교방송 3층 법당에서 함께 펼쳐진 것이다.

전체 식순에 수화통역이 이루어진 이날 행사에서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수화 찬불가 공연이었다.
동국대학교 손짓사랑회, 삼선승가대학 학인스님, 한성포교원수화회, 광림사 어린이회, 광림사 청각장애인 불자회, 삼소수화회, 불교자원봉사연합회가 순서대로 또 연합해서 보여준 수화 노래는 참석자들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특히 광림사 청각장애인불자회가 선보인 수화 찬불가 ‘나누는 기쁨’에서 박자를 들을 수 없는 그들이기에 서로를 바라보면서, 또 객석 한 구석에서 같이 수화노래를 하고 있는 정상인(건청인)을 따라함으로써 박자를 맞추는 모습은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또한 가톨릭 수년님과, 원불교 정녀님, 그리고 비구니 스님들로 구성된 삼소수화회가 선보인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는 참석자 모두로 하여금 한 구절 한 구절을 입 속에서, 손짓으로 따라 부르게 했고,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저절로 뜨겁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날 수화 찬불가 발표회 후 불교수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삼선승가대학 스님들은 15명으로 구성된 수화동아리를 발족하였다고 한다. 광림사는 현재 일요일의 청각장애인법회와 매주 토요일(오후,3시-5시)에 일반인들,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수화교육도 열고 있다.
또한 광림사 내의 연화복지학원(연화회)을 통해 청각장애인을 위한 무료운전교습과 수지침, 꽃꽂이 강좌를 실시하고 있는 광림사는 앞으로 신행생활을 전담하는 광림사와 교육을 책임지는 연화복지학원의 공간을 따로 마련해 교육과 신행생활이 좀더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수화 찬불가 발표회에서 보듯 이분들이 이렇게 의욕을 가지고 생활하고 일반인과 장애인들 서로가 고정관념을 깨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게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이분들은 제게 어떻게 회향하는 것이 바른 불제자의 삶인지를 인도해주신 보살의 화신이지요.
이제 남은 것은 장애인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 변화입니다. 불쌍하다 안타깝다 마음만 갖지 말고 그분들이 일어설 수 있는 길과 터전을 제시해 준다면 이들도 충분히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수 있을 겁니다.”
해성 스님을 통해 그리고 『자비의 수화교실』을 통해 일반인들의 불교수화에 대한 관심이 무르익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