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명상법(절 수행법) 2

연속기획특집-수행합시다 7

2007-09-24     관리자

수행합시다7
진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몸이나 생명에 대해서도 바라는 것이 없으며, 자기 이익과 존경이나 명예에 대해서도 바라는 것이 없다. 열반도 원하지 않으면서 청빈한 수행자의 생활을 한다. 그 사람은 진리에 귀의하고 사람에 귀의하지 않는다. 번뇌로부터 해탈을 안으로 구하고 밖으로 찾아 헤매는 일이 없다. 또한 그 사람은 존재의 본성이 열반의 상태에 있음을 알아, 윤회에 유전하지도 않고 열반에 안주하지도 않는다. 「보적경」

◀절을 할 때 할머니들을 보면 팔을 벌려서 머리 위로 올린 후 머리 위에서 합장하여 가슴 앞에 내린 다음 절을 하시는데 이와 같은 방법들은 절에서 스님들이 잘못 되었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요?

혜봉 보통 옛날 할머니들은 다들 그렇게들 절을 했는데 절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흔히들 무당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당절이라고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불교 예법과 다를 뿐입니다. 예법은 불가에 가면 불가의 예법을 따르고 유가에 가면 유가의 예법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할머니들이 했던 절의 유래는 단군으로부터 내려오던 한국 고유의 몸 수련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선도수련법입니다. 이것이 절과 합해져 행해졌기 때문에 오해와 혼돈이 생긴 것입니다.

◀선도수련법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합니까?

혜봉 이러한 것도 굳이 따지고 보면 요가의 아사나와 같은 것이며 도가의 도인 체조와 유사한데 이것은 오직 한국에만 있는 체조의 한 유형으로 단군 계통의 수련비법으로 전해오는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자, 그러면 제가 하라고 하는 대로 한번 해보세요. 먼저 정좌한 상태에서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비우세요.
둘째는 손을 가슴 앞에 모아서 합장하되 연화합장(피기 전의 연꽃과 같이 손바닥을 붙이지 않고 비게 함)을 하세요.
셋째는 손을 바라보면 손바닥 안에 기운이 생겨 손바닥이 서로 미는 듯한 느낌이 있으면 그 느낌을 따라 손을 옆으로 내리면서 충분히 벌립니다.
넷째는 팔이 완전히 벌어져서 더이상 벌릴 수 없을 때까지 벌린 다음 기운을 따라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땅의 기운을 떠받드는 마음으로 두 손바닥을 머리의 정수리 위에서 2~3㎝간격을 놓아두고 모으도록 합니다.
다섯째는 두 손을 그대로 간격을 유지한 채로 이마 앞을 지나 가슴 앞으로 내려오되 하늘의 기운이 정수리로 들어와서 단전까지 내려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다시 셋째, 넷째와 같이 계속하여 반복합니다. 오직 이와 같은 행법만 계속하여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모든 것이 다 사라져서 허공처럼 텅비며 하나의 기운만 느끼면서 그 기운 가운데 있는 신령한 것, 흔히 얼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경험합니다. 물론 이것도 하다 보면 눈에서 눈물도 나고 사람 영상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가슴 앞에 합장한 손을 밑으로 내리지 말고 손을 머리 위로 뻗어 올려서 내리되 보통 세 번만 하면 없어집니다. 그런 현상이 없어지면 다시 본래대로 행합니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꼭 할 필요가 있는지요?

혜봉 이 행법을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불법만큼 완전한 수행법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자성을 참구하지 않고서는 수행의 궁극의 경지에 가기 어렵습니다.
옛날 선지식들의 예를 봐도 그렇습니다. 선종의 2조였던 혜가나 3조 승찬 스님들의 경우도 알고 보면 다 도가 수행을 했던 분들입니다. 요사이 우리 나라에도 보면 국선도다 단학이다 선도다 하면서 일반인들이 보기에 건강과 정신수양에 좋은 수련법들이 비밀리 전수되다가 세상에 나와서 좋은 역할들을 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보면 불가의 선지식들이나 수행자들과 같이 크게 깨치신 분이나 자비행을 많이 하신 성자와 같은 분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역사적인 여러 요인들과 원인들도 있지만 수행법 자체의 한계도 작용합니다.

◀절을 할 때는 보통 108배나 1080배니, 3000배니 하면서 절을 하는데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혜봉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불·법·승 삼보를 각각 생각하면서 한 번씩 하면 삼배요, 불·법·승 삼보와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등을 위시한 제보살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의 깨달음을 이룬 수많은 아라한들과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법을 전하셨던 수많은 선지식들을 각각 생각하면서 절을 하면서 예경하는 예불시의 절은 7배요, 108가지의 번뇌를 하나하나 없애기 위해서 하면 108배요, 1000명의 부처님을 한 분 한 분 생각하면서 하는 절은 1000배고, 3000분의 부처님을 한 분 한 분 생각하며 절하면 3000배며, 중중무진 법계의 한량없는 일체의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한없이 절하면 끝없는 절입니다.
◀절을 적게 하는 것과 많이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혜봉 길을 걸을 때 한 걸음 걸으나 열 걸음 걸으나 걷는 데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냥 걸음일 뿐입니다. 이것은 밥을 먹을 때도 그렇습니다. 한 숟가락 먹으나 열 숟가락 먹으나 밥 자체의 맛이나 밥을 먹는다는 사실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이 가느냐, 한 번 가느냐, 많이 먹느냐, 한 술 먹느냐에 따라서 많은 거리를 갔느냐, 먹은 후 배가 부르냐, 부르지 않냐 하는 차이는 분명히 있지요. 절도 이와 같지요. 그만큼 절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아상을 조복받고 번뇌업식이 더 많이 소멸됩니다. 일례로 티벳 사람들은 평생에 보통 10만 배는 누구든지 수행자라고 하면 다 한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 사천성에 사는 어느 티벳 불교신자는 자신의 집에서부터 오체투지(온몸이 완전히 땅바닥에 닿게 엎드림)로 순례를 시작해서 성지에 도착해 보니 3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왜 그들은 절을 그렇게 많이 할까요!
우리 나라에도 어느 스님은 10만 배 하시고 나서 힘을 얻으시고 원하던 불사를 이루시기도 하셨는데 그만큼 절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많이 비우면 비울수록 더 큰 원을 이룰 수 있지요. 결국 절을 많이 하는 것은 오직 자기를 비우고 비워서 일체의 마음을 항복받고 모든 아상을 버리는 데 있습니다.

◀저는 절을 하는데 너무 힘이 들고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혜봉 그렇수록 포기하지 말고 더 절을 하세요. 그러나 싸워가면서 억지로 하지 마세요. 그러면 싸우는 업식과 억지로 하는 업식이 생겨서 절을 하되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업장을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절을 하면서 절하기 싫은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지 왜 나오는지를 살펴 보세요. 본래 절이라는 것은 한 번 하든, 열 번 하든 차이가 없어요. 숨쉬는 것과 같습니다. 숨쉴 때는 ‘숨쉰다’는 생각이 없잖아요. 어디 숨쉴 때 ‘싫다, 좋다’ 하는 분이 있습니까?
절한다는 생각이 없이 그냥 절만 하면 됩니다. ‘힘들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절 자체에는 ‘힘든다, 힘 안 든다’가 없습니다. ‘힘든다, 힘 안 든다’함은 오직 마음이 그와 같이 작용할 뿐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마음을 여실히 봐서 그 원인을 잘라 버리면 일어났던 마음도 다 사라집니다. 생각으로 절을 하지 말고 일체 마음을 놓아버리고 그냥 몸의 흐름을 따라서 절을 하게 되면 절을 해도 한 바 없이 절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병원에서 3개월밖에 못 살 것이라는 암 선고를 받은 분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암선고를 받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마침 아는 분의 소개로 어느 절에 갔습니다. 절에 가보니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냥 죽으면 병든 업만 가지고 죽었다가 다음 생에 가서도 다시 병들어 죽는다고 하시는 겁니다. 이 말에 그분은 더 놀라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간곡히 여쭈었지요. 그랬더니 스님께서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환자는 이미 죽을 몸인데 무엇인들 못하겠느냐고 하면서 가르쳐 주시기를 간절히 원했어요. 그런데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법당에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절을 하라는 겁니다. 이 분이 황당해서 말하기를 일어설 기운도 없고 온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도 없는데 어떻게 절을 하느냐고 항의조로 말을 했어요.
한데 스님께서는 한술 더 떠서 하시는 말씀이 새벽 일찍 일어나서 우물에 가서 정숫물까지 떠와 부처님께 정성껏 공양 올리고 나서 절을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몸은 이미 병들어서 죽을 몸인데 뭐하러 아낄 것이 있느냐. 아무리 아프고 죽을 것 같아도 살아온 모든 삶을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몸도 다 공양 올리고 일체를 다 공양 올리면서 쉬지 말고 절을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생각해보니 그도 맞는 말씀이라 이미 죽을 목숨이니 병든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일체를 다 바치기로 결심하고 절을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정수를 떠오는 데도 한 시간이 걸렸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서 3개월이 되었을 때는 건강했을 때처럼 절을 할 수 있었고 아프던 몸도 괜찮은 것 같았답니다. 3개월이면 죽는다 했는데 6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고 해서 병원에 가보니 암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분은 열심히 정진하며 부처님 법따라 잘 살고 계시는데 이미 10년이 넘었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무엇인가 하면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일체를 다 부처님께 공양하고 바쳤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께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은 절을 하던 몸과 마음을 다 버리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싫다, 좋다, 힘들다, 힘 안 든다’하는 일체의 마음과 힘들고 싫은 느낌과 감정이 일어나는 몸마저 끊임없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싫다, 힘들다’함이 없이 그냥 절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몸이 가뿐해지고 힘든 상태가 없어집니까?

혜봉 가뿐해지려고도 하지 말고 힘든 상태를 없애려고도 하지 마세요. 힘들 때는 그냥 힘든 상태가 되시고 가뿐한 상태가 되면 그 상태로 되어서 절하되 ‘힘들다, 가뿐하다’ 하는 상태에 대한 생각을 놓아버리세요. 어떤 것도 하나의 현상입니다. 어떤 현상도 붙잡지도 말고 저항하지도 말고 그냥 절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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