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명상법(절 수행법)

연속기획특집 - 수행합시다 6

2007-09-24     관리자

지난 5일간 용맹정진하면서 혜봉 선생님을 모시고 문답했던 내용 중에서 절 수행 즉, 오체투지를 하면서 명상했던 내용을 정리 발췌하였다.

◀모든 종교에는 절하는 의식이 있는데 저희들이 지금 하는 절 수행과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요.

혜봉 절하는 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그 내용이요, 둘째는 형식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유교나 불교, 카톨릭이나 이슬람, 한국의 전통 종교를 보면 각각 나름대로의 예배법이 있지요. 이 예배에는 반드시 그 대상이 있습니다. 공자님이나 부처님, 하느님이나 알라, 또는 단군에게 예배로 절을 할 때에는 그 내용상의 의미가 대동소이합니다.
즉, 대상을 공경하고 받들고 섬기며 귀의하고 자신을 바쳐서 따르고 기리는 의미로 절하기 때문에 절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는 하등 차이가 없습니다. 굳이 차이를 논한다면 그 대상이 공자냐, 석가냐, 노자냐, 마호멧이냐, 예수냐, 단군이냐, 강증산이냐, 최제우냐 하는 그 종교를 창시한 사람, 즉 예배의 대상이 다를 뿐이지요. 형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종교 따라 형식이 조금씩 다 다른 것은 그 지역의 문화적인 차이일 뿐 무릎을 꿇고 머리 즉, 이마를 상대의 발 아래 조아린다는 데에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성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의 발에 입 맞추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부처님이 살아 계셨을 때에 많은 제자들과 신자들이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입을 맞추는 것으로 최대의 공경을 했지요.

◀그런데 저희들이 지금 하는 수행은 지금 말씀하신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닌 줄 아는데요.

혜봉 그렇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에서는 하나의 예배의식으로만 절을 행하고 있는 반면 불교에서는 절이 예경의식을 넘어서서 하나의 명상 내지는 수행법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요가 명상법 중의 하나인 아사나 요가(일종의 명상체조)가 있는데 그 중에서 오체투지 행법이 있습니다. 이 오체투지 행법이 불교와 만나면서 불교의 전유물과 같이 이해될 정도로 불교의 수행 법으로 정착했지요.
그러나 이 오체투지 수행도 불교의 모든 종파에서 다 행하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위빠싸나 명상을 주로 하는 미얀마나 태국 내지는 스리랑카 등에서는 절 수행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도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열대의 뜨거운 기후도 한 몫 한 측면도 있지요. 그리고 대만이나 중국에서도 절을 수행으로 천 배니 만 배니 하면서 하질 않습니다. 절하는 형태도 우리가 하는 절 방식과 다릅니다.
동남아의 경우를 보면 처음에 부처님께 삼배를 올릴 때는 한국과 같이 선 채로 합장한 다음 엎드려 무릎 꿇고 두 손을 짚은 후에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하는 절은 같으나 두 번 세 번째도 일어서지 않고 무릎 꿇은 상태로 두 번을 더 하는 것으로 삼배를 하는데 예불을 할 때도 이와 같지요.
또 중국의 경우를 보면 카톨릭에서 성모상 앞에 기도할 때 무릎만 대고 허리를 구부려 절할 때와 같은 형식으로 절하거나 선 채로 허리를 구부려 절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일본이 우리 나라처럼 절을 하며 절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를 들라면 티베트 불교권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티베트, 네팔, 인도의 라다크에서 주로 오체투지로 절 수행을 많이 하지요. 물론 중국에서도 티베트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오체투지로 절 수행들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에서 하는 형식의 절도 하지만 오체투지 행법 중에서 몸을 바닥에 완전히 던져서 쭉 펴는 절을 주로 하지요. 또한 우리 나라에서도 절 수행이 옛날부터 성했던 것은 아닙니다. 보다 많이 대중화되고 보편화되기는 성철 스님께서 부처님께 삼천배 하고 오는 사람들을 친견하셨던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절 수행의 의미와 묘미를 재현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면 절 수행의 의미와 방법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혜봉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절 수행이라고 하는 이 오체투지 명상법은 요가의 아사나(명상체조) 중의 하나이며 그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가장 기본적인 방법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본 행법은 현재 절에서 하는 절과 비슷하고 그 하나는 티베트 사람들이 주로 하는 절이며 또 하나는 요가 아사나에만 있는 변형 행법입니다. 그러나 기본 행법도 한 가지 틀린 점이 있습니다. 우선 오체(몸의 다섯 부위인 양손, 양 무릎,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한다 하여 오체라 함) 투지 하는 법을 하나 말씀드리면서 다른 점을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발을 모아 자연스럽게 서되 몸에 있는 모든 긴장을 다 내려놓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가슴 앞에 자연스럽게 모아서 합장하되 자신의 몸을 그대로 느끼고 관찰합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그대로 느끼고 관찰해도 좋습니다.
둘째, 합장한 손을 합장한 채로 쭉 뻗습니다. 머리 위로 쭉 뻗은 손을 다시 가슴 앞으로 가져옵니다. 이 부분이 한국 절에서는 하지 않는 부분인데 동남아에서는 합장해서 손을 이마까지 올립니다.
그리고 가슴 앞에 합장한 채로 무릎을 구부려 바닥에 닿게 한 연후에 가슴에 있는 손을 오른손부터 왼손까지 손바닥을 땅에 짚은 다음 가슴과 배를 허벅지 다리에 밀착시켜 온 몸을 땅에 완전히 엎드립니다. 그리고 이마를 땅에 붙이고 두 팔을 머리 앞으로 쭉 뻗은 연후 두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뒤집습니다.
셋째, 모든 것을 역순으로 해서 자리에 일어납니다.
넷째, 절을 하되 절하는 동작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절을 할 때 일어나는 느낌들을 온 몸으로 그대로 느낍니다. 그리고 동작을 하면서 호흡을 관찰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일어나는 번뇌망상은 다 버리고 오직 절하는 동작과 절하는 동작을 관찰하는 놈만 남을 때까지 절하고 나중에는 절하는 놈만 남아서 절한다는 생각도 없이 절만 할 때까지 절합니다. 그러면 형태가 절이지 오직 절한다 함이 없이 절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여의고 절을 하되 삼매에 들게 됩니다.
이와 같은 수행은 모양만 다를 뿐 위빠싸나 수행법에서 걷는 것을 관찰하면서 삼매에 이르고 삼매에서 참 자기를 깨닫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절 수행법에 있어서 내용 면으로 살펴보면 여타의 다른 수행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첫째는 참회 수행입니다. 절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살펴보면서 지은 바 허물을 스스로 반성하고, 다시는 짓지 않기를 다짐하고, 지은 허물은 스스로 받아서 책임지기를 다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참회하고, 잘못한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부처님 앞에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끊기 수행입니다. 절을 하면서 지은 바 모든 업 즉, 선연이든 악연이든, 아내, 남편, 부모, 형제, 자식 등 모든 인연들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끊고 끊어서 실오라기 같은 인연도 다 끊어서 일체의 속박을 다 끊습니다.
셋째는 비우기 수행입니다. 절을 하면서 자신의 아상을 버리고 비우며,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버리고 비우며,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비우며, 자신의 몸을 버리고 비우며, 나와 너 일체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우는 것입니다.
넷째는 바치기 즉 공양하기입니다. 절을 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지은 바 복(유루복이든 무루복이든)과 모든 수행의 결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불보살님과 일체 중생에게 다 공양하되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바치고 공양합니다.
다섯째는 받들고 공경하며 섬기기입니다. 이 세상의 천지만물과 일체의 모든 생명, 일체의 모든 중생, 어린아이, 어른, 신분의 고하, 지식의 유무, 선하고 착함과 관계없이 여자, 남자, 신체적인 불구들과 관계없이 모든 존재를 받들고 공경하며 섬기기를 다짐하며 끊임없이 절하고 절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기 자신을 모든 것 앞에 낮추고 낮추어 한량없이 겸허해지고 겸허해지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원 세우기입니다. 절을 하면서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를 원 세우고, 모든 번뇌를 다 끊기를 원 세우고, 반드시 깨달음 이루기를 원 세우며, 공부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원 세우며, 게으르지 않기를 원 세우며, 마구니에게 끌려가지 않기를 원 세우며, 악업 짓지 않기를 원 세워서 끊임없이 다짐하여 잊지 않고 행하고자 절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참구하기입니다. 오직 절하고 절하되 일체의 번뇌망상을 다 물리치고 절한다는 생각마저 다 끊어져서 절을 할 때 절하는 놈에게 돌이켜 ‘이놈은 무엇인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탐구하다보면 모든 것은 다 끊어지고 ‘이놈은 무엇인고’ 하는 의심만 남습니다. 이렇게 의심만 남으면 이것은 바로 자성을 아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덟째, 귀의하기입니다. 절을 하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스승에게 귀의하고, 상가에 귀의하고, 자기자성에 귀의하고, 일체의 번뇌 망상이 끊어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절을 할 때 일러주신 오체투지 방법대로 꼭 해야 되는지요.

혜봉 오체투지법을 일러준 것은 원래 행법의 시작이 그러한 데서 출발했다는 것을 일러준 것이지 꼭 그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해왔던 방식대로 그냥 그대로 해도 좋습니다. 다만 팔을 위로 뻗치면 몸에 있는 기혈이 유통되는데 도움이 더 될 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또한 절에서 할 때는 절에서 하는 방식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굳이 요가 아사나 형식으로 해서 드러내 놓고 다른 사람과 틀리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가 아사나의 오체투지 행법도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으나 절의 핵심은 내용에 있습니다. 즉, 참회하기, 인연 끊기, 몸과 마음을 비우고 버리기, 바치고 공양하기, 공경하며 섬기며 자신을 낮추기 즉 하심하기, 원 세우기, 자기를 관찰하고 참구하기 귀의하기 등과 같은 내용에 있는 것입니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