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품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2004-01-11     관리자




모든 수행은 부처님으로 시작해 부처님으로 끝나야 합니다. 설사 출발은 부처님이 아니었더라도 종국에는 부처님 품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화두를 들든 진언을 하든 관을 하든, 모든 행의 종착점은 부처님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 품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수행이 원만하고 완벽해 집니다.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부처님의 무량한 원력, 무량한 자비 속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완벽하고 원만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깨달으면 다인 줄 압니다. 깨치면 더 이상 수행도 필요없고 장부의 할 일은 다 마쳤으며 그저 바람과 구름을 벗삼아 꿈같은 법문이나 설하며 열락을 즐기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 가피 속으로 들어가 부처님의 가없는 공덕 속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그 수행은 완전해지지 못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크게 떨어지기도 합니다.


영명선사께서 사료간에서 " 참선 수행도 하고 염불 공덕도 있으면 마치 뿔달린 호랑이 같아 현세에 뭇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장래 부처나 조사가 될 것이지만, 참선 수행만 있고 염불 공덕이 없으면 열 사람 중 아홉은 길에서 나자빠지나니 저승 경지가 눈앞에 나타나면 눈 깜빡할 사이 휩쓸려 간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소식을 이른 것입니다.
아무리 참선을 많이 하고 아무리 한 소식을 얻었다 해도, 부처님 공덕, 부처님 가피 속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지 못하면 수행도 공덕도 만사가 무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법성게를 지을 정도로 뛰어난 화엄승이었던 의상대사께서도 그토록 홍련암에서 기도를 올렸겠지요. 그런 기도에도 부처님 품으로 가지 못하니 대사께서는 최후로 동해 바다에 몸을 던졌고, 마침내 관세음보살께서 대사를 안으심으로써 부처님 품속에 안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용수 보살이 그토톡 염불을 강조하신 것도, 몽산 스님이 공부 끝에 한 소식 얻었으나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러서는 깨침도 삼매도 소용없고 오직 참회와 발원 속에서 다시 기사회생하신 것도 모두 이 소식을 말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태양은 다시 은하를 돌며, 은하는 다시 대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것 역시 더 큰 나, 더 큰 우주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함입니다. 더 큰 우주의 품에 지구가, 태양이, 은하가 안김으로써, 성장도 생명도 우주와 같이 무한하게 됩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그와 같으니, 아무리 큰 개인의 영광도 국민 속에서 국민의 영광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개인 자랑으로 끝나고 맙니다. 아무리 부를 이룩해도 그것이 성실한 세금 등으로 국가를 위한 부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개인의 부의 축적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폭등하는 아파트 값이 사회문제화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와 같이 아무리 개인의 수행이 깊어도 그것이 부처님 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그저 개인 수행으로 끝나고 맙니다. 중생의 공덕이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수행이 중생의 이익이 되지 못하고 내 수행으로 끝나고 마니, 그 깊은 수행, 그 깊은 소식이 도무지 보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수행을 해도 종국에는 부처님 품속으로 반드시 들어가야함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시아본사아미타불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