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녹색 타라

내가 감동한 밀교의 여성들1

2007-09-24     관리자

타라는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티베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보살이다. 타라는 산스크리트 명이고 티벳어로는 돌마라고 하는데 돌마는 티베트에서 가장 흔한 여자 이름이기도 하다.
때문에 타라는 우리가 티베트 불교를 만나자 마자 가장 많이 듣고 접하게 되는 보살이다. 그런데 이 타라 보살들은 젖가슴을 온통 드러내고 눈꼬리가 날카로운 이국 여성의 모습이고 더구나 녹색타라는 살색까지 시퍼래서 우리 불교미술에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매우 낯설은 모습이다.
그래서 성적으로 교합한 상태로 표현되는 부모(父母)상들이나 무서운 모습의 불보살상들과 더불어 티베트 불교가 정식 불교가 아닌 뭔가 사이비적인 불교라는 의심을 갖게 해준다. 그러나 타라가 어떤 보살인지를 알게 된다면 한국의 불자들도 많이 좋아하게 될 것이다.

타라 보살이 된 혜월 공주의 서원
수억 겁 전 아다 부처님〔鼓音如來〕 시절에 이셰다와〔慧月〕라는 공주는 수없는 생을 통해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한량없는 공양을 올렸다.
공주는 10세부터 고행과 명상을 끊이지 않고 계속하여 79세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보살의 경지에 이르렀다. 혜월 공주가 깨달음을 얻자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들이 찾아와 예를 올리고 “공주시여, 깨끗한 복을 짓고 한량없는 공덕을 쌓아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으니 속히 남자의 몸을 받아 부디 중생을 위해 법을 베푸소서.”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공주는 이를 거절하며 “남자 모습의 부처와 보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여자 모습의 불보살은 거의 볼 수 없으니 나는 이 삼사라가 텅비도록 여자의 모습으로 모든 중생을 도우리.”하고 서원하였다. 다시 여러 번을 더 안거에 들고 삼매를 이루어 공주는 고통의 강을 건네주는 어머니라는 ‘타라’로 불리게 되었다.
타라는 실제로 어머니가 되기로 하고 부처님이 주신 환약을 먹고 축복을 받아 99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오유라고 하는 훌륭한 용모의 보살을 아들로 낳았다. 타라는 아들을 몹시 사랑하여 늘 가슴에 안아 젖을 먹이고 연꽃 위에 눕혀서 열매의 즙을 먹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직도 젖을 먹는 어린 아들이 그만 사라져 버렸다. 1천불 나라의 부처와 보살들이 감추어 버린 것이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타라는 수행으로 쌓은 모든 마음의 힘이 사라지며 가슴이 미어져서 젖이 마르고 달빛 같던 얼굴이 시커멓게 어두워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으며 하늘과 땅이 흔들리도록 통곡하니 눈물로 호수가 생기고 마른 나무에서 새잎이 나왔다.
부처님이 친히 내려오셔서 타라의 두 손을 잡아 일으키며 법을 설하시기를, “육도의 어머니 타라시여, 사랑하는 사람과는 헤어지기 마련인데 어찌 이리도 고통스러워하시는가?” 그러나 부처님의 설법조차도 아들을 잃은 어미의 고통을 달랠 수 없었다. 아들을 찾아서 천상에서 지옥까지 육도를 샅샅이 뒤지고 헤매이면서 타라는 육도 중생들의 고통을 낱낱이 보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천불 나라의 부처와 보살들이 황금탑 안에 감추어 놓은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내 상봉한 모자가 끌어안고 서럽게 울며 함께 흘린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다. 그 눈물은 약이 되어 그 눈물을 마신 모든 중생들이 장애와 병을 벗어났다.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은 타라는 “내가 이 아들을 찾아 육도를 헤매이면서 고통스러운 중생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아들을 찾던 그 애절한 마음으로 고통스러운 중생들을 건지리이다.”하고 서원하니 부처와 보살들이 몹시 기뻐하며 타라 모자를 좌대 위에 앉히고 세 바퀴를 돌고 절을 한 다음 “타라 어머니시여, 우리가 아들을 숨긴 것은 중생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상을 어머니가 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였다. 수없이 많은 중생들을 구원한 타라는 부처님이 바뀐 지금도 포탈라라는 궁전에 거하며 외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으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중생들을 돕고 있다. 티벳 라사의 달라이라마가 거하는 궁전의 이름을 포탈라라고 한 것은 어머니 타라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보살피고자 하는 달라이라마들의 의지인 것이다.

왜 타라 보살을 숭배하는가
나는 타라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끈질기게 한계에 도전했던 여성 수행자로서 좋아하며, 아들을 잃고나서 수행으로 쌓은 엄청난 마음의 힘조차 무너져 버렸던 아픔과 약함을 경험한 어머니이기에 더욱 좋아한다.
자식이 없었다면 여성이라 해도 남자 보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너무나 멋지고 통쾌한 패미니스트로서 나는 타라를 숭배한다. 성불한 타라에게 비구들이 찾아와, 어서 남자 몸을 받으라고 권할 때 끝까지 여자로 남겠다고 한 그 대답이 나를 열광하게 만든다.
어려서부터 딸로 태어난 것이 아주 싫었고 커갈수록 내가 여자라는 것이, 여자에게 주어지는 그 모든 제약과 한계들이 싫었다. 그럼에도 패미니즘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여자들 각자가 스스로 남자랑 동등해지면 그만이지 뭐하러 무리를 지어서 남자들한테 시비를 거는가 싶어서였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남자처럼 행동하면서 되도록 남학생들과 어울리려고 애를 썼고 남자처럼 취급받고 싶어하였다.
옷이나 화장품 값은 거의 쓰지 않았지만 술값이나 찻값은 웬만한 남학생들보다 훨씬 많이 썼다. 간혹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나를 제압하려는 남자들과 마주치면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톡톡히 깨닫게 해주거나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꽤 성공적이었다. 학교의 선후배들도, 교수님들도 그리고 졸업 후에 기어든 사회에서도 나는 여자로서보다는 인간으로서 인정받는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국을 떠나 태국, 스리랑카, 인도, 네팔, 파키스탄, 이란, 터어키의 변방 등을 돌아다니면서 빈곤과 여성 차별의 악순환 속에서 처참하게 살고 있는 그곳의 여자들을 보고는 내가 잘나서 남자들이랑 동등해 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도 한국만큼이나 발전한 나라의 여자로 태어난 덕이었고 그만큼이라도 관대하고 덜 무식한 한국남자들의 덕이었다.
파키스탄을 비롯한 회교국의 여자들은 강간을 당하면 몸관리를 잘못한 죄명으로 감옥에 갇혀서 벌을 받아야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악랄하기 그지 없는 강간범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들은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를 못한다. 장도 남자들이 보러다닌다. 어쩌다가 밖으로 나가도 운동부족으로 살만 뒤룩뒤룩해진 거북한 몸뚱이를 차도르 라는 시커먼 천으로 온통 다 가리고 눈만 내놓고 다녀야 한다. 그 더운 날씨에 말이다.
인도에서 시댁 식구들이 남편과 합세해서 지참금을 적게 챙겨온 새색시를 불태워 죽였다는 내용은 별로 쇼킹할 것도 없는 빈번한 기사이다. 무료학교가 있어도 일할 사람이 없으니까 딸들은 집에 남는 것이다.
한국의 성차별도 참 심각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아우성이나마 칠 수 있는 여성들은 미국과 서유럽,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의 극소수 일부 여성들뿐이다. 지구촌의 절대 다수의 여성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고통스러운 운명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답답하고 가엾고 서러운 여자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파키스탄과 네팔의 가난하고 후미진 골목들을 걸으면서 그리고 인도의 서민 가족들 틈에 끼여 이등열차를 타고 며칠씩 긴 여행들을 하면서 이 여자들의 의식과 삶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다음 생애에는 이런 여자들 속에 태어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만큼 똑똑하고 강한 여자로 태어날 수만 있다면 한국처럼 좋은 나라에 태어났고 교육을 많이 받은 복많은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안락함을 사양하고, 어떤 어려움이라도 참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티베트 불교를 통해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모습으로 끝까지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보살을 만났으니 나는 열광적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의 빽이 타라보살보다 아무리 더 세고 강하더라도 나는 타라 보살을 따라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