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삼매, 신통력은 무엇인가?

2004-01-04     관리자



수행을 제대로 하면 삼매에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매의 맛(?)을 한 번 보고 나면 수행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고 합니다. 일체 번뇌 망상이 사라지고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삼매. 시간과 공간이 끊어져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성성적적한 상태만 지속되는 상태. 그런 삼매를 수행자들은 종종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좌탈입망이 가능한 것도 모두 삼매의 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의 공부가 중생의 번뇌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삼매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명나라 4 대 고승의 한 분인 감산 스님은 19 세에 출가하신 그 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염불 정진함에 얼마 되지 않아 꿈속에서 아미타부처님이 공중에 서 계신 모습을 뵙게 됩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아미타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다시 관음, 세지 두 보살님을 뵙기를 원하자 그 즉시 두 보살님 역시 스님 앞에 나타나십니다. 이 때부터 스님이 염불할 때마다 이 세 분의 불보살님들이 늘 눈앞에 나타나시어 스님의 염불 수행이 여법하다는 것을 증명하십니다. 또한 스님이 반산(盤山)에 계시며 그 곳 바위굴에 기거하는 은자(隱者)와 함께 수행할 때, 산하대지와 몸과 마음, 온 세계가 텅 비어버린 공정(空定)의 경계(空三昧)를 만나게 됩니다.


그 후 중국 대륙을 종단하시며 수행과 중생 구제에 전력하시던 스님은, 이러한 수행, 이러한 경계에도 불구하고 젊을 때 본래 원력이었던 불에 타버린 출가 본사를 중수하시겠다는 원은 끝내 이루지 못하신 채, 세납 50 에 이르러 황제의 노여움을 사 남쪽 변방 광동성으로 유배를 가시게 됩니다. 그리고 세납 61 세에 유배에서 풀려나신 후 더욱더 전법과 중생 제도의 삶(傳法度生)을 사시게 됩니다.


이런 감산 스님의 삶을 보면 초기의 경계는 오히려 하챦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진정으로 스님의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불보살님들의 현전(現前)하심이나 입삼매(入三昧)가 아니라, 그 후에 펼쳐진 찬란한 전법도생의 삶이라 할 것입니다. 불사(佛事)의 성패나 심신의 고락을 떠나, 처처에 인연을 따르시며 도량을 복원하시고(실지로 스님은 출가 본사의 중창 대신, 유배지에서 선종의 연원인 남화사를 중수하십니다), 설법과 강경(講經), 법담과 서신으로 고난의 중생들에게 법은(法恩)을 베푸신 일이야말로 진정한 삼매요 진정한 신통 경계라 할 것입니다.


흔히들 수행에서 삼매와 신통을 말하나 중생의 고뇌, 중생의 아픔을 없애주지 못하는 나의 삼매, 나의 신통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아무리 깊은 삼매에서 온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고 시간과 공간이 수없이 끊어져 본들 어차피 삼매는 깨어나게 마련이고, 내가 삼매에 들어 온 우주를 떠돌아 다니는 동안 옆집의 갑돌이는 오늘도 지친 몸으로 일터를 나가고 병든 갑순이는 오늘도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무너져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진정한 삼매, 진정한 신통은 이 세상 자체가 삼매요 우리의 삶 자체가 선정과 신통 경계에 이미 들어가 있음을 아는 것이라 봅니다. 그리하여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부(富)를 창조하여 일터가 없는 분들에게는 일터를 만들어 드리며, 배고픈 분들에게는 밥을 드리고 병든 이는 병을 낫게 하며, 자식, 부부 간에 고통 받는 분들에게는 그 분들의 고통을 없애주는 감로의 법문을 설해 드리는 것이 온 우주와 하나되고 시공이 끊어진 삼매에 드는 것보다 훨씬 더 보람되고 신통스런 삼매라고 생각합니다.


저야 근기도 모자라고 수행도 일천하여 불보살님들이 나타나시고 시공이 끊어지는 그런 깊은 삼매에 드는 것은 꿈도 못 꾸어보지만, 중생을 공경하며 섬기고 공양하는 그런 삼매(普賢三昧)에는 장차에라도 꼭 들 수 있기를, 새해 새 아침, 삼세의 모든 불보살님 전에 발원 드려 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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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