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공덕으로 사바 밝히셨나니···

큰스님을 기리며

2007-09-24     관리자

빛에는 무한한 공덕이 있다. 빛에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빛의 공덕으로 청정법신인 비로자나불과 원만보신 노사나불 그리고 천백억화신이 나투어진다. 그래서 빛을 진리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일찍이 성인의 그림에는 머 리 주위에 빛을 그려서 성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미타 부처님을 무량한 광명이라 하여 무량광여래불이라고 칭명하나 보다.
서방정토를 향한다는 것은 빛을 따르는 무한한 정진의 의미가 있다.
나의 광덕 큰스님과의 첫 인연은 1968년 마곡사 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연) 하계 수련법회에서였다. 그 때 큰스님의 세수는 4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큰스님의 첫인상은 부드러움이었고 그 느낌은 밝음과 넘치는 생명감이었다. 광덕 큰스님께서는 지도법사님으로 우리와 함께하셨다.
그후 두 번째 인연은 2년 후 대학 3학년 때였다. 대불련 범어사 수련대회였다. 그 때 범어사에 주석하셨던 큰스님은 부주지로서 종정이신 영암 대선사님을 모시고 종단의 대사에 관여하고 계셨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시고 설법과 수계식을 다 관장하셨다. 그 때 수계한 나의 법명이 연담(然潭)이다. 나는 연담이란 법명을 숭고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간의 교화활동의 원천이 바로 이 법명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나라는 것에 집착하면 교화의 원력이 상실되기 쉽지만, 연담이라는 법명에 의한 행위는 무한한 힘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위신력과 큰스님의 원력이 담겨진 법명에 의한 삶은 결코 약한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큰스님과의 우연한 인연은 대학 졸업여행시 쌍계사에서였다. 쌍계사 아래에 투숙하였던 나는 새벽 어둠을 가르고 쌍계사 도량에 올랐다. 어둠이 걷히기 전인 대웅전 주변에 한 그림자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디서 뵌듯한 스님의 뒷모습이었다. 스님은 벽화를 천천히 음미하며 돌아보고 계셨다.
나는 스님을 확인할 양으로 스님의 얼굴과 벽화 사이에 내 얼굴을 내밀었다. ‘아! 광덕 큰스님이 아니신가!’ 나는 반가워서 합장배례를 올리면서 “안녕하십니까?” 하니 큰스님께서는 정색을 하시며 “그래서” 하고 크게 되물으셨다. 나는 머쓱해서 다시 안녕하십니까? 하니 “그래서” 하고 호통을 치신다. 기가 죽은 나는 “다른 뜻은 없고 반가워 인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니 “음, 그래!” 다정한 미소의 얼굴로 “나하고 저 부도로 가자”고 안내하신다. 비틀거리시며 계단을 오르시는 큰스님을 부축하니 “며칠 기도를 저곳에서 했는데 동네사람들이 불이 난 줄 알고 양동이를 들고 몰려들었어, 와 보니 스님만 있으니 이상하다고 내려갔지. 아마 내가 방광(放光)이 되었나 봐” 조금도 당신과는 관계없는 일인 듯 천연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부도에 오르니 교수님 두 분과 학생 몇 사람이 있었다. 큰스님께서는 “여러분 이 자리는 성스러운 자리요, 고승의 부도도 있지만 어느 스님이 이곳에서 방광을 했던 곳이니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요”라고 덕담을 해주셨다.
그후 네 번째 광덕 큰스님을 뵈온 것은 군복무를 마치고 결혼을 한 후 사회인으로서 결혼생활에 괴로움이 있어 대각사를 찾았을 때였다.
큰스님께서는 “운전하는 사람이 차가 싫다고 운전석에서 내리면 그 차는 어찌 되는가” 라고 반문하셨다. 나는 이 말씀에 느낀 바 있었고, 그 덕으로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또 그 자리에서 광덕 큰스님께 예전의 쌍계사 기도 방광을 말씀드리니 전혀 그런 일 없노라고 완강히 부인하신다. 나는 자초지종을 성실히 말씀드리니 “오, 그런 일이 있었지. 기억나게 해 주어서 고맙네.”라고 하셨다. 다 아시는 듯이 말씀하시는 것을 생각하니 큰스님의 생활은 자취 없는 삶 그대로임을 역력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큰스님은 자취 없는 무위(無爲)의 삶에 머무르시지는 않았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역설하시기 30여 년, 우리에게 한없는 희망과 원력을 성취하라고 가르치시는 대승보살도는 감격적이라 할 수 있다. 큰스님께서는 포교의 절박성을 아시고 최초의 대형포교법당을 성취하셨고 대중 포교지로 최장수 불교잡지를 일구어 어 놓으셨다. 큰스님의 뜻은 우리 불광가족의 마음에 이미 씨앗을 뿌렸으니 결과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다섯 번째의 인연은 어느 날 불광법당으로 광덕 큰스님께 인사를 갔다가 전법에 힘쓰시는 스님께 여쭈었다. “어떠한 것이 진불사(眞佛事)입니까?” 큰스님께서는 나의 눈을 그윽하게 한참동안 보시더니 “일체상념을 버리고 즉시 행하라”고 일러주셨다. 나는 광덕 스님의 헌신적 교화에서 상념을 벗어난 일체행의 성취를 느끼었다.
열반하시기 전 스님께서 편찮으신 것을 알고 한번 찾아 뵙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도리어 스님께 누가 될 성싶고 내 자신의 수행과 불사가 미흡하여 스님께 심려를 드릴 것 같은 망설임으로 도리를 다 하지 못했다. 그러나 큰스님의 열반은 사바세계가 고해임을 여실히 보여주셨고 고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깨우쳐주신 스님의 진지한 한평생을 엿본다면 우리의 할 바를 인지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알고 있는 광덕 큰스님은 원력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가 그 원력을 우리에게 심으시고 가신 광명의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친척이 광덕 큰스님을 찾아뵈었다 한다. 봉은사에서 만난 큰스님은 몸에서 환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한다. 우리가 진실로 진리를 그리워한다면 큰스님으로부터 광명을 발견할 수 있다. 혈육과 사제의 정을 벗어난 진리 자체의 광명을 뵐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열반하신 광덕 큰스님의 모습은 형상으로 뵐 수 없다. 형상 아닌 광덕 큰스님의 진리의 광명으로 뵈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그 광명은 불자들의 가슴마다 밝혀져 있다. 우리 모두의 광명을 한데 모을 때 비로소 광덕 큰스님의 광명이 시현된다고 생각해 본다.
한줄기 빛으로 오시어 고통의 언저리를 밝혀주신 광덕 큰스님 허공의 자취를 닮으시고 고요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과의 법에 어긋남이 없으셔서, 모든 것을 성취하신 큰스님.
이같이 사신 법은 오직 우리의 삶을 일깨우기 위하심이니 그 뜻 간직한 자만이 불광행자라 이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