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 순례기] 17.우주의 중심, 수미산3

수미산 순례기 17

2007-09-23     김규현

‘수미산설(須彌山說)’의 시작은 ‘아함부’에서 신비에 쌓여 있는 성스러운 산은 오늘도 묵묵부답일 뿐이다. 일단 그 의문-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그냥 돌산에 불과한 무생물체를 4대종교는 왜 이구동성으로 성스럽다고 여기게 되었을까에 대하여- 의 대답은 뒤로 미뤄 놓고 우선 경전상에 묘사된 수미산의 모습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붓다의 입멸 후 그의 말씀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스승의 육성을 직접 들은 제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자 기억상실을 우려하여 문자로 기록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불교사에 나타난 네 차례의 결집회의 끝에 경전(Sutra)이 만들어져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라는 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 초기의 원시경전인 ‘아함부(阿含部)’는 뒤에 나타나는 대승경전에 비해 단순하고 순수하여 붓다의 육성녹음에 가깝기에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초기 교단의 모습과 당시 인도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원시경전 아함경에서 우리의 ‘수미산설’은 시작된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수미산설’이 당시 인도사회의 보편적 과학지식이었다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다시 환언하자면, 불교의 시작이 당시 인도사회의 개혁에서 싹튼 것이니만큼 붓다 자신도 당시로서는 신선한 사상을, 식상해 있던 대중들에게 제시하여 지지를 받았지만 당시의 보편적인 우주관만큼은 그대로 수용하여 불교적 ‘수미산설’을 정립하였다고 여겨진다. ‘장아함경 염부제주품’을 비롯한 십여 개 대·소승 경전에 묘사된 내용은 너무 방대하고 난해하고 또 과장적이어서 경전 특유의 상징성·과장성을 감안하여 보지 않고는 이해하기가 힘이 드는 부분이 많다.

‘수미산설’의 내용을 소개하는 방법은 그렇기에 직역과 요점 정리가 둘다 필요하다. 우선 일부분만 직역 인용해 보자.

“수미산의 높이는 물 아래, 위로 8만 유순(由旬: 거리단위이다)인데 사면으로 수직으로 곧게 뻗어 있다. 산 밑은 사천왕(四天王)이 사방으로 지키고 있으며 그 위로 삼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의 33천(天)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 산은 삼단계의 길이 통해져 있어서 그 양편으로 일곱 겹의 울타리·난간·대문·창문이 늘어서 있다. 산의 정상에는 제석천(帝釋天)의 궁전이 있어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中略)… ”

‘수미산설’은 어디까지나 불·보살의 세계이기에 언어영역으로는 접근에 한계가 있다. 그리고 신화의 세계를 사실로 밝혀내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의 화두, 수미산에 어느 정도까지는 들어가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 여겨진다.

이 순례기의 앞부분에서 필자인, 해동의 순례자는 ‘수미산의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산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운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것과 연관된 문제로 우선 불광(佛光)1,2월의 순례기의 사진을 다시 유심히 본 다음 위 인용문의 방점 찍은 구절과 비교해 보시기를 바란다.

“그 다음 명상에 들어가라. 그러면 거기 거대한 창조의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둥근 피라미드같이 생긴 산이 서서히 베일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 다음은 가운데 나있는 ‘하늘에 이르는 길(天階) ’도 나타날 것이고 그 길을 걷다 보면 칠보로 치장된 33천궁의 방에 눈부시게 빛나는 불이 켜질 것이다. 정상 부근에 이르면 제석천이 마중을 나올 것이며 도솔천에서는 마이트리야(Maitreya)가 합장하고 계실것이다.”

경전의 문자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고도의 상징적인 것들이다. 그렇기에 수미산은 그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우리 중생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세계에의 ‘스카이 코드(Sky Cord)’인 것이며 나아가 신비스런 우주와 텔레파시를 주고 받는 지구별 곧 사바세계의 중심 안테나인 것이다.

‘카이라스 산(6,714m)’의 ‘산-돌이 ( Kora)’

새벽부터 진눈깨비가 쏟아졌지만 출발을 더 늦출 수 없기에 우리 연합순례단은 짐을 실은 야크 떼를 앞세우고 코라를 떠났다.

불교·힌두·자이나 교도는 시계방향 쪽으로 뵌교도는 오른 쪽으로 성산을 한 바퀴 도는 순례인 ‘산-돌이’ 즉 코라를 떠나는데 53km의 전 여정을 대개는 2박3일 또는 4박5일로 잡고 출발하게 된다. 수미산으로 알려진 이 카이라스 산의 특징 중의 하나는, 히말라야 봉은 서로 붙어있어서 높지만 높아보이지 않는 반면, 광활한 고원(4,500m)에 떨어져 홀로 솟아있는 이 산은 산 밑까지 다가갈 수 있어 거기서, 눈앞에서 아니 코앞에서 2천m의 단일 봉우리를 올려다 보기 때문에 더욱 거대해 보인다. 그렇기에 근대 삼각측량법에 의한 확인 전까지는 세계의 최고봉으로 알려졌었다. 그래서 ‘수미산설’은 시작되었었겠지만….

또 다른 특징을 꼽는다면 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점이다. 중간의 될마 고개(5,620m)만 제외하고는 계곡길을 따라 걷는 평탄한 길이기에 고소적응만 된다면 누구나 코라를 할 수 있기에 정화론의 설화가 생기게 되었다. 중생이 한 번 이 산을 돌면 이생의 죄업이 소멸되고 세 번을 돌면 금생에 해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티벳인은 이 전과정을 오체투지법으로 순례를 하기를 갈망하고 그 중 일부는 도중에 정말로 몸을 바꾸는 해탈을 하여 중간에 있는 천장장(天葬場)에서 독수리 먹이로 화하기도 한다.

안개 속을 뚫고 몇 시간을 가다 보니 산의 서쪽면의 넓은 계곡이 나타나고 산의 입구를 알리는 ‘강니탑(Gang Ni 塔: 1月호 사진참조)’과 당간지주인 ‘다르포체(Tarpoche:거대한 나무막대)’가 기원의 깃발 타루쵸에 휩싸여 안개 속에 서 있다.

길은 융단 같은 초원 속으로 북으로 뻗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신의 시냇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라추(Lha chu)가 흘러내려온다. 카이라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이 신성한 물은 다시 동서남북으로 흘러 4대강(인더스, 갠지스 등등)의 발원지가 된다. 거기 아름다운 외나무 다리가 걸쳐 있는데 역시 오색깃발 타루쵸가 바람에 펄럭이며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다.

“어서 오십시오. 해동에서 온 순례자여!” 불·보살의 나라의 첫 다리를 건너자 건너편 산에 제비집같이 붙어있는 ‘넨리굼파(Nyen ri)’가 올려다 보이고 길을 오르다 보니 길가에 ‘연꽃 동굴’ ‘코끼리 동굴’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밀라레빠(Milarepa)는 쐐기풀만 먹으며 육신의 동굴 속에서 탄트라행법을 익히며 때때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으리라.

깨달음의 노래를 목놓아 불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