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 순례기] 15.우주의 중심, 수미산1

수미산 순례기15

2007-09-23     김규현

옴(Om)! 마침내 수미산에….

이번 순례기를 시작할 때 나는 프롤로그를 이렇게 적었었다.

“북경발 우루무치 행 열차에 몸을 싣고 며칠 간을 달리는 동안 이명(耳鳴)현상을 동반한 마치 환상 같은 영상이 온통 뇌리 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구름 위에 솟아 있는 이상한 모양을 한 거대한 설산이었다. 저녁 햇살에 빛나는 아름답고도 외로운 산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뒤따르는 화두-과연 수미산은 이 사바세계에 존재하는가(?)였고 만약 실존한다면 나는 그곳을 찾아갈 수 있을까(?)였다. 내 젊음의 여울목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나로 하여금 당연한 세상사에 무심하게 했던 환상의 실체가 바로 ‘수미산의 부름’이었을까(?)하는 물음 또한 나로 하여금 수미산 삼매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벌써 일년이 되어간다. 그렇게 올라온이 막막한 티벳 고원에서의 보낸 시간들이. 그간 수미산 화두를 들고, 티벳 대학에서 여러 언어로 쓰여진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으며 한편으로 현지의 언어와 습관을 익히고 고산병에 대한 저항력도 키우면서 본격적인 순례 준비를 하여 왔다. 이제 그 때가 되어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 화두를 내려 놓고 가슴으로 수미산을 맞이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즉흥적으로 다녀왔던 쪼모랑마, 즉 에베레스트 길에서 돌아와 얼마 만에 방학을 맞아 학교와 공안국 측에 신고와 ‘변경여행허가증’을 받아 순례단을 모집하여 준비에 들어갔다. 순례의 필수조건은 교통편의 확보였다. 대중교통편이 없는 성산(聖山)의 순례길은 나와 같은 처지의 단독행의 경우 대개는 경비절감을 위해 팀을 짜 지프차, 트럭, 기사, 가이드를 전세내어 여행사를 통하여 허가증을 받아야만 한다. 여행사는 대개 한 달 가까이 걸리는 기간 중의 교통편만 책임지므로 기타 숙식 등을 위한 준비물과 비용은 각자 부담하여야 했으므로 출발 전야는 부산스러웠다.

8명으로 구성된 4개국 연합 순례단은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 라사를 출발하여 시가체, 라제를 거쳐 네팔행의 공로를 벗어나 우회전하여 샤가, 중바, 파양 등의 작은 마을을 지나 일차 목적지인 더르첸에 밤 늦게 도착하였다. 지도상에는 버젓이 표시된 길이라지만 사실 그것은 공로라기보다 그저 소로였기에 때로는 숙달된 운전기사도 길을 잃기 다반사였고, 수많은 개울을 건너다 차가 떠내려 가기도하고 차가 고장나도 부속이 없어 며칠 씩이나 기다려야 하는 고행길이었다. 그렇지만 수미산의 환상에 사로잡힌 일행들은 모두 즐겁게 잘 참아내었다. 편한 여행이었으면 무슨 추억이 남으며 무슨 의미있는 순례길이랴 하는 각오로 마침내 성산의 발밑에 도착한 것이다. 라사를 출발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수미산은 과연 실존하는가?

사실은 지도상에는 수미산이라 공인된 지명은 없다. 아니 우리들의 머리속에 그려져 있는 경전 속에서 묘사된 수미산은 실제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신화나 전설일 뿐이다라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미산 순례기’이냐?라는 의문이 뒤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 질문에 대한 조심스런 대답은 이렇다.

“수미산의 모델로 추정되는 신비의 산은 존재하고 있다”. 라고. 그런 가설을 세우고, 증명한 다음, 그래서 이 산이 바로 수미산이다라고 하는 것이 이성적 접근 방법이겠지만 이 순례기는 학술논문이 아니기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결론을 내리고 추후에 증명하는 방법으로 이 글을 써내려감을 밝혀 두고자 한다.

수미산으로 추정되는 산은 위도상으로는 히말라야 산맥 너머 티벳 고원의 서 남부에 위치한다. 아득한 옛날부터 4대종교의 성산으로 알려져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이 산의 이름은 시대, 종교, 민족, 언어 별로 여러 가지로 불려 왔는데, 현재로는 영어권 지도에는 범어(梵語)의 음을 따 ‘카이라스(Kailash)’라고 표기돼 있고 티베트권에서는 ‘강린포체’로, 한어권에서는 ‘강디스(岡底斯)’산맥 혹은‘강린포체(岡仁波齋)’로 표기되어 있다. 그 어원을 해석해보면‘강( Kang)’이란 접두사가 공통적으로 불어 있는데 이는 눈(雪)을 뜻한다. 그러니까 ‘강린포체’는 눈+활불(活佛)이 되어 ‘눈의 부처’라는 뜻이 되는 셈이다.

특히 여기서 사용 빈도가 적은 ‘강디스’를 유심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강디스’에서 접두사 ‘강’을 빼면 ‘디스’가 되는데 이는 시인이며 성자인 밀라레빠(Milarepa 1052~1135)의 ‘십만송(十万頌)’중에 빈번히 나타나는 ‘띠세산’, 바로 그 산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왜 ‘강린포체’란 이름이 고전에는 사용되어지지 않았나 하는 숙제를 풀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옛적에는 현재의 ‘린포체’보다는 ‘디스’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면 ‘강디스’ 즉 ‘강린포체’ 또는 ‘카이라스’라는 여러 이름을 가진 이 산이 과연 경전 속의 수미산의 모델이 되는 산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문제의 해답은 우선 밀라레빠의 ‘십만송’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 산의 토굴에서 쐐기풀을 먹으면서 고행을 하며 때때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노래하였다. “띠세 설산(즉, 강디스)은 명성이 드높아 세상 사람들은 멀리서 칭송하네./ ‘띠세산은 수정탑과 같도다!’라고/가까이 찾아와 바라보면 띠세산은 눈에 덮여 있네./붓다는 예언하셨네./ 이 산은 세계의 배꼽이요,/ 설산 표범이 춤추는 성스러운 곳이라고./산봉우리의 수정탑은 뎀촉불(Demchg Budda)이 사는 순백의 궁전이네/ 띠세산 에워 싼 장엄한 설산들은 오백나한이 거처하는 성봉이네./이보다 경이로운 장소 있으랴!/ 이 보다 수려한 장소 있으랴!”

또 다른 구절에는 직접적으로 띠세산과 수미산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세계의 중심 수미산 곁에 있는 남섬부주 하늘은 푸르게 빛나나니/ 그 푸르름이여, 그 장엄함이여!/수미산 중심 거대한 얌부나무 위로 해와 달은 사대주를 비추네./용왕은 하늘에서 단비를 내리니 이는 땅 위 장엄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