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빛의 샘 - 끝이 좋아야 시작이 빛난다

2007-09-23     관리자

충주라는 곳이 서울이나 큰 도시들에 비하면 그리 번잡스러운 곳은 아닙니다. 그래도 시내에서 차로 이십여 분 남짓한 거리를 두고 이사를 나오니 사는 모양새나 마음가짐이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아파트 생활에 무료해 하던 아내도 이곳 생활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이사온 초봄부터 가을걷이가 끝난 지금까지도 농사일 배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좋아하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초등학교 2학년인 큰아이 한결이는 전교생이 70여 명 남짓한 학교생활이 마냥 즐거운가 봅니다. 평소 숫기가 없어서 남들 앞에선 소리내어 책 한 줄도 변변히 읽어내지 못하던 녀석이 어느새부터인가 몰라보게 활달해져 있습니다.
둘째 한힘이나 막내인 한별이도 동네에서 소문난 씩씩이 들이라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결국은 부끄러운 일이 되고만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감나무였습니다. 담도 없는 집, 마당 한 켠에 문지기라도 되는 듯 버티고 선 감나무였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의 집에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이웃사람들은 그 집을 모두 감나무 집이라 불렀습니다. 가을이면 주렁주렁 달리던 감나무도 생각나는 것이었지만 나는 감나무집이란 호칭을 더욱 부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인지 큼직한 감나무는 언제나 마음 든든하고 은근스리 자랑거리였습니다. 게다가 봄부터 감꽃이 엄청나게 피어 만나는 사람마다 “나중에 감따러 와라, 따서 주마”며 자랑을 연신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면서 감꽃은 절반 이상이나 떨어졌고, 결국 감은 반접도 못 챙기고 말았습니다. 지금 추녀 밑에 매단 곶감은 우리 부부의 감타령을 보다못한 동네분들이 가져다준 것입니다. 당연히 감나무를 대하는 우리 부부의 눈길이 곱지 않았는데 얼마 전 다녀가신 아버님이 “원래 감이 많이 여는 나무는 속이 썩어 있는데 이 나무는 감이 많이 열리는 나무다. 너무 보채지 마라” 하시며 갈라진 나뭇가지 하나를 걷어내어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만 부끄러워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자연이다. 이것이 생명이다 싶었습니다. 마당 가득히 감꽃이 벌어지고, 익다만 감들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속이 아리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는데 이제 새벽녘이면 앙상한 가지 위로 하얀 서리를 이고 섰는 감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가짐이 다시금 숙연해집니다.
보다 많이 보다 크게 수확을 기대하는 건 욕심을 떨구어내지 못한 사람들의 그릇된 마음뿐인 것 같습니다. 나무는 한 해의 생명을 다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는데, 그리곤 또 다시 생명의 순환을 시작했는데 그저 욕심 많은 우리가 그 생명과 풍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듯 자연은 생명의 순환과 질서에 자신을 아끼지도 않지만, 준비되지 않은 것들을 서둘러 내어줄 요량도 세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우리 부부의 한해살이도, 이렇게 마무리되고 시작되어 점점 더 자연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들녘은 비어있습니다. 비어있는 만큼 생명도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