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스승과 제자

길을 묻는 이에게

2007-09-23     관리자

나의 마음 속에는 스승과 제자가 있다. 스승은 선각자이고 제자는 중생이다. 스승은 하나인데 제자는 8만4천 명이나 된다. 그러니 스승은 제자로 늘 괴로워한다. 반면에 제자들은 스승으로 인하여 기쁨을 찾아간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은 서로 갈등과 번민이 끊일 날이 없다.
그러므로 스승은 제자들을 이끌기 위해 규범을 정하고 제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자비로 격려한다. 스승과 제자가 닮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들어보자.

스승 제자여, 그대는 삶이 괴롭지 않는가?
제자 괴롭습니다.
스승 무엇이 괴롭다고 여겨지는가?
제자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괴롭고, 사랑과 미움 그리고 재산과 욕망으로 괴롭습니다.
스승 그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겠는가?
제자 원인이 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스승 그 원인을 그것에 대한 생각, 즉 집념이라고 가정할 수 있겠는가?
제자 가정해도 좋을 듯합니다.
스승 그럼 원인을 확인하고 그 원인을 소멸하면 괴로움도 사라지리라 보는가?
제자 그렇습니다.
스승 괴로움의 원인을 집념으로 본다면 집념의 근본은 무엇인가?
제자 나와 바깥의 관계에 대한 애착이라고 봅니다. 즉 인연이라고나 할까요.
스승 인연을 없애고 세상을 살 수 있겠는가?
제자 살 수 없겠지요.
스승 인연을 수용하고 집념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가?
제자 무심으로 인연을 따르면 되지 않습니까?
스승 그런데 왜 사람들은 무심으로 인연을 따를 수 없는 것이냐?
제자 모르겠습니다. 아마 욕심 때문인 듯 싶습니다.
스승 그것은 나와 세상을 보는 마음에 있다는 잠재의식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있음으로 존재하여야 하고 존재를 위해 소유해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제자 나와 세상은 실제로 있지 않습니까?
스승 세상은 변하고 있지 않는가. 세상에는 모든 것이 생기고 없어지지 않는가?
제자 그렇습니다. 항상한 것은 없습니다.
스승 무상한 것이다. 환상인 것이다. 우리는 늘 그것을 잊고 있다. 비록 생각에 있다가도 경계에 부딪히면 잊고 만다. 그리하여 항상하고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어 있다. 우리에게 있어 제일 무서운 것은 착각이다. 착각은 명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제자 어떻게 하여야 착각을 없앨 수 있습니까? 그리고 바른 마음을 변치 않고 지닐 수 있습니까?
스승 빈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이다. 빈 마음이 된다면 세상은 환상처럼 보인다. 무상이 역력히 그 때 그 때 드러난다. 만약 꽉찬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발동한다.
제자 빈 마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슨 마음입니까?
스승 생각없이 깨어 있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된다면 즉시 판단하고 즉시 놓아진다. 그리고 바르고 오랜 기억이 이루어진다.
제자 그런 삶이 세속에서도 가능합니까?
스승 만약 세속에서 불가능하면 출세간에서도 가능하지 않다. 세간과 출세간은 우리가 만든 경계일 뿐 다른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출세간을 지향하는 것은 보리심을 내도록 하는 방편일 뿐이다. 만일 세간에서 보리심을 낸 불자가 있다면 굳이 인연을 거슬러 출가할 필요가 없다. 그는 세간에 있어도 출세간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자 빈 마음이 안 되고 번뇌스러울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스승 나오는 번뇌마다 그 곳 그 때에 바로 부처님께 드려라. 내가 잠시라도 가져서 그 생각이 머문다면 병이 되고 죽음이 된다. 부처님은 번뇌와 보리를 똑같이 생각하신다. 따라서 무엇을 드리든지 상관이 없다. 바치는 것마다 사양치 않으신다. 주저할 필요가 없다. 나쁜 것도 마다 않으신다. 즉시 바쳐 빈 마음을 유지하라. 마음의 평화가 바로 너의 고향임을 알게 된다.
제자 우리도 언제 스승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스승 나와 너희들은 둘이 아니다. 둘로 보이지만 결국 둘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즉 중생으로 가정하고 중생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불교의 대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