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스님께 드리는 편지

특집 - 생활 속의 불교공부

2007-09-23     관리자

P스님, 스님께서 양행자와 함께 누추한 제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양행자가 15년이 넘도록 금강경을 매일 20회 이상 독송하면서 생활해왔다는 점도 경외스런 일이지만, 스님께서 낮에는 학교에서 교사로 생활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침 저녁 예불시간에는 백팔배를 빼놓지 않으며 금강경을 하루에 10여 회씩 독송한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크게 놀랐습니다.
최근에 안 일이지만, 어린 중학생들 앞에서 목이 부르트도록 가르친 대가로 받는 월급을 땡전 한푼 남기지 않고, 그야말로 모조리 이웃에게 보시하거나 불법 홍포에 쓴다는 사실은 저로 하여금 스님이 보현보살의 화신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P스님, 요즘들어 스님께서 발심하여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설하신 ‘참여래’를 참선수행법을 통해 직접 찾아보겠다고 굳게 결정한 것은 더더욱 반가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큰스님들의 법문에 의하면, 참된 법의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수행을 하든 기본적으로 선정(禪定)을 익혀야 한다고 하셨고, 부처님께서도 대중들에게 법문을 하시기 전에는 언제나 깊은 선정삼매에 드셨다는 것을 어느 경전을 펼쳐보든 경전 첫 부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염불을 수행방법으로 택하는 정토종(淨土宗)에도 16관법이라는 선적(禪的)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경전을 읽으면서 뜻은 새기지 않고 앵무새처럼 경전 구절만 반복해서 독송한다면 이는 부처님의 뜻을 배반하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 일예를 금강경 구절에서 들어보면 “무릇 존재하는 것들은 항상되지 않으니, 모든 존재가 존재가 아닌 것을 알면 바로 여래를 본다.”고 했으나, 모든 존재가 존재가 아닌 그 자리를 스스로 진실되게 체험하지 못한다면 이는 금강경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일 뿐,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P스님, 요즘 미국이나 유럽을 다녀온 한 스님의 말에 의하면 도시 근교의 조용한 공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즐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이 남에게 특이하게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시적인 호기심에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진실로 참된 자아(自我)를 찾으려고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또 한 달 전부터 선원(禪院)에 예약을 해두었다가 주말이 되면 금요일 오후부터 혹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선원에서 스님들과 함께 참선수행을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들이 참선수행에 그처럼 깊은 관심을 표하는 것은 기독교의 이분법적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서양문명의 쇠퇴도 쇠퇴지만, 세계의 수많은 현대인들이 과학문명의 발달도 물질적 풍요를 한껏 누리고는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척박하고 빈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길을 참선수행법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일 겁니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급격히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숨가쁘게 뛰어야만 적자생존의 경쟁사회에서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스트레스성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곧 도태된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 주변 사람들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P스님, 스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주제넘게도 이미 오래 전부터 현대인들의 정신적 방황과 고통, 그리고 사회적 병폐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전국 방방곡곡의 사찰마다 시민선방이 들어서고, 빌딩마다 교회가 들어서듯 마을마을마다 누구나 찾아와서 참선을 할 수 있는 시민선방이 들어서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스님은 기도도 제대로 못하는 신도들에게 어떻게 참선법을 가르치냐며 비관적인 입장에서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고, 혹 어떤 스님네는 상근기(上根機)의 스님네들도 참선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중도에 포기하고 염불이나 주력이나 경전공부로 수행방법을 바꾸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어떻게 일반인들에게 참선공부를 시키느냐고 코웃음을 치는 경우도 겪어봤습니다.
P스님, 참선공부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요? 저는 감히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코로 숨쉬는 것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참선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한 예를 들어보자면,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복식호흡(배를 내쉬면서 숨을 들이쉬고 배를 안으로 움츠리면서 숨을 내쉬는 호흡법)을 동반한 수식관(數息觀, 모든 생각을 쉰 다음 내뱉는 호흡 하나에 숫자 하나를 붙이면서 열까지 반복해서 세어나가는 참선법)을 3년 여에 걸쳐 꾸준히 지도한 통계결과에 의하면, 학생들의 76%가 산란한 마음이 차분하게 안정되어 정신집중이 잘 되고 학습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저지른 자신의 언행을 수시로 반성하고 매사에 용기있는 정신자세가 생겼는가 하면, 어른들로부터 매우 진중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P스님, 아비달마론(阿毘達磨論)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도 최후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금강삼매(金剛三昧)의 선정에 들 때 바로 이 수식관을 닦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한국의 선불교는 오직 화두를 드는 간화선만을 주장하는데 제 좁은 생각으로는 그리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초심자에게는 초심자에게 맞는 참선수행법이 있고, 중급자에게는 중급자에게 맞는 참선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염불하는 사람에게는 16관법이나 염불선(念佛禪)을, 초심자에게는 인연관(因緣觀)이나 부정관(不淨觀) 등의 참선법이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법하시면서 줄기차게 주장하신 내용 중에는 천차만별한 근기의 중생들이 모두 안락과 행복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는 온갖 지혜의 방편을 이용하여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정이 그런데도 공부깨나 했다는 스님네나 불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의심하면서 참선하는 수행법)을 통해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못하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있으니 큰 병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불교공부를 많이 해온 사람들에게 간화선의 중요성을 백 번 천 번 강조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삼십여 년 동안 전국의 선지식들을 예방 친견하면서 간화선을 공부해왔기에 간화선이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고, 저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간화선을 소개할 때는 그들과 많은 괴리감을 느껴 참선의 위대함이 쉽게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얘기의 핵심은 산꼭대기에 오르려면 개울도 건너고 작은 능선도 여러 개를 넘어야 하듯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궁극적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려면 중간과정도 인정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철 스님이 돈오돈수를 주창하니까, 그에 따라 어중이 떠중이 모두가 입을 모아 돈오돈수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 저는 솔직히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다겁생래(多劫生來)로 수행해온 사람이 금생에 문득 시절인연을 만나 돈오돈수할 수는 있으나, 그 돈오돈수의 결과도 깊이 따지고 보면 점오점수(漸悟漸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여러 과정을 거친 후에 완성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요즘 많은 사람들이 돈오돈수를 말하지 않으면 선지식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내친 김에 좀더 짚고 넘어가자면, 조실스님들이 화두를 깨치고 못 깨치고를 점검해 줄 수는 있어도 오매일여(寤寐一如)니 몽중일여(夢中一如)니 하는 수행의 경지는 참선공부를 하는 수행자 자신이 점검할 일이지 남이 간섭할 문제도 아니고 남이 눈치챌 수도 없는 것입니다.
P스님, 어쨌든 간에 참선수행의 효능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참선수행을 시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는가 하면, 세계의 모든 정신의학계에서는 복식호흡을 통한 자율신경훈련이나 최면요법 같은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하여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때 우리 사회에 유행했던 마인드콘트롤과 요즘 크게 유행하는 기훈련의 근저를 보면 불교의 참선수행법이 주축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P스님, 불교의 핵심 수행법인 참선법이 민중 속에 깊이 파고들어가 불타는 집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이 모두 부처님의 안락과 행복을 누리도록 하려면, 현대인들의 천차만별한 수준에 맞춰 보석이 주렁주렁 장식된 반야의 수레를, 다시 말해 초보자에게는 초보자에게 맞는 초급참선법을 중급자에게는 중급자에게 맞는 중급참선법을, 참선공부를 하는 스님네나 선학자들이 체계적으로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P스님, 아무쪼록 저를 포함한 우리 불자들은 아침 저녁으로 최소한 30분씩, 그것도 어려우면 단 5분 만이라도 단정한 자세로 앉아서 진실하고 참된 자아(自我)를 찾아나간다면 작은 눈송이가 쌓여 거대한 나무를 무너뜨리며 산사태를 일으키듯이 언젠가는 대 용맹심이 일어나 생사문제까지 해결할 시절인연을 만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