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발톱

빛의 샘 - 백 번 잘한 일

2007-09-23     관리자

백 번을 생각해도 잘한 일을 쓴다는 일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들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내가 잘한 일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재작년 추석 성묘에서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더랬다. “음주측정하겠습니다.” “아, 네, 저… 성묘 중에 몇 잔 했습니다. 죄송합니다.”했더니 경관은 차 안에 8살, 4살짜리 아이들만 있는 것을 흘낏 보며, 약간은 측은한 눈빛으로, “누구 성묘인데요?”하고 묻는다. 순간 나의 머릿속에선, 아! 이 친구가 내 마누라 산소에 다녀오는 것으로 알고 있구나. 만약 내가 아내의 묘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면 틀림없이 봐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몇 초의 짧은 순간에 나는 많은 갈등을 하였다.
“그래? 말어?”하지만 지금 일요일인데도 방송국에서 열심히 편집하고 있을 멀쩡한 마누라를 죽었다고 할 순 없지 않을까! 말이 씨가 된다고… 차라리 벌 받는 게 낫지. 정말 내 마누라가 일찍 죽으면 어떻게 해? 하며 결국엔 “아, 예, 저… 어머니 성묘 갔다 오는 길입니다.”했더니 “뭐요? 저는 오전에 아버님 성묘 갔다 왔습니다.”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면허는 취소되었고 지겹게 1년 6개월을 보낸 후 3번 만의 시험 끝에 면허를 다시 땄지만 그 때 아내를 배반(?)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한 90번 정도는 잘했다고 생각한다.(누군 마누라 죽으면 변소에서 웃는다고 하던데.)
그런데 백번 생각해도 잘한 일은 무엇일까?
10여 년 전 아직 총각이었을 때 생전의 어머니는 가끔씩 “얘! 상희야! 엄마 발톱좀 깎아 줄래?”하셨다. 그러나 나는 “싫어요. 엄마, 찝찝하게”하고 몇 번이나 거절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주무시는 모습이 무척 편안하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어머니가 얼마 안 있어 돌아가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충동적으로 어머니의 잠자는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그 다음날 어머니는 또 “상희야! 내 발톱 좀 깎아 줄래?”하시길래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부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성스럽게 아기 다루듯이 어머니 발톱을 깎아 드렸다.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뿌듯하던지!
그리고는 정말 며칠 후 건강하신 모습으로 지방 친척 결혼식에 가신 어머니가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도 그나마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 일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린 어머니의 모습은 실제 어머니처럼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지만 그 이후 나의 손끝엔 발톱을 깎아드리면서 느낀 어머니의 순한 모습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는 듯하다.
아! 어머니! 어머니! 부디 극락왕생 하시옵소서!